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 그들이 자초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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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야? 기린이 아니라 마고를 알아 본다고? 이건 정말 예상 밖의 전개인데!”

 

어리둥절한 셋에게 둘러싸인 채 무당은 연신 마고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나마 호흡을 시작해서 말소리를 낸 것은 다행이었지만, 기린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무당이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 양반이 저러면 안 되는데. 나를 다시 지구로 돌아가게 해줘야지. 지금 나를 몰라보면 곤란하다고!

 

“마고님…”

 

앞에 엎드려서 계속 절을 하는 무당의 모습에 마고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아가 나를 어떻게 아는 거지? 내 이름까지 알고 있잖아. 기린과 연관된 자라고 했나. 설마 정부측에서 보낸 건 아니겠지.

 

“역시나 뭔가 골칫거리를 끌고 들어왔구나. 이 물건은 내 집에 못 둔다. 호랭이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마고의 말에 무당은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이 호랭이를 돌아봤다. 그리고는 다시 네발로 기어서 호랭이 앞으로 다가가더니 얼굴을 살폈다.

 

“호랑님!”

 

무당의 눈이 커지더니 마찬가지로 머리가 바닥에 닿게 절을 했다. 깜짝 놀란 호랭이가 뒤로 물러섰는데도 쫓아가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너무 일찍 꺼내서 정상이 아닐 줄은 알았지만 이건 너무 괴상하잖아. 말을 못하는 건 아닌가 본데 그렇다고 할 줄 아는 것 같지도 않고. 하루도 안 돼서 꺼내면 이런 건가. 아, 기린 너 아는 사이라며? 네가 대화를 좀 해 봐.”

 

호랭이의 말에 무당이 기린을 돌아보고 눈을 굴리며 중얼거렸다.

 

“기린…”

 

그러다 다시 마고 앞으로 기어가서 납작 엎드렸다.

 

뭐야? 나는 왜 기린님이 아닌 건데? 나한테는 왜 절을 안 하는 건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나를 완전 생전 처음 본다는 듯한 눈빛이잖아. 아니, 이미 죽었으니까 생전 처음이 아니고… 뭐라고 해야 되지? 아, 아무튼!

 

“역시 마고를 알고 있는 것 같네. 마고도 이자가 누군지 알고 있어?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나한테 왜 호랑님이라고 하는 거야? 아무나 설명 좀 해 줘!”

 

호랭이가 닦달했지만 마고로서는 무당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호랭이가 천계의 호랑이였다는 사실 또한. 이제 저 아이에게 사실을 말해 줄 때가 온 것인가. 기린이 나타난 이후 요동치는 흐름을 계속 느껴왔지만 시간을 끌며 기다렸다. 하지만 더 이상 물꼬를 틀어쥐고 있을 수가 없을 것 같구나.

 

마고는 기린을 보았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있는 얼굴, 달달 떨리는 손가락, 그러면서도 무당에게 고정되어 있는 시선. 우선 기린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고 결정하자.

 

“너부터 사실을 있는대로 털어놔. 그럼 내 이야기를 들려 줄게. 내가 너희를 도울지 말지도 결정하고.”

 

기린으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자신을 저승으로 보낸 무당이 죽어서 이곳에 와버렸고, 청장과의 골드투스 연결도 먹통이고, 무당은 미숙아로 사낭에서 나온 탓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마고를 신봉하는 모양새였다. 지금 상황에서 누군가 자신을 도울 수 있다면 그건 이천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마고뿐이었다.

 

“모든 걸 솔직히 얘기할게. 마고도 이리 와서 앉아.”

 

기린의 말에 무당이 바닥에 대고 있던 머리를 들어 기린을 노려봤다. 그 눈빛에는 공포와 분노가 서려 있었다. 기린은 그 이유를 알아차리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것이 마고님께 반말하는 게 충격적이죠? 인간문화재 선생님도 이제 익숙해지셔야 해요. 왜냐면, 나는 이제 너한테도 반말할 거니까.

 

“거기 무당도 절 그만하고 이리 와서 앉아.”

 

셋이 소파에 앉자 무당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겨 마고 옆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마고 곁에 너무 바짝 붙으려고 들어서 마고가 영력을 써서 슬쩍 밀어내야 할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무당은 기린에게 계속해서 불만 섞인 눈빛을 날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거참 불편하게 하네.

 

“이 할머니는 지구에서 인간문화재였던 무당이고, 나를 이곳에 보낸 장본인이야. 그날로부터 사십구 일 후에 나를 다시 소환해주기로 했는데, 어쩐 일인지 자기가 여기로 와버렸네. 상태를 보니 나처럼 산 채로 온 것 같지는 않고 죽은 거겠지.”

 

호랭이가 영력 측정기를 무당에게 향하고 수치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린을 처음 만났던 날, 기린의 영력이 없는 걸로 나와서 당황케 했던 그 측정기다.

 

“그래프가 한 쪽으로 찌그러져 있긴 한데 영력은 미숙 사아인 걸 생각하면 의외로 강한 편이야. 너와는 달리 죽어서 온 건 확실해.”

 

“문화재청장의 말대로라면 대한민국 최고의 무속인이었으니까, 영력이 강한 게 당연할 거야.”

 

“그런데 이 자가 너를 여기로 보냈다고? 무슨 벌칙이었던 거야? 만약 너를 괴롭혔던 거고, 복수를 원한다면 내가 도와줄게.”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나도 동의했던 일이었어.”

 

둘의 대화를 들으며 마고는 무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사아가 무속인이라면 내가 누군지 알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한눈에 알아 보다니 인간문화재였다는 기린의 말이 사실이겠군. 게다가 호랭이의 정체까지 꿰뚫어 봤잖아. 무당은 마고의 발치에 무릎을 꿇은 공손한 자세로 앉아서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래서 이곳에 온 목적이 뭔데?”

 

“뭔데?”

 

마고가 날카롭게 묻자 무당도 덩달아 기린에게 바늘처럼 뾰족한 시선을 쏘며 마고의 말을 메아리처럼 따라했다. 영력이나 사자의 건강에 대해 아무런 지식에 없는 기린이 보기에도 무당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깨어난 이후로 한 말이라고는 각자의 이름을 부른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