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남자

  • 장르: 추리/스릴러 | 태그: #아버지 #아들 #분단 #현대사
  • 평점×659 | 분량: 47회, 1,064매
  • 가격: 44 3화 무료
  • 소개: 남북분단의 가슴아픈 현대사를 배경으로 사십여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세상과 가족,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만 했던 한 사내의 이야기를 스릴러 장르로 풀어낸 박성신... 더보기
작가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은 내 가슴 위의 돌덩이를 치우는 작업이다. 비평

리뷰어: 후더닛, 17년 8월, 조회 49

 뭘 해도 안되는 남자. 팔리지 않는 소설가. 그가 바로 소설의 주인공 최대국이다. 이름은 대국이지만, 현실은 먹다 남긴 복국보다 못한 신세다. 재산은 사기로 날렸고 아내에겐 이혼 당했다. 그는 오늘도 자살할 자리를 찾아다닌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오늘 저녁에 아버지가 총을 맞고 중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주인공은 시큰둥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번도 자신을 살갑게 대한 적이 없었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다운 모습조차 보인 일이 없었다. 자신이 망한 인생 팔할은 아버지 책임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왜 상관을 할 것인가? 어차피 자신도 죽을 작정인데.

 그런데 남자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아버지의 수첩을 찾아오면 3억을 주겠다는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예쁜 딸, 이제는 다른 남자가 아버지가 되어버린 딸에게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이었던 대국은 아버지가 비밀리에 감춰둔 수첩을 찾아 나선다. 이 이야기와 병행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38년 전 과거의 이야기로 실은 대국의 아버지의 이야기다. 그의 이름은 월출. 그는 놀랍게도 남파 간첩이다. 제목의 ‘제 3의 남자’란 바로 월출을 가리킨다. 그는 비록 남파 간첩이긴 해도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아니 속할 수 없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국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처럼.

 북에 남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위험한 임무를 여럿 수행했으나 그의 삶은 여전히 불안하고 한없이 고독하다. 간첩에게 보통 사람의 인연이란 사치이자 시한 폭탄 같은 것. 언제 그것에 발목을 잡힐지 모르고 또 언제 그들이 자신 때문에 위험에 처할 지 모른다. 월출은 눅눅한 세월의 먼지 가득한 작은 책방에서 자폐의 삶을 보낸다. 하지만 우연한 만남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홀연히 자신의 삶 안으로 들어선 여성. 그 여자, 해경. 월출은 마음을 접으려 하나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그녀와 연인이 된다. 그러나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시작한 것에 대한 형벌이었던걸까? 사랑은 그의 삶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그것은 대국의 삶마저 휘청거리게 만든다.

 ‘제3의 남자’는 ‘아무리 오래된 과거라 해도 우리의 현재가 결코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마도 소설의 주역들을 부자 관계로 묶인 것은 과거와 현재가 혈연만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현재 대국이 지닌 상처의 근본은 과거에 있었다. 현재 그가 알고 있는 것 대부분도 진실은 아니었다. 월출이 남파 간첩으로 거짓된 정체성 속에서 살았던 것 그대로 대국 역시 따지고 보면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대국이 찾는 ‘검은 수첩‘은 단적으로 ‘과거를 모르는 모두가 거짓된 정체성의 존재들’이란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검은 수첩’은 진실된 정체성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제3의 남자’는 ‘잘못된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으면 어떤 비극이 일어나고 반복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5공 시절 고문기술자로 악명이 높았던 이근안을 연상시키는 존재가 등장한다. 비극의 배후요, 만악의 근원이다. 이런 자가 그 오랜 세월 변함없이 활개를 칠 수 있었던 것도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잘못된 과거에 아무 관심이 없었던 우리 자신 때문이기도 하다. 적폐의 탄생은 탐욕 때문이지만, 지속과 반복은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 탓이다. 대국은 그런 우리들을 반영하는 존재다. 그는 자신의 삶이 그리 망가진 진짜 이유를 모른다. 그러면서 괜히 남탓만 한다. 우리의 시선도 비슷하지 않을까? 진실된 정체성이 기록된 ‘검은 수첩’의 작성자인 아버지, 월출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진짜 역사를 상징하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대국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잘못된 과거라면 더더욱 관심과 참여로 바르게 청산하여야 비정상의 사회에게서 받는 피로와 통증이 가셔질 것이다. 적폐 청산은 가슴을 짓누르는 돌덩이를 치우는 작업이다. 내가 제대로 숨 쉬고 살기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