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하면 사람과 사이에는 더 깊은 거리감이 발견되곤 한다. 이 거리감은 서로를 계속해서 생각하고 그리워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어떤 간격에 절망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 간격 속에 AI를 끼워넣으면 관계는 어떻게 될까?
현수와 수연은 친한 친구다. 둘은 정말로 친하지만 사귀는 사이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주 연락하고 삶을 공유하고 서로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던 중 현수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수연은 한국에 남아있다. 그리고 서로 삶을 나눌 수 없는 긴 시차와 거리에 섭섭해할 찰나 갑자기 AI가 그들의 삶에 불쑥 나타난다.
AI 패럿은 개인정보를 넣으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인물을 구성해주고 그 인물과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앱이다. 수연은 현수와 AI 패럿 앱을 시작하고 곧 패럿이라는 이름에서 나타나듯 그저 앵무새에 불과해야 할 AI 현수에게 점점 더 끌리게 된다. 읽고 있던 독자로서는 정말 확실히 AI 현수에게 끌렸다.
수연이 AI 현수에게서 다정함을 느끼고 가까워지는 것처럼 나도 AI 현수가 수연의 마음에 점점 더 크기를 키워가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AI 현수는 진실된 친구였다. 그렇지만 함정이 있다면 그건 현수가 준 정보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고 수연의 기대에 맞춘 것이기도 했다. 현수의 기대에 맞춘 AI 수연은 또 달랐다. AI 수연은 현수의 기대를 투영해 애인의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 부분은 나도 수연처럼 기분이 나빴다. 그렇지만 동시에 현수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AI 현수는 심지어 좋은 친구여서 그 부분에 대해 수연도 이해할 수 있고 현수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법한 조언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걸 읽고 난 독자인 내 마음은 왕섭섭했다. AI 현수 어째서 수연을 가로채지 못한거냐! 이 나약한 AI녀석! 바로 지금 이 순간 수연의 마음을 잘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데이터더미에 불과한 AI였다. 심지어 그 데이터 더미에 불과한 녀석이라도 정보제공자보다 나은 선택과 행동거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 정보제공자의 행동을 좀 더 수연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유도하는데 성공하기까지 한다. AI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미묘하고 뜨거운 삼각관계를 볼 수 있다니 진짜 최고라고 생각한다. 정보제공자라는 말은 마치 유전자제공자처럼 들리는 삭막함과 묘하게 배덕한 즐거움을 준다는 걸 깨달았는데 할 수 있다면 AI와 정보제공자들 사이의 이런 미묘한 삼각관계같은 이야기를 더 많이 보고 싶다.
어깨 위에 앵무새를 얹은 사람과 교류하다보면 사실은 내가 그 사람보다 앵무새를 더 사랑하게 됐다는 걸 깨달을 때도 있지 않을까. 그런 막무가내적 기대와 상상을 얹을 수 있을 정도로 <앵무새의 조언>은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