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익숙하고 가장 낯선 그 땅 아래에 있는 것 감상

대상작품: 그 땅 아래에는 (작가: 이규락, 작품정보)
리뷰어: 일요일, 1일 전, 조회 17

그리 잘 알지는 못하지만 호감이 있는 사람과 데이트를 시작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내가 만나는 사람의 바닥에 무엇이 있을까? 처음에는 좋은 면을 위주로 보게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아주아주 힘든 상황에 처한다면 눈 앞에 있는 사람의 바닥까지 단숨에 내려가서 그가 가진 가장 밑바닥의 생각을 보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해본 적이 있다면 이규락의 <그 땅 아래에는>에 바로 그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다.

이 소설의 태그인 리미널 스페이스는 이야기가 현실과 가까운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몽환적이고 괴담적인 장치들을 이용할 것이라는 선언처럼 보인다. 막 사귀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는 현수와 민정은 서로가 가진 과거의 기억과 두려움, 공포를 서로에게 적나라한 형태로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어쩐지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어둡고 무서운 곳을 헤매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왜인지 불안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두 사람을 둘러싼 세계가 만만하진 않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쩐지 서로를 점차 알아간다. 민정은 “그동안 봐 왔던 영화와 만화들이 머릿속에 뒤엉”키는 경험이지만 현수의 이름을 부르며 쫓아간다. 단서를 추적하면서 이상한 내용들을 이해할 때마다 안 좋은 기억에 정신없이 휘둘리지만 둘은 오히려 서로를 의심하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삭막하다. 누군가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자책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누군가는 자신이 달성할 수 없었던 목표와 성과,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해 되새김질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땅 아래에는>에서 이런 현실감과 불쾌한 기억들이 만들어내는 공포와 괴담은 두 사람을 헤어지게 만들지 않는다. 되려 <그 땅 아래에는>의 리미널 스페이스의 클리셰적 공간은 노골적인 공포를 표방하면서도 은근슬쩍 비틀려 있다.

공포와 괴로움으로 가득찬 미지의 경계 공간은 말하기 힘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연인들의 비밀공간이자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있기를 결정할 수 있게 만드는 속삭임(그런데 다소 울부짖는 고주파 음향으로 들리는)으로 전환되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로맨스처럼 보였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 작가가 리미널 스페이스라는 태그를 재미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써보고 싶다는 의지처럼 보여 앞으로도 더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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