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설렜다. <오크 변호사>라니….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조합인 데다가 학창시절 즐겨 읽었던 판타지 소설의 오크 특징을 떠올려 보자 더 궁금해졌다. 거기다 <오크도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세계. 국선전담 변호사 다밀렉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라는 단 두 줄의 소개글이라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머! 이건 봐야해!” 하면서 바로 결제를 진행하고 읽기 시작한 이 소설… 도입부 몇 회차는 흥미로웠고 뒤로 갈수록 좀 힘들었다.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 내가 생각하는 스토리와 캐릭터에 대하여서 풀어본다. 좋았던 점 3가지와 아쉬웠던 점 2가지를 뽑아봤는데, 우선 좋았던 점부터 이야기해보겠다.
첫째, 오크의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줬다.
지금껏 읽어본 판타지 소설에서(내가 판타지 소설을 읽은 게 좀 오래되긴 했다… 가장 최신작이 전지적 독자시점, 근데 그마저도 현대판타지다) 오크란 대체로 못생겼고 말도 잘 못하며 호전적이고 악랄하며 말도 잘 못하는 케이스가 많아서다. 이는 <반지의 제왕>에 담겨 있는 야만 종족으로서의 오크 이미지가 계속 재생산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 이미지가 <변호사>와 엮여지다 보니 어라? 싶었던 거다.
오크에 대한 기본적인 편견을 갖고 있던 내 입장에선 오크가 말을 하는데 심지어 변호사, 거기다 사람들에게 억눌린 채로 제 야만 본성을 잃고 살아간다는 자체가 신선했던 거다. 대체로 이러한 종류의 판타지 세계에서는 꼭 쟁취해야 하는 목표가 주어지며, 전투 씬이 주류를 이루는데 여기서는 차별 받으며 살아가는 여러 종족들과 세계,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도 신선했다. 학창시절에 드래곤, 마족, 인간, 정령을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 소설은 읽어봤지만 오크는 처음이라는 것도 개인적으로 재밌었다.
둘째,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선인도 없는 세계를 잘 구축했다.
흔히 선과 안을 이분법적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소설은 다르다. 주인공 다밀렉부터가 그렇다. 제국에 의해 선발됐고, 제국에 의해 길러졌으며, 제국의 개로 살아왔다가 개심하는 캐릭터여서다. 비단 주인공뿐만 아니라 여기에 나오는 다수의 인물들은 선, 악 그 사이를 넘나든다. 긍정적 인물인 줄 알았던 인물이 사실은 부정적 측면도 지녔다거나, 부정적 인물인 줄 알았는데 의외의 면이 있다거나 하는 등 입체적으로 인물을 그려내려고 고심한 흔적이 느껴진다. 이러한 고민과 노력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게 하고 가치 판단을 유보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좀 더 복합적으로 사고하게 되면서 독서가 한층 더 다채로워졌다.
셋째, 기승전결을 사건 중심으로 간 게 아니라 다밀렉의 변화를 중심으로 이뤄내는 시도를 했다.
이 시도가 성공적이었다, 아니었다는 여기서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개인적인 사견이 담길 거 같아서다. 보통 사건이 팡팡 터지고 그러한 스피디한 액션 중심으로 전개가 이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다밀렉의 감정이나 신념이 변화하는 것이 잘 드러나는 구성이어서 좋았다.
독자는 다밀렉이란 주인공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주인공이 상황과 인물을 만나고 얽히면서 내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게 소설만의 특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상 매체의 경우 인물의 연기나 표정, 장면과 상황, 사건에 집중하여 보게 되지만 소설은 다르다. 내적 묘사, 심리 서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의 경우 소설을 쓸 때는 이러한 요소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쉬웠던 점 2가지는 무엇이냐… 하면, 신기하게도 장점과 연결이 되어 있다. 장점과 단점은 연결되기 마련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첫째, 판타지 세계만으로 어려운데 <색다른 세계>와 <혁명>이 더해지니 다소 어지러웠다.
나의 경우 어렸을 때 오크가 나오는 판타지 소설을 다수 읽었고, 그 세계관에서 오크가 어떠한 취급을 받는지나 어떤 특성을 가지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초반에 들어가는 게 어렵진 않았는데… 사실상 다른 종족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지는 않았다. 그 상태로 종족별 특징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차별적인 상황의 제국이라는 것과 국선 변호인이라는 설정이 더해지니까 더 혼란스러웠다.
낯선 판타지 세계관을 이해하기에 설명이 충분하지가 않다고 느꼈다는 말이다. 어떠한 상황이 전제가 되었는지 중간중간 회상으로 나오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들이 어떤 세계,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탁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를 테면 넷플릭스 시리즈 <아케인>의 경우 명확한 장면으로 이들의 상황을 보여주는 씬이 있다. 화사한 도시국가 필트오버에서 물건을 훔친 파우더와 아이들이 가까스로 도주하여 자신들의 본진인 지하도시 자운으로 돌아가는 시퀀스에서 명확하게 보여진다. 필트오버의 외관과 암담한 자운의 외관이 펼쳐지면서 차별과 두 도시의 반목이 명확하게 보여졌다.
단지 영상매체여서 쉽게 보여졌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도 묘사 기법을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은 세계관을 만들 수 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 다양하게 그려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채롭다. 내가 마지막까지 읽고서 느낀 것은 이 소설 속 세계관이 너무도 불투명하다는 것이었다. 드문드문 나오는 에피소드형 설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 세계는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지, 계층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어떠한 과거가 어떻게 이뤄졌고, 현재 어떠한지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면 좋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뒤로 갈수록 나는 이해 가지 않는 상황에서 사건들은 계속 발생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히려 초반부에는 이해가 됐다. 공간이 좁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혁명과 반제국 시위 등등으로 넓혀질수록 집중력을 잃게 되어 아쉬웠다.
둘째, 인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나중엔 혼란스러웠다.
여러 인물을 다층적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는 아주 좋았다. 그런덴 이 분량 안에서 다루기에는 인물이 과다하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인물은 빼도 괜찮을 거 같다 생각이 들 만큼 특징적으로 겹쳐지는 캐릭터도 많았는데, 다들 이름이 있고 서사가 있다 보니… 따라가다가 지쳐셔 나중에는 그 인물이 저 인물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물론, 때로 사람들은 캐릭터들을 메모하면서 읽기도 하겠지만 이 소설은 웹 기반으로 읽다 보니까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이해되면 좋지 않을까 했다. 가장 중요한 몇 캐릭터를 정해놓고 조금 더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중후반 이후로는 다밀렉이 잘 보여지지 않을 정도로 외부 서사가 많았다. 나는 사실 다밀렉을 따라왔고, 다밀렉과 관련한 이야기를 더 보고 싶은데 다른 인물들이 주축이 되고 있고 사건들도 너무 다변화되다 보니까 뒤로 갈수록 다시 돌아가서 읽어야 되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그래서 세번째 장점이었던 다밀렉의 심리 변화를 중심으로 기승전결을 따라갈 수 있다는 점이 사라져버렸다.
더구나 오크+변호사라는 조합이 좋았던 건데 변호사로서 보여줄 수 있는 건 줄고, 그렇다고 액션 씬이 다채롭게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흥미로운 독서를 막았다. 변호사로서 활약이나 액션 씬이나 조금 더 다밀렉 중심의 이야기가 중후반부 이후로는 필요했을 거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시도의 글이어서 좋았고, 세계관이나 설정 부분에서 공을 많이 들였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세계관, 사건들이 뭉쳐지고 인물들이 많이 나오면서 도입부를 읽을 때의 집중력과는 달라졌다. 후반부에는 어떻게 끝날까 생각하면서 마지막 회차까지 읽어서 아쉬웠다. 초반의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친절하게 세계가 구체화되었다면 더욱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허나 이만큼 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크나 판타지 세계의 재해석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한번 스윽 읽어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