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조의 스케치

  • 장르: 판타지, SF | 태그: #코로나 #초능력 #비말 #응징 #김아직작가 #코로나시대 #판타지 #SF
  • 평점×59 | 분량: 49매 | 성향:
  • 소개: 연작 <코로나 시대의 낙석동>의 첫 작품입니다. 코로나 시대의 어느 중소도시 동네(낙석동)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인물 군상들의 생존기입니다. 첫 작품 [김문조의 스... 더보기

김문조의 스케치

미리보기

김문조는 아홉 살 이후로 40년간 그 능력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힘을 쓰고 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홉 살 가을에는 앞니가 빠져서 귀엽게 웃고 다니던 누이동생을 잃었다.
당시 김문조는 소리내어 울지도 못했다. 염치라는 말을 배우기 전이었으나 동생의 죽음을 초래한 장본인이니만큼 나는 통곡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꺽꺽 소리를 들숨에 섞어 안으로 빨아들이며, 삼키는 울음을 울었다.

몇 해가 지나자 울대를 뻐근하게 채우는 열감과 통증이 울음을 대신했다.
스물두어 살 때였던가. 친구들과 휴가지 해변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돌연 울대가 아파서 주저앉은 적이 있었다. 친구들이 몰려와서 이유를 물었으나 실수로 모래를 삼켰다고 둘러댔다. 동생이 좋아하던 병아리색 옷을 입은 어린애가 지나가는 걸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월은 슬픔보다 힘이 셌다.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직장을 옮겨 다니고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며, 소위 말하는 어른의 삶이란 것들에 깊이 연루되면서 동생을 잃은 아픔도 묽어질 대로 묽어졌다. 언제부턴가는 앞니가 빠져서 돌아다니는 꼬맹이들을 보아도 무덤덤했다.
김문조는 시골의 노모가 여전히 동생의 생일과 기일을 챙긴다는 걸 알면서도 알은척하지 않았다. 동생 생일상과 제삿상 차리는 데 보태라고 돈이라도 좀 부칠까 하다가도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과거란 이미 엎질러진 물 아니겠는가. 무려 40년. 이쯤 했으면 추모고 나발이고 때려치울 때도 되었다 싶었다.

과거의 비극이 임계점을 넘어서자 망각이 찾아왔다.
김문조는 40년 만에 그 힘을 다시 써 보기로 맘먹었다.
낙석동 단골 밥집 이모네 육개장에서였다.

재개발 이후 찻길 하나 건너에 고층 아파트숲이 생기는 바람에 구단지의 생활물가도 덩달아 뛰었는데, 그 와중에도 몇 년째 3900원에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데가 이모네 육개장이었다. 그날도 김문조는 야간 경비직 출근을 앞두고, 육개장에 천 원짜리 계란찜을 추가하여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있었다. 문제는 헐한 밥값에 벌레들이 꼬인다는 점이었다. 언제부터 식당에 죽치고 있었는지도 모를 늙은이들이었다. 김문조가 지켜본 바로는 10분 단위로 계란말이 같은 사이드메뉴와 소주를 추가 주문하면서 낮술자리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벌게진 얼굴로 하나같이 목소리도 커서 비말이 이리저리 튀는 게 육안으로도 보였다. 20대로 보이는 커플이 주문을 하려다 말고 노인들을 힐긋거렸다. 결국 커플은 식당을 빠져나갔고, 혼자 밥을 먹으러 온 긴머리 여자도 뚝배기에 말아놓은 밥을 반도 못 건져먹고 나가버렸다.

김문조도 처음부터 그 힘을 떠올린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 생각해서 목소리를 조금만 낮춰달라고 좋게 부탁도 해 보았다. 그러나 반주 한 잔도 속편히 못 하느냐, 너는 집에 아버지도 없느냐는 대거리만 돌아올 뿐이었다. 노인들은 이내 하던 이야기로 돌아갔다. 선산에 물이 차는데도 나 몰라라 하던 6촌 아무개가 췌장이 썩어서 급사했다는 둥, 거래처 김 사장의 세컨드가 자기한테도 가랑이를 벌리더라는 둥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이 비말과 함께 사방으로 튀었다. 속으로야 빌어먹을 노인네들 뒈져버리라고 욕을 뱉을지언정 그때까지만 해도 김문조는 그 상황을 잘 참아냈다. 하지만 노인 하나가 두 팔을 뒤로 뻗어 자기 의자 등받이를 감싸는 과정에서 옆 테이블 학생의 마스크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민폐가 끝이 없었다.
“아이, 씨!”
학생이 짜증을 내며 마스크를 줍는데도 노인은 곁눈질로 힐긋 보고는 다시 뭐라 뭐라 침을 튀기기 시작했다.

김문조는 가방에서 만년필과 작은 메모지를 꺼냈다. 종이가 더 컸더라면 좋았겠지만 일을 도모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40년 만이었다.
김문조는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사각사각. 만년필이 움직였다.

내 뜻대로 되는 세상을 놔두고 그동안 왜 그렇게 어수룩하게 살았을까. 더러운 침덩어리를 막아버릴 방법이 있었는데 뭐 하러 저 개소리를 참고 들었던 거냐고!
사각사각. 메모지에 사람이 하나, 둘, 셋 그려졌다.
노인들이었다.
한 놈은 안경을 썼고, 또 한 놈은 눈두덩이에 사마귀가 있고 나머지 하나는 쥐새끼마냥 하관이 빨았는데 셋 다 이모네 육개장에 죽치고 있는 노인들과 놀랍도록 흡사했다. 입 모양만 빼고는…….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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