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소에서 일하는 진 경사는 이상한 신고전화를 받는다. 집 근처에서 코끼리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민원. 아마도 얼마 전 동물원에서 사라진 코끼리의 울음소리일 것이라는 신고.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상한 민원은 계속되고,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큰 화제를 부르지만 결국 사건은 미결로 남는다.
정체불명의 코끼리 울음소리. 미결의 사건.
이 작품은 사건의 실체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라진 코끼리와 진 경사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소설은 조금 기대 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현실에 뿌리를 둔 부조리극의 풍경을 비춘다는 점에서 김영하와 박민규의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코끼리라는 거대한 알레고리를 통해 강력한 주제를 설파한다. 결말에 갑자기 몰아치는 이 주제는 조금 갑작스럽고 매끄럽지 못하지만 독자의 공감을 끌어들이기엔 부족함이 없다.
한 마디로, 코끼리는 일종의 맥거핀이다. 사라진 코끼리의 미스터리를 푸는 것이 이 작품의 주요 서사로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 건 사라진 코끼리가 아니라 코끼리의 울음소리를 듣는 이들이다. 코끼리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는데, 그 소리를 들은 이후로 집안 형편이 나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마도)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어딘가 다친 여성들.
여러 이야기가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딸이, 여자친구가, 아내가 당한 사고를 발판 삼아 인생의 새 막을 여는 아버지를, 남자친구를, 남편을 떠올렸다.
진 경사와 같은 경찰인 남편은 그와는 다르게 승승장구한다. 그 승승장구의 시작점은 연쇄 성폭행범 검거인데, 이 사건의 해결의 실마리는 사실 진 경사가 갖고 있었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이란 점도, 범인을 마주치고 체포 직전까지 몰고 간 것도 모두 진 경사였다. 남편은 그러니까, 진 경사가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을 뿐이다.
결국 진 경사도 코끼리 울음소리를 듣는데, 바로 출소한 연쇄 성폭행범이 진 경사에게 보복하기 위해 뒤에서 공격한 뒤, 정신을 잃어가는 그 순간이다. 상처 입은 여성들과 승승장구하는 남성들. 코끼리 울음소리를 듣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거칠고 도식적인 이분법이지만 그만큼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명확해진다.
동물원에서 사라진 코끼리가 인도코끼리던가. 아마 상아가 없었지…….
코끼리는 모계사회다. 암컷 인도코끼리는 유독 상아가 수컷에 비해 짧아 보이지 않는다. 암컷 코끼리의 울음소리. 분명 목소리는 존재하지만 그 실체는 보이지 않는 부조리. 누군가에겐 너무나 크게 들리지만 누군가에겐 전혀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 이 울음소리가 세상을 집어삼키더라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돌아갈 것이다.
들리지 않는 코끼리의 울음소리는 그래서 더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