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
하나의 완결성을 띄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서로 얽히고 설켜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깔끔하게 묶이고 분류되어 정리된 전선처럼 정돈되어야 합니다. 청록의 시간은 이런 전제를 충실하게 수행합니다. 각 챕터별로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 있고, 이 인물들은 시간선 위에 정돈되며 이어집니다. 물론 이 작업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임이 분명합니다. 인물들은 서사 속에서 살아 숨쉬기에 제 나름의 자아와 사고와 가치를 보여야 하며, 사건들은 서로 복잡하게 엉키되 분명한 결말로의 핍진성을 보여야합니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충분히 가치를 보였다고는 생각합니다만, 부족한 부분이 없는 것 아닙니다. 그렇기에 앞선 독자분들께서 리뷰를 작성할 때 그 부분을 지적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작품성에 대한 논의와 토론 역시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필요한 작업임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런 논의보다는 좀 더 다른 의미로의 발췌를 해보려고 합니다. 카시모프 작가님의 소설 「청록의 시간」은 SF소설입니다. 고대부터 3000년대가 넘는 시대적 흐름을 정리하고 또한 개인의 정체성과 개성의 시류인 청록의 시간이라는 새로운 노붐1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노붐을 보며 눈에 띄는 것은 ‘좀비’였습니다.
3.
좀비 소설은 아포칼립스 소설에서 주로 다뤄지는 존재들입니다. 좀비란 말 자체는 서인도 제도 아이티 섬의 부두교 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살아 있는 시체를 이르는 말입니다.2 그러면서도 조지 로메오 감독님의 작품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로 산자를 물어 죽여 먹거나 감염시키는 존재로 변모되었습니다. 이를테면 타자화되거나 죽여도 되는, 금기시된 것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0년대에 이르러 이러한 좀비는 다시금 변혁의 길을 맞습니다. 웜 바디스의 주인공처럼 사랑을 느끼며 다시금 사람이 되고자 하는 좀비가 있는가 하면, 좀비 랜드 사가처럼 아이돌이 되고자 하는 미소녀 좀비 역시 좀비물로써 다뤄집니다. 이들의 특징은 좀비이되 인간과 공존하고자 하는 존재들입니다.
정리하자면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처럼 정상성을 잃어버렸되, 감염과 증식의 존재이며, 사람같지 않는 사람으로써 존재합니다. 청록의 시간에 대입하자면 재호처럼 시체처럼 정상성을 잃어버렸고, 뇌를 먹는 행위로써 감염과 증식을 하며, 뉴먼처럼 사람이되 사람 같지 않는 사람으로 존재합니다. 이건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4.
근대의 좀비는 부정한 것, 타자들의 표상, 그리고 죽여도 되는, 금기시 된 것들의 총체라고 정리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현대의 좀비는 좀비의 성질을 뒤로하고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존재로 변모되었다고도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청록의 시간에서 드러난 좀비성은 어떤지 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청록의 시간은, 소설 내에서는 자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 건지 증명하는 곳으로 그려집니다. 이를 통해 AI 기계가 자아를 가질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자아의 총체인 곳을 통하여 시간 여행도 가능하다고 설명됩니다. 그리고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감염’이 되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재호의 조현병을 통해 제시됩니다. 멀쩡하던 인물인 재호는 마고의 뇌를 (상처 치료제인 줄 알고) 먹고 (감염되어) 조현병적인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이 상태여야 멀쩡하던 뇌와 다르게 청록의 시간에 진입하기 좋은 상태입니다.
이 청록의 시간이 작중에 필요한 이유는, 21세기 인간들의 우경화와 갈등을 그대로 투사한 뉴먼들의 사회가 폭발하기 직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재호는 청록의 시간으로 진입하여 이 갈등을 여러번 극복한 인간들의 방식을 알아내, 뉴먼들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3000년대에 되살아나게 됩니다. 이 부분은 좀비가 공생의 대상에서 공생을 위한 번제물이 된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이는 이를테면 구원의 좀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
소설 내 AI의 자아는 결국 인간의 뇌를 (직접적이든 표상적으로든)복제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들이 멸종 한 후에도 뉴먼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이는 단순히 보다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신규 뉴먼과 구 뉴먼들간의 갈등 뿐만은 아닙니다.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자 실수를 없애려고 했던 사회의 행정AI인 ‘프레지턴트’의 3번 AI가 그러합니다.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편적인 청록의 시간에 대해 알게되어서 (혹은 착각으로), 그들을 구하고자 찾아온 재호와 마고의 뇌를 먹음으로써 다시금 인류세를 구가하고픈, AI기계 시대의 마지막 인간들도 그러했습니다.
이들은 서로를 배타적으로 볼 뿐, 포용의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마치 서로를 좀비 취급하듯이 공격할 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소설에서의 ‘감염’은 재호와 마고에게만 대상되지 않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춰야할 ‘차이’에 대한 거부가 소설 내 모든 인물에게로 전염됩니다. 이 차이에 대한 거부는 차별에 대한 거부가 아닙니다. 자신이 주어진 것들을 소갈증처럼 탐닉하고 탐욕하고 남의 것을 탐욕하는 형벌 같은 욕망입니다. 이 감염은 인간의 뇌 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발현된 것처럼 묘사됩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말하자면 가짜 좀비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좀비의 성질은 타자화되고 배재된 존재들이나 현대에 들어 공존을 희구하는 존재들로 변화했습니다. 그렇지만 공존을 거부하는 좀비라는 것은 결국 구시대적으로 회귀해버린 존재일 뿐입니다. 오로지 공존을 꿈꿨던 진짜 좀비인 재호와 마고만이 좀비성을 드러냄으로써 구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진짜 좀비들에게 처분되어버리는 가짜 좀비들은 안타깝지만, 우스울 뿐입니다. 좀비가 공존을 포기한 순간부터, 그들은 타자화되고 배제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 되어버립니다. 그들이 강자인지 약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놔두다간 멸망으로 치닫게 되는 뇌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공존이라는 코드가 전염될 수 있다면, 오히려 좀비성이야말로 세계를 구원할 단초가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6.
여러모로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부족한 점도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너그럽게 봐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노래는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식과 테크닉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보니 작업에 좀 어려움이 있네요. 조만간 다시금 뵙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