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판타지 소설 중에서 한국형 판타지 소설은 은근히 찾기 어렵다. 그 중에서도 취향에 맞는 소설을 만나기란 살짝 과장을 보태자면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해원부 병과 33팀>은 나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설이었다.
귀물들은 등장부터 강렬했다. 다온을 뒤쫓던 범죄자를 끽해야 겁이나 좀 주고 경찰로 인계하나 싶었는데 웬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쪽쪽 빨아먹은 후 인계하는 요사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직원이 귀물이고 고객 또한 귀물이나 귀신이라 관련 업무가 지루하지 않아보여 내심 이 회사에 입사한 다온이 부러웠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하루하루를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좋아보이던지. 그러나 다온이는 나와는 달리 회사에 다니면서도 뭔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는 듯했다. 굳이 왜 저렇게까지 비관적으로 생각을 하나 싶었지만 이야기의 후반부에 구체적인 이유가 밝혀지면서 그간의 행적이 납득되었다.
다온이 속한 팀의 주 업무는 해원을 도와주는 것으로, 간단하게 말하면 귀신이 가지고 있는 미련을 털어내고 천도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좋아했던 점이었다.
물론 나는 악마나 악귀들을 퇴마하고 제령하는 내용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는다.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를 읽을 때는 한국형 이야기보다는 일본이나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보고 즐기는 것에 더 가깝다. 기본적인 사건 해결방식이 퇴마인 점이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무속의 기본적인 입장은 해원이다. 귀신이라고 무조건 퇴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미련을 없애주는 것. 그래도 말썽을 부릴 때만 따끔하게 회초리를 드는 것. 이는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해당한다. 상담을 통해 귀신들과 산사람들이 가진 마음병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무속의 기반이라고 본다.
다온이 다니는 회사는 해원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퇴마부도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퇴마부가 아닌 해원부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 이게 한국형 무속 판타지와 가장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2부가 시작되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인 다온이 해원부에 있는 이상 큰 틀은 바뀌지 않지 않을까. 물론 내 예상이 틀릴 수도 있으니 확언은 못하겠다.
다온의 팀이 일을 해결하면서 다양한 사연을 가진 귀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직도 이상형을 만나지 못해 해원하지 못한 몽달귀, 자신을 알아준 대감마님을 위해 은혜를 갚은 김원, 동생을 만나기 위해 기다린 필녀부인까지. 그 외에도 많은 귀물들이 해원하는 것을 보며 나도 같이 따라 울고 웃었다. 다온이네 팀이 보여주는 팀워크, 동료애, 인간적인 모습까지 <해원부 병과 33팀>에서는 사람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행복했다.
거기다 귀물들의 사고방식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라 빚어지는 소소한 해프닝이 깨알같은 웃음 포인트로 들어가 있어 읽는 내내 무척이나 즐거웠다는 건 덤이다. 특히 귀물들의 대동제는 내가 눈 앞에서 관전하는 것 같이 생생해 손에 땀을 쥐고 읽었기도 하고.
다온이 상처를 극복하고 힘차게 돌아오는 2부가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희노애락이 가득하고 정겨운 한국형 판타지를 읽고 싶다면 자신있게 <해원부 병과 33팀>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