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 여자 셋에겐 너무 좁지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사아의 얼굴을 살피던 기린은 깜짝 놀라 술 취한 아저씨 같은 소리가 단전에서 올라와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사낭에서 상반신만 삐져나온 채 어두운 골목길 바닥에 의식도 없이 누워있는 노파는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무속인, 서해안 대동굿의 전승자, 인간문화재 김선정 선생님이었다. 기린을 삼베 보자기에 싸서 비원으로 보낸 당사자이자, 저승 선발대로서의 임무가 어느 정도 진척이 되면 다시 현세로 소환해주기로 한 무당이 왜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누워있는 것인가?

 

태준은 태준대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조수 고준이 놈이 어이없는 실수를 해서 하루도 안 지난 사낭을 찢는 바람에 흘러나온 미성숙 사아를 깨울 능력이 그에게는 없었다. 큰돈 들여 장만한 밴타리움 반지의 도움을 받아도 암력이 부족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호랭이에게 이 장면을 들켜서 몰래 폐기를 할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눈 감아주는 대가로 이번에는 뭘 뜯어 내려나. 바이크 두 대 뜯긴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쟤 또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내가 도와줘?”

 

“저, 정말? 그럼 고맙지.”

 

호랭이의 제안에 태준은 반색을 하면서도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근데 너무 일찍 꺼내서 나도 장담은 못하겠네. 밴타리움 반지 하나 정도 끼우면 어떻게 가능할 것 같은데.”

 

“그거였냐, 네 속셈?”

 

“속셈이라니 말 섭섭하게 한다? 에이, 그냥 가던 길 가면서 산파국 게시판에 글이나 하나 올려야겠다. 기린, 가자!”

 

“에헤이, 잠깐 기다려!”

 

다급하게 붙잡는 태준이를 무시하고 돌아서는 척 하던 호랭이는 그제야 굳어있는 기린의 얼굴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아까는 그냥 어두운 곳에 사아가 누워있는 걸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지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알았어. 반지 하나 줄게.”

 

태준이 합성 피혁 장갑을 벗으니 다섯손가락 전부에 검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호랭이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사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기린을 한쪽으로 끌고가며 대답했다.

 

“잠깐만. 조수랑 상의 좀 하고.”

 

“야, 상의할 게 뭐 있어? 조수 것도 하나 줘?”

 

투덜거리는 태준이에게서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는 호랭이가 기린의 눈앞에 손을 흔들었다.

 

“왜 넋이 나갔어? 저 사아 아는 얼굴이야? 혹시 네가 말했던 쌍둥이?”

 

“뭔 바보같은 소리야? 저 할머니랑 내가 어떻게 쌍둥이냐?”

 

“그런가…”

 

기린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호랭이의 엉뚱한 생각을 일축했다. 하지만, 지구에서 쌍둥이였다 해도 사망하는 연령대가 다를 경우에 비원에서는 각각 젊은이와 할머니의 모습을 가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호랭이처럼 생각하는 것도 이해해줄 여지는 있다. 애초에 쌍둥이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 물론 기린도 비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분명히 쌍둥이 오빠라고 언급했던 것을 잊은 호랭이가 다소 바보스러운 것도 맞다. 어쨌든 기린은 무당의 얼굴을 본 충격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자, 여기 밴타리움 반지 두 개 줄게. 조수랑 하나씩 써. 조수 이름이 뭐였더라, 기린입?”

 

기다리다 못한 태준이 쫓아와서 검은 반지 두 개를 내밀었다.

 

“기린.”

 

호랭이가 대신 대답하고는 반지를 받아 양손 엄지에 끼웠다. 광석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압축 가공된 밴타리움은 젤리와 비슷한 정도의 탄성을 가지기 때문에 누구의 손가락이든 딱 들어 맞았다.

 

“이제 계산 끝났으니까 어서 좀 깨워 줘.”

 

태준이 다시 찢어진 사낭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재촉했다. 따라 움직이려는 호랭이의 옷깃을 기린이 붙잡고 속삭였다.

 

“저 사아 우리가 데려가야 해.”

 

“뭐? 왜?”

 

“나중에 설명할게. 정말 중요한 일이야. 보호소로 보내면 절대 안 돼.”

 

“아니, 말이 쉽지.”

 

“부탁해.”

 

작은 목소리로 말하느라 턱을 치켜들고 얼굴을 가까이 해서 간절한 표정이 더해진 기린의 눈빛에 호랭이는 마음이 흔들렸다. 어디서 이런 애가 나타났지. 내 경력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그래, 칸자한테 당할 뻔 했던 거 구해 준 보답이라 치자.

 

“야, 태준아!”

 

“아, 왜? 더는 못 줘! 너도 양심이 있으면…”

 

“그런 게 아니고! 지금 이 사아 깨워 봐야 껍데기 밖에 안 남아서 최소 십 점 감점인데, 괜찮겠어?”

 

“에휴, 어쩌겠냐? 깨우지도 못해서 오십 점 깎이는 것 보다는 낫겠지.”

 

태준이 고준을 노려보며 체념한 목소리를 한숨처럼 뱉었다. 고준은 고개를 숙이고 손을 엉덩이께에서 꼼지락거리며 눈치를 봤다.

 

“밴타리움 반지를 두 개나 받은 게 좀 과한 기분이 드니까 내가 떠안을게, 이 사아.”

 

“뭐? 정말?”

 

태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차피 최고 산파 행진도 끊겼고, 한 달 더 쉬어 간다 생각하지 뭐. 이번 달도 네가 먹어라.”

 

태준은 놀라다 못해 감동을 먹은 얼굴이었다. 호랭이는 속이 살짝 거북했다. 누가 보면 내가 프로포즈라도 한 줄 알겠네. 아주 한 마디만 더 하면 손바닥으로 내 눈을 덮으려 들겠어.

 

손바닥으로 서로의 눈을 가리는 것은 영혼공명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상대의 시야에 어둠을 제공하고 그를 통해 서로의 영혼을 교감하고 공유하는 행위다. 이는 사랑하는 사자들 사이에서도 행해지고, 태준 고준 노준처럼 필요에 의해 일족이 되기 위해서도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호랭이가 일족을 가리켜 가족의 확장된 개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13구역으로 옮겨서 깨울게.”

 

호랭이가 찢어진 사낭을 대충 묶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