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 시끄럽고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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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공기가 시원했다. 기린은 입을 크게 벌리고 오랜만의 자유를 맛보았다. 호랭이가 바로 옆에서 나란히 달렸다. 외곽도로라 그런지 텅 비어 한가했다. 그래도 초보나 마찬가지인 기린이 속력을 과하게 높이는 것 같아 호랭이는 약간 불안했다.

 

“속도 좀 줄여!”

 

호랭이가 오른쪽으로 붙어서 왼손을 흔들어 주의를 주었지만, 기린은 즐거운 표정으로 오른손목을 꺾어 속도를 더 올렸다. 별도 달도 없이 허여멀건 밤하늘도 이제 익숙해졌다. 사자들의 로망이 반영된 듯 도로를 따라 서있는 가로등은 손톱달 모양을 본뜬 디자인이었다.

 

암합성을 통해 어둠에서 에너지를 얻고 밝은 빛에 노출되면 힘을 잃는 것과는 별개로, 사자들은 대부분 시야 확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빛이 필요했다. 일부 사자들은 어둠 속에서도 문제없이 앞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아마도 죽기 전에 지구에서 야행성 동물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되었다.

 

중앙선을 표시한 노란 페인트의 점선이 쏜살같이 뒤쪽으로 날아갔다. 마모된 부분이 전혀 없는 새 타이어가 아스팔트 도로를 움켜쥐듯이 달렸다. 쓰로틀을 당길 때마다 엔진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격하게 진동했다. 기분이 좋았다.

 

“와아아아!”

 

기린이 즐거워하며 함성을 지르자 호랭이도 어쩔 수 없이 따라 웃었다. 지금은 말릴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시끄럽고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

 

기린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바이크의 굉음과 온몸으로 공간을 가르는 바람소리 그리고 귀를 막은 헬멧 때문에 호랭이는 못알아들을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그 말은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한 것일 수도 있다.

 

“난 항상 조용히 조심스럽게 살아 왔거든. 상심에 빠진 부모님을 위로해줄수 있는 딸의 역할에 충실해야 했어. 문제만 일으키는 쌍둥이 오빠 몫까지 세 사람 역할을 혼자서 떠안으려고 했지. 솔직히 힘에 부쳤어. 나도 가끔은 뛰쳐 나가고 싶었다고.”

 

호랭이는 기린의 말이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해했다. 그도 가족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이 세인들에게 가지는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비원에 존재하는 일족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호랭이는 사낭에서 꺼낸 사아들이 지구에 두고 온 가족을 걱정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죽음이라는 힘겨운 과정을 거쳐 지구를 떠나 비원으로 떨어진 것은 사아 자신인데 왜 멀쩡하게 지구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가족들의 걱정을 하는 걸까.

 

오르막길의 끝에서 기린은 바이크를 세웠다. 완만한 경사의 절벽 아래로 한밭 시내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물론 지구에서처럼 까만 어둠과 반짝이는 색색의 조명이 대조를 이루는 야경은 아니었다. 덜 밝은 덕분에 덜 어두운 걸까. 그렇다면 혹시 지구에서의 온갖 추악하고 어두운 참상들은 그와 대비되는 화려하고 밝은 면 때문에 생겨난 것일까.

 

“가족들이 그리운 거야?”

 

엔진 소리가 잦아든 틈을 타 호랭이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비록 번지수가 틀리기는 했지만 기린은 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빙긋 웃음이 나왔다. 바로 이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듣기 전까지는.

 

“너도 아이가 있어?”

 

뭣이 어째? 이 사자가 누구 혼삿길 막을 일 있나! 못하는 소리가 없네?

 

“아니! 없거든?”

 

“아, 난 또… 아이를 그리워 하는 건가 했지.”

 

“그런 질문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무례하다고! 내가 결혼이나 임신을 원하는지와는 별개로 말이야.”

 

“미안. 몰랐어. 아이나 가족에 대해 잘 몰라서.”

 

“너는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걸 모르니? 비원에 오기 전까지 합하면 최소 팔구십은 되겠구만. 아무리 개념이 다르다고는 해도 명색이 산파라는 애가 말이야.”

 

기린의 핀잔에 호랭이는 억울한 표정으로 바이크의 시동을 껐다.

 

“그런 문제가 아니고! 여기 비원은 가족이라는 개념도 없고, 아이를 낳는 일 자체가 없다고 했잖아. 어떤 건지 대충 알긴 해도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고.”

 

“쯧쯧 이 무지한 비원 호랭이, 내가 나중에 가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줄게.”

 

기린은 비원에 대해 뭘 모른다고 구박만 받다가 반대의 입장이 되니 왠지 통쾌한 기분이었다.

 

“근데 지구에서의 가족도 그 시작은 출산이 아니잖아?”

 

“그게 무슨 뜻이야?”

 

“내가 배운 내용대로라면, 한 가족이 새로이 형성되는 것은 가족이 아니었던 두 세인이 만나는 것부터 시작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그건 그렇지.”

 

“그 단계에서의 가족이라면 비원의 일족이 오히려 확장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뜻밖에 논리적인 호랭이의 반박에 기린은 말문이 막혔다. 그렇지. 가족이 꼭 혈족일 필요는 없지. 비원의 일족이라는 건 정확히 어떤 걸까. 가족의 확장된 개념이라고?

 

기린이 말이 없자 호랭이는 다시 마음이 쓰였다.

 

“지구에 있는 가족은 몇 명이나 돼?”

 

“엄마 아빠 그리고 쌍둥이 오빠가 하나 있어.”

 

“그러니까 너랑 쌍둥이 오빠는, 너의 엄마와 아빠가 동침을 하고…”

 

“으악!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아!”

 

“아까는 관심이 많아 보이더니?”

 

“부모님 얘기라면 다르다고!”

 

“흠… 복잡하군. 부모가 낳은 건 그렇게 둘뿐이야?”

 

호랭이의 질문에 기린은 한참을 대답이 없이 한밭 시내의 야경을 아련한 눈빛으로 보며 생각에 잠겼다. 호랭이는 자기가 또 뭔가 실수를 한 걸까 싶어 안절부절했다. 물어서는 안 되는 무례한 질문이었나.

 

“네 살 위 언니가 있… 었어.”

 

과거형이네. 정말로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은 건가. 호랭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기린의 얼굴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