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이라는 것은 어떠한 연유로 ‘칼’이 된 것일까. 거대한 철이 날카로운 이를 가지게 된 것은 결코 자의가 아니었으리라. 인간이라는 지배 아래, 타의라는 명령으로 난도질의 주체가 되어버린 내가 바로 그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곧바로 절망 속에 가라앉았을 것이다. 자의로 행할 수 있는 단 하나, 감정의 정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사랑이었다. 절망이 아닌 칼 자체에 관한 관조를 통해 감정을 되짚어나가는 것이 흥미롭다.
참으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일생이지만 ‘나’는 꽤 적응하며 살아간다. 죽음을 대하는 식칼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인 듯하지만 아주 가끔은 생을 갈망하기도 한다.
그런 사적인 욕구를 뒤로 한 채, 여자의 살생도구로 쓰이기 시작한 이후 새로운 감정을 깨닫는다.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그를 떠올리며, 보답 없는 희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사랑인 것이다.
여자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알 수 없다. 허나 그의 눈물이 잊고 있던 ‘나’의 관조에 의미를 부여해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관념, 칼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했다는 건 분명하다.
– 나, 식칼은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우리 칼이란 족속은 왜 자르고 저미고 토막내야 할까. 왜 하나였던 것을 조각조각 해체해야 할까. 감추어져 있던 것을 폭로해야 할까. 비집고 끌어내 상처 입혀야 할까.
이후 처음으로 ‘나’의 독백 속 절망이 드러난다. 자신의 날카로움은 결코 그녀의 고통을 달래줄 수 없다는 슬픔, 어쩌면 그녀의 고통을 더해줬을지 모를 날을 가진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한 혐오.
하지만 지나간 자리에는 광량한 사랑만을 남겨둔다.
‘나’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랑뿐이었으니.
– 허나 나, 식칼은 영원한 침묵을 앞두고 고백하건대 그 여자의 손에 쥐어진 채로 처음으로 사과를 깎았던 때를 기억할 것이다. 끊어질 듯 얄따란 사과껍질이 내 옆을 미끄러져 떨어지던 순간을. 그것이 내 생애 제일로 찬란했던 단면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