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셰프봇은 약을 먹을 수가 없네요.”
(본문.P35)
목차
1.창작물속 『로봇』에 대한 단상
2.로봇이 『먹을 수 없는 약』에 대해….
3.로봇도 『먹을 수 있는 약』에 대해….
4.앞으로 우리가 다룰 『로봇』이란?
1.창작물속 『로봇』에 대한 단상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속성이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있는 만큼, 우리가 창작물 속에서 ‘로봇’이라는 소재를 사랑하는 이유 또한 이런 인간만의 전유물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속성에서 비롯됩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사물’에 가까운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움직이고, 걷고, 소통하며, 또한 인간과 교류하는 모든 과정들이 그것들이 사물이라는 것을 잊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두 발로 걷고 움직이는 과정들이 생물학적인 성장에서 비롯된다면, 로봇은 그런 성장 또한 인간의 손으로 빚어진다는 설정을 빼먹지 않습니다. 즉, 로봇을 누구보다 인간답게 표현하는 것 또한, 인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이번에 읽은 <테크탐정 사건 일지: 셰프봇의 식탁> 또한 이런 인간으로 비롯되는 로봇의 속성을 매력적으로 묘사한 작품이었습니다. 요리를 위해 작동해야하는 로봇이 그 기능을 잃어버리며 시작되는 이야기로, 단순히 도구의 오류가 아닌 그것을 하나의 상처이자 병으로 해석하는 시도가 무척 인상적이었으며, 그 덕분에 이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인공지능’이라는 소재가 새로운 시선을 잡아내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소설 자체의 기본기에서 힘이 떨어진다는 인상은 있었지만, 작가가 제시하는 주제 면에서 흥미가 동했다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번 감평에서는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소재가 ‘로봇’이기에 발생하는 매력적인 지점들을 살펴보는 것과 더불어, 앞으로 우리가 ‘인공지능’ 혹은 ‘로봇’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뒤이어 언급되는 비판은 문해력이 부족한 일개 독자의 주관적인 감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로봇이 『먹을 수 없는 약』에 대해….
저는 창작물 속에서 ‘로봇’을 인간과 밀접한 존재로 표현하는 과정을 언급할 때, 아끼는 곰 인형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과정에 비유하곤 합니다. 곰 인형은 그 자체로 사물에 불과하나, 어린아이들이 이름을 붙여주고 정을 주는 과정에서 그것 또한 사람과 같은 관계를 형성합니다. ‘로봇’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들이 사물이며 인간을 위한 도구라는 전제를 잃지 않지만, 그것을 다루는 인물에 의해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곤 합니다. 예외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로봇은 그 자체로 인물로서 조형될 수 있다는 것보다, 그 로봇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에 의해 속성이 조형된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독특하게도 이 작품에 주요소재로 등장하는 ‘셰프봇’은 이런 도구로서의 속성과 인물로서의 속성 사이의 미묘한 지점을 헤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로봇을 조형하는 것이 로봇 그 자체의 특수성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관습적으로 표현하자면, 셰프봇은 고장 난 로봇입니다. 로봇으로서의 제 기능을 하지 못 하는 ‘오류’를 안고 있죠. 하지만 그것을 단순 오류로 규정하지 못 하게 만드는 것은, 셰프봇 그 자체라고 느껴집니다.
(3-P7) 셰프봇은 어떤 로봇이냐고 누가 물으면 한마디로 ‘감정 지능이 유달리 높아 보인다’고 답할 것 같았다. 다른 것에도 다 뛰어났지만, 가장 인상 깊은 건 이 부분이었다.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에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인공지능 로봇의 보편적인 능력치를 훨씬 넘어서는 것 같았다.
해당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은 셰프봇 그 자체가 특별한 로봇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로봇이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이 특별하지 않다는 전제를 두자면, 셰프봇이 반응하는 것은 로봇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합니다.
다만 냉정히 생각하면, 감정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소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의 수치를 계량할 수는 없겠지만, 로봇이 감정에 거세되고 사고가 계산적인 도구라는 것을 감안하면, 셰프봇에게 ‘로봇의 보편적인 능력치를 뛰어넘었다’라며 놀라는 것은 그 수치가 인간과 거의 흡사하다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작품은 셰프봇에게서 ‘로봇’이라는 속성을 거세하고, 오로지 ‘인간’으로서의 속성을 남기기 위한 작업을 거치고 있다는 인상도 되겠습니다.
사실 이 작업은 소설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이 셰프봇이 특별한 로봇이 아닌, 그야말로 인간을 본 뜬 무언가라는 인상을 주기 시작하는 것은, 곧 이 로봇이 갖고 있는 오류 또한 단순히 부품을 갈아 끼우는 식의 조치가 무의미하다는 의미로 직결되기 때문이죠.
(4-P21) “공포, 절망, 좌절.” 무심코 셰프봇의 말을 듣다가 놀라서…(이하생략)
(4-P26) “사방에 철창이 보입니다. 철커덕 철커덕 소리. 우우웅 앞으로 움직여요.”
(4-P32) “기분은… 없습니다. 식욕이 강합니다,”
그렇기에 셰프봇의 치료(?)는 다소 ‘수리’라는 개념보다 ‘치료’의 개념으로 진행됩니다. 전문가를 만나 상담을 받는 모습은, 그것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는다면 전형적인 사람과 사람이 만나 진행하는 상담치료의 장면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상담이 어떤 효과를 주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실제로도 상담사는 로봇에 대한 수리 방안 보다는, 사람의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항정신병 약물, 기분안정제, 항불안제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처방을 내려주죠. 하지만 이 순간에 이르러서, 셰프봇의 본질을 언급하며 자신의 처방을 모두 부정합니다.
(4-P35) “하지만 셰프봇은 약을 먹을 수 없네요.”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이 작품에서 로봇을 다루는 방식은 무척 편리하고 선택적입니다. 로봇을 어떻게 인간처럼 조형하느냐가 이 장르에서 보이는 고민거리라고 한다면, 이 작품에서는 로봇 그 차제를 인간과 다름없게 표현하는 것은 고민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로봇의 필요한 요소들을 취사선택하여 반영하는 것은, 이 소설이 다소 발상 면에서 나태하다는 비판을 감수할 몫이라고도 생각합니다.
3.로봇도 『먹을 수 있는 약』에 대해….
앞서 이 작품은 로봇을 인간 그 자체로 표현하는 발상을 보여줬다며 조심스러운 비판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무리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과 기계의 벽을 허물어버리며 제시하는 요소들은, 이 작품이 다른 AI를 다룬 소설들과 차별화 할 수 있는 무기라고도 판단됩니다.
그런 면에서 ‘무당’이라는 존재의 개입은, SF를 표방하는 장르에서 무척 모험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로봇의 오류를 고치기 위해 신기의 힘을 빌린다는 전개가 작위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생각을 달리해보면 어떨까요?
다시 말하자면, ‘왜 여기서 무당이 등장하는가?’가 아니라 ‘왜 작가는 무당을 등장시켜야만 했는가?’를 고민해본다면 그 의도를 해석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무당’이라는 존재의 속성은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비과학적’이며 ‘초현실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의존’될 수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그 자체가 특별한 소비층을 가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비과학적이라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혹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들로부터 마땅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례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물론 해결될 수 있다는 것 또한 해당 소비층의 믿음에서 비롯됩니다만, 그 믿음을 보상으로 확실한 신뢰의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 ‘무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P14) “보살님은 시대 변화에 항상 발맞춰가는 분이시니까 이미 다 알고 계시겠지만… 아직은 생소해도 앞으로 이런 케이스가 점점 많아질 것 같아요. 그러면 다들 어디서 구제를 받겠어요?”
그 신뢰는 주인공의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로봇의 오류를 무당이 진단하는 사례가 ‘생소’하다는 전제를 거부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런 사례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걱정을 언급하며 그 시작을 끊어주기를 부탁합니다. 주인공은 직접적으로 ‘로봇’이란 존재들이 인간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된다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으며, 그 구성원이 인간과 큰 차별이 없는 인격체로 대우받게 된다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 발상에 있습니다. 무당이 해결하는, 혹은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들은 절대적으로 인간 고유의 문제입니다. 집안, 사회, 가족, 친구 등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환경과 구성원들의 문제를 초현실적인 믿음으로 치유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죠. 여기서 그 믿음을 ‘로봇’이라는 존재에게 대입함으로서 우리는 특별한 지점을 엿보게 됩니다. 로봇들이 안고 있는 문제(오류) 또한, 우리 인간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혹은 완전히 흡사하다는 것이겠죠.
(6-P14) “문제는 그 친구가 처한 환경이야. 주방에 죽은 가축들이 쌓여있는 셈 아니야. 다 어떻게 죽었겠어. 인간들이 그렇게 많이 쳐 먹는데 곱게 보내줬겠어.”
곧 셰프봇의 문제가 인간들의 손에 빠르게 소비되고 도축되는 짐승들의 원혼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물론 원혼의 실제보다는, 셰프봇이 그런 현실을 지켜보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쪽이 설득력이 높아 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무당의 태도입니다, 그녀는 직접적으로 셰프봇을 앞에 두고 상담을 진행했던 이와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일방적으로 ‘로봇이 먹을 수 있는 약이 없다’며 처방에 손을 놓았던 상담사와 다르게, 무당은 셰프봇을 하나의 인간으로 판단하며 지극히 인간적인 고통을 진단해냅니다. 그것은 어쩌면 무당의 입장에서 로봇을 진단해본 경험이 없기에, 자신이 익숙한 사람에 대입하며 결과를 도출해냈다는 느낌으로도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정답이라는 묘사를 볼 때, 이 소설이 표현하는 바는 자명해집니다.
고백하자면, 이 부문에서는 ‘로봇이 먹을 수 있는 약이 무엇인가?’에 대해 답을 도출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내내, 결국 ‘이 소설에 로봇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방향이 움직이는 점은 스스로도 난감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혹시 이 작품을 읽은 독자 분들께서 이 부분에 대해 작게 의견을 남겨주신다면 작가님은 물론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앞으로 우리가 다룰 『로봇』이란?
넷플릭스 시리즈로 공개된 드라마 ‘카산드라(Cassandra)’를 감상하신 적 있나요?
제 감상부터 말하자면, 헛웃음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실망스러웠습니다. 그 실망의 원인에는 ‘AI’ 혹은 ‘로봇’으로 비롯되는 속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집에 이사 온 가족들에게 집착하는 AI라는 설정은 흥미가 동하지만, 그 흥미의 원인은 AI 본연의 감정이 거세된 속성에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쳐도 피가 흐르지 않고, 아파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무기물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카산드라(Cassandra)’는 정반대의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존재들이 오히려 인간과 닮은 행동과 욕구를 보인다는 점에서 나오는 공포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오히려 이 AI야말로 인간이나 다름없는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바탕을 전제합니다. 그 때문에 작품 전체가 AI와 맞서 싸우는 스릴러보다는, 귀신에 씌인 사물에게 시달리는 듯한 감각으로 다가왔습니다. ‘로봇’ 혹은 ‘AI’라는 소재를 활용하며 가질 수 있는 무기를 오히려 손 놓아버리는 각본은 실망스럽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테크탐정 사건 일지: 셰프봇의 식탁>을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만 이 작품이 완벽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설적인 기본기를 따지자면 3인칭을 감안하더라도 뒤죽박죽 이어지는 인물의 시점이나, 제 역할에 충실할지언정 행동에 당위성이 부족한 주인공 등 부족한 점이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봇과 인간 사이의 금을 지우고, 그 자체로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는 솜씨는 간혹 눈이 번뜩 뜨일 정도로 인상을 주곤 했습니다. 특히 ‘육식 요리에 트라우마를 가지는 로봇’이라고 요약되는 한 문장은 그 자체로도 웃음이 나오는 익살스러움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셰프봇의 원인을 파헤치는 이야기도 좋지만, 만약 처음부터 셰프봇의 원인을 제시하며 그 병을 치유하기 위한 과정을 다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더 낫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그 나름대로 입꼬리가 삐죽 솟는 매력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는 말을 끝으로, 이번 감평을 마치겠습니다.
인상적인 작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작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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