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 딴 마음이 있어서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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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를 등에 태운 채 도서관 입구에 도착한 호랭이는 재빨리 아기 고양이 크기로 줄어들어서 계단을 올라가는 마고의 어깨에 올라탔다.

 

“그냥 걸어 가.”

 

“맨날 너 태우고 다니는데, 이럴 때라도 내가 타야지.”

 

“발톱 조심해. 아끼는 옷이란 말야.”

 

마고는 태연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서가 사이를 걸었다. 칸칸이 꽂혀있는 두루마리들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눈으로는 사서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들은 안쪽 벽면을 차지한 진열장 주변을 구석구석 살피고 있었다.

 

진열장에는 갖가지 신물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소리를 담았다가 원할 때 다시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소라껍데기, 거센 바람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부채, 아무리 큰 물건이라도 얼마든지 담아 보관할 수 있는 주머니, 대책없는 음치도 명창 소리꾼으로 둔갑시켜주는 단소, 술을 담으면 마개를 닫을 때까지 술이 마르지 않는 호로병, 헤어지더라도 언젠가 꼭 다시 만나게 해주는 붉은 실 뭉치 등등.

 

그 중 한 칸이 비어 있었다. 아무리 멀리 있는 대상도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게 해주는 천리경이 있던 자리다.

 

“갑자기 천리경은 왜 찾는 거야? 내내 방치되어 먼지만 허옇게 쌓여 있었는데.”

 

“몰라. 천제님이 뭔가 보고 싶으신 게 있다나 봐.”

 

“정말 맘에 안 드는 분이야.”

 

“어흥! 어흥!”

 

“도서관에서 정숙해야지, 호랭아.”

 

“네가 자꾸 불경한 소릴 하니까 그러는 거 아냐. 그나저나 천리경 어떻게 할 거야? 보는 눈이 많아서 얌전히 돌려 놓긴 힘들 것 같은데.”

 

“그냥 이대로 내가 가져버릴까?”

 

호랭이의 황금빛 눈이 한심하다는 듯 가로로 길어졌다.

 

“그러다 수사 달팽이 풀면 네가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쳇, 그 느림보들쯤이야.”

 

“느려도 범인을 확실히 찾아낸다구.”

 

사서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마고의 시선이 신물 진열장 옆의 바닥에 놓인 작은 항아리에 멈추었다.

 

“응? 저건…?”

 

“아, 별로 소장 가치가 없다며 신물 자격을 상실해서 퇴출될 거라고 들었어.”

 

“좋은 생각이 났어.”

 

마고가 눈을 반짝이자 호랭이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네 좋은 생각은 보통 안 좋던데.”

 

“호랭이 네 도움이 필요해.”

 

“역시. 안 좋은 생각이야.”

 

“들어 보지도 않고?”

 

“확실해.”

 

“호랭이 네가 아주 작게 변한 다음에 저 요강을 굴려서 뚜껑을 여는 거야. 그럼 내가 그 혼란을 틈타서 천리경을 원래 자리에 올려 놓을게.”

 

“싫은데.”

 

“앞으로 한 달간 소향이와 매일 만나서 시간을 보낼게.”

 

“약속 지켜.”

 

소향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마고의 제안을 수락한 호랭이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흰 먼지뭉치처럼 보일 정도로 작아졌다. 소향이의 신수도 호랑이였는데, 호랭이가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신수는 자기의 짝인 천인과 오랫동안 멀리 떨어질 수가 없기 때문에 천인들끼리 만나지 않으면 그 신수끼리는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홀씨인 척 신물 진열장으로 접근한 호랭이는 툭 쳐서 요강을 굴리고는 앞발로 코를 틀어막고 뒷발로 서서 어기적거리며 마고 옆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데굴 구르며 뚜껑이 열린 요강에서는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도서관을 가득 메운 것은 지독한 분뇨의 매운 냄새였다. 방문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 밖으로 뛰어나갔고, 사서들은 눈물을 흘리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헤맸다. 일부는 서가 사이에 엎드려 구토를 하기도 했다. 과연 뚜껑이 열리면 끝없이 악취를 흘리는 요강은 신물의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 마땅한 저급 귀물이었다.

 

“모든 문과 창문을 열어라!”

 

도서관장이 큰소리로 명령을 내리고 신물 진열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선반에서 부채를 집어들고 굴러다니는 요강을 세워 뚜껑을 덮은 다음 바람을 일으켜 냄새를 밖으로 몰아냈다. 강한 바람 덕분에 서가에 꽂혀있던 두루마리들도 일부 날아다니기 시작했지만, 구석구석에 악취가 배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마고는 그 틈을 이용해서 날아다니는 두루마리들 사이에 천리경을 슬쩍 흘렸다. 사서들이 나중에 이 난리통을 정리하다가 발견하게 되겠지. 코를 틀어막고 현관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마고의 발에 두루마리 하나가 채였다. 무심코 제목을 읽은 마고는 두루마리를 얼른 집어 소매에 감추고는 도서관을 나섰다.

 

“이 난리를 치르고 또 뭘 훔치는 거야?”

 

호랭이의 핀잔에도 아랑곳않고 잰 걸음으로 집에 돌아간 마고는 책상 앞에 앉아 두루마리를 펼쳤다.

 

“별안간 공부를 할 마음이 들었어? 뭔데 그래?”

 

“아, 방해 좀 하지마. 네가 고양이야?”

 

호랭이가 자꾸 두루마리에 앞발을 뻗자 마고는 퉁명스럽게 밀쳐내고 독서를 이어갔다. 그냥 읽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백지를 펼쳐 중요한 내용을 옮겨 적기까지 했다. 심심한 표정으로 배를 까고 누워있던 호랭이가 어깨너머로 내용을 살폈다.

 

기후에 따른 계절별 추천 작물, 논밭의 관리법, 파종 시기와 방법, 병충해 예방법 및 관리 대책, 수확 시기와 보관 방법 등. 그렇다. 그것은 농업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가 적혀 있는 두루마리였다.

 

“아무리 후궁이 되기 싫어도 갑자기 농사를?”

 

“그거겠냐?”

 

“그럼?”

 

마고는 입을 꾹 닫고 필사를 이어갔다.

 

“마고 너 설마?”

 

호랭이의 황금빛 눈이 가로로 길어졌다.

 

“그 남자에게 주려고?”

 

마고는 뜨끔했는지 잠시 손을 멈추었다가 다시 경작지의 수로 관리법에 대한 정보를 적어 나갔다.

 

“진짜야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