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글이 막히던 상황에서 이 소설의 설명글을 읽었다. 그리 긴 분량이 아니었기에 빠르게 읽었는데 한번 더 읽었다. 이러한 새가 내 문우, 글 친구로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글을 쓴다는 건 참 고단하고 외로운 작업이다. 홀로 책상 앞에 스스로를 묶어두지 않으면 진전도 되지 않아서다. 더구나 장편을 쓰는 작업은 더욱 외롭다.
글 쓰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던, 꿀 같은 대학 시절에도 나와 동기들은 우리가 쓴 글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오늘도 종이 쓰레기를 양산했다, 라고. 정말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들였어도 우리의 눈은 점점 높아만 갔고, 이상은 저 위에 있는데 현실은 시궁창 같았다. 아무리 써도 맘에 들지 않는 글은 절필을 유발하게 마련이었다. 그 결과, 대학 동기들 중에 글을 여전히 손에 잡고 있는 이는 몇 없다.
이 소설 <글자 먹이>는 잘 쓰여지지 않는 글을 쓰고 또 쓰다가 버리지도 못 한채 방 안에 고여가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주인공 나는 지운 적도 없는 데 글자가 방 곳곳에서 사라지는 걸 목격한다. 모니터 받침에 붙여둔 글귀나 책 제목이 쓰여 있던 책등 따위에서 사라진 글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별 일 아니겠거니 생각하고 넘어갔더니 사라진 글귀가 점점 많이 생겨서 방 안을 관찰해 본 결과, 글자를 먹는 도둑은 다름 아닌 앵무새 리리였다. 범인이 앵무새라는 것도 신기한데 재밌고 잘 쓰인 글자들만 골라 먹는다는 평론가적 식성도 있다는 건 더더욱 재미있었다.
소설을 읽는다기 보다 내가 아는 사람의 일기를 들여다 보는 마음으로 나는 이 글을 끝까지 다 보았다. 스포가 될까 해서 더 이상의 이야긴 할 수 없지만, 나는 글자를 먹는 새라는 소재 하나로 이렇게 감동을 받을 줄은 몰랐다. 요즈음 나 역시 생각한다. 글을 쓴다는 것, 그리고 글을 읽는다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니다. 그저 몇몇이 쪼아 먹는 먹이와 같은 것, 쓰거나 읽지 않으면 입이 심심하고 또 그렇다고 배부를 일도 아닌, 아주 소소한 취미와 같은 것. 그럼에도 사라지면 빈 자리가 너무도 큰… 그런 게 글인 것 같다. 내게도 리리와 같은 독자가 있다면 어떨까,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소설을 다 읽었다. 별 내용은 없지만 별 것이 담겨 있기도 한 소설이 궁금하다면 지금 한번 스윽 읽어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