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도로당, 길을 준비하는 자 단상

대상작품: 눈물을 마시는 새 (작가: 이영도 출판, 작품정보)
리뷰어: 하리야 헌처크, 20년 6월, 조회 275

유료도로당은 길을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전략). 여행자가 무엇인지 말해 주겠소?” (생략)

“여행자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그럼 우리 유료 도로당은 무엇인지 말해 주겠소?”

“우리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를 위해?”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 본문 중

 

유료 도로당은 인상적인 집단입니다. 챕터 제목 ‘길을 준비하는 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닦고 수리하고 또 그들에게 요금을 낸 자들을 지킵니다. 

 

그런 유료 도로당원들에게, 주퀘도 사르마크도 권능왕도 단지 ‘은편 열 닢’으로 밖에는 취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 – 킴(인간)도, 도깨비도, 레콘도, 심지어는 나가도 – 은 모두 은 편 열 닢으로 환산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가 물질 중심적이며, 그렇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물질적인 잣대로 평가받는 어이없는 사회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또 실제로 느끼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비인간적이며, 인간이 더이상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사회라고 자조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 사회의 특징인 인간에 대한 값어치를 매기는 것이, 그러나 유료 도로당에 의해서는 모든 사람은 은 편 열 닢이라는 평등한 관계로 평가됩니다. 

 

유료 도로당의 그런 행위는, 마치 인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듯 처음에는 생각되지만, 실은 모든 인간의 가치를 제로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도, 왕이 될뻔한 자도, 나가도, 인간도, 레콘도, 도깨비도, 심지어는 신을 잃었기에 가장 귀중한 것을 잃은 두억시니 마저도, 그들에게는 단지 통행료로 평가되는 사람일 뿐입니다. 

 

유료 도로당에게 패배한 주퀘도가 쓸쓸히 관문을 통과할 때, ‘은편 열 닢’이라고 값어치를 매겨버리는 그런 이면에는, 유료 도로당 앞에서는 인간이 비로소 인간다울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인간을 단지 인간으로써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무슨 대학 출신> 혹은 <무슨 직업을 가진 사람> 또는 <어디 가문 태생> 같은 딱지를 붙인 인간을 보는 것은 모두 헛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유료 도로당원들 앞에서, 신을 잃었기에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두억시니는, 비로소 그들의 목적 – 나가와 레콘, 도깨비와 딱정벌레를 쫓는 – 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료 도로당은 길을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의지가 있다면,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될 수 있고, 삶의 목적이 있기에 그것만으로 인간은 인간으로써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금을 낼 수 없는 두억시니를 통과시키지 않는 유료 도로당의 행위는?

 

원칙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정을 가치 판단의 근거로 삼지 않습니다. 네. 두억시니는 불쌍한 자들입니다. 신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유료 도로당원들은 그런 불쌍한 두억시니에게,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이라는 가치를 부여하고 그러한 가치를 인정받은 사람인 두억시니가 그들의 의무를 다하기를 원합니다. 

 

돈이 없는 두억시니에게 그러한 원칙은 가혹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료 도로당원들은 사모 페이가 요금을 대신 내는 것까지 막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들은 오히려 길잡이인 케이건 드라카가 두억시니의 요금을 대신 내어주기를 슬며시 시험합니다. 그것은.

 

존중되는 원칙 가운데, 더불어 사는 삶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그렇기에 원칙은 깨어지지 않으면서, 모두가 존중되고 동일한 가치를 부여받는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유로 도로당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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