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하거나 혹은 신비롭거나
무속.
건너고 싶지 않은 선 너머의 그 세계는 내게 무섭거나 혹은 불길한 정체 모를 무언가이다. 그럼에도 귀신 이야기며 무당의 이런저런 사연엔 귀가 솔깃해진다. 휩쓸리듯 빠져들어 듣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한 움큼씩 지나고 없다.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지의 신비한 세계. -물론 볼 수 있으면 큰일이겠지.
나 역시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절대. 그저 호기심만 불태우고 싶을 뿐.
사람 먹는 우물에 얽힌, 오래된 그러나 현재 진행형인 죽음
소설 ‘우물’은,
세습무 집안의 자손이자 능력치 만렙에 달하는 자질을 갖고 태어난 시현이 인신 공양이 벌어졌다는 전설이 있는, 심지어 현재까지도 1년에 한, 두 명씩 꼭 빠져 죽는 사건이 벌어지는 기이한 우물이 있는 마을에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퇴마 이야기다.
수시로 등장하는 정체가 아리송한 우물 귀신과 마을을 맡고 있는 수상한 무당, 어딘가 미심쩍은 행동의 주민들에 TV 방송과 돈, 원한이 뒤죽박죽 섞여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는 누구를 경계하고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읽는 눈을 미궁 속으로 계속 밀어 넣어버린다. 끝날 때까지 미로는 끊임없이 이어져 정신 차리면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에 도착해 있다.
영화 파묘를 연상하게 하는 촘촘한 묘사
소설은 시현과 그의 담당 교수인 필구 간의 소소한 아웅다웅이나 심심찮게 등장해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적인지 아군인지 알 길 없어 더 무서운 우물 귀신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귀신 퇴치를 위해 벌이는 굿판에 대한 묘사가 생생해 영화 ‘파묘’의 김고은 배우가 연기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점이 무엇보다 인상깊었다.
내가 왜 무속에 대해 터부에 가까운 감정을 품게 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나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무업하는 이들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 탓일지도 모른다.
귀신이 있든 없든 오색 무늬 천을 휘날리며 영혼 깊은 곳을 울리는 징소리에 맞춰 죽은자와 산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통 받는 이들의 한을 보듬고 풀어주는 굿은 일종의 거대한 의식이자 축제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 중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어딘가 꺼려하면서도 계속 눈길을 보내는 건지 모른다.
무속이 단순한 흥미꺼리가 아닌 보존해야 할 우리 문화로서 오래도록 살아남길 바라본다. 더불어 우리 역사에 스며 있는 신들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처럼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이건 사족인데.
이야기의 끝에 이르러 마침내 각성(?)한 주인공은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