미래. 책의 외피는 사라지고 뇌신경 임플란트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대.
책은 필요없다. 하지만 책은 살아남았다.
주인공은 퍼스널 부커. 개인 주문을 통해 제지, 글꼴, 커버 기타 모든 부분을 맞춤형으로 디자인한 책을 제본한다.
낭만적으로 들리는가?
이 소설은 미심쩍은 자살 사건을 추적하는 하드보일드 수사물이다.
퍼스널 부커인 주인공의 과거 이력은 공안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영혼과 존엄성을 앗아가는 자.
사건은 한때 반혁 관련자로 그의 조사대상자였기도 한 디의 죽음을 쫓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남겨야 했으나 남기지 않은 것.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늘 연필로 직접 채우곤 했던 원고지.
주인공은 그 원고를 찾아 나선다.
퇴직한 요원이 베트남, 중국, 이슬람 음식을 전전하며 사자의 행방을 되짚고 기존 인맥을 활용하는 수사 과정은 익숙한 맛이지만 디테일이 좋다. 그 디테일이 밀도를 높이고 세계관에 신뢰성을 부여한다.
필요한 때 적절히 행사되는 편법과 위법, 폭력. 하드보일드에서 이 정도 재미는 장르의 기본기라고 할 수 있다. 본작은 조금 더 나아가서… 뭐랄까 품격을 보인다.
오래된 제본 방식을 집요하게 묘사하는 경의와, 예술로서 탄생한 단 하나의 책. 그것과 함께 드러나는 진실은 얼떨떨하다. 퍼스널 부커라는 소재가, 단지 신기한 소재에 그치지 않고 주제를 띄우기 위한 발사대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이 찬탄한 집필과 제본, 그 지난한 과정에 대한 이별의 형태로서 제시된다.
주인공이 목도한 결말은 복수극이 아니라 그저 ‘완성’이다. 그로서 디는 흉측한 과거, 자기가 속박된 텍스트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탁월한 비유법을 담아내면서도 인물의 핍진성이 최후까지 엄밀하게 지켜진, 파인 다이닝 같은 글. 쉽사리 만나기 힘든 격조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