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키아누 리브스처럼 멋진 동작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사아를 왜 여기로 데려 왔어?”

 

마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호랭이를 쳐다봤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호랭이는 기린을 눈빛으로 찌를 듯이 째려보고 어색하게 자연스러운 척 움직이며 일단 입을 열고는 문장의 뒷부분을 고민했다. 기린은 어찌할 바를 몰라서 손톱만 만지작거렸다. 그래, 귀족풍의 집주인 할머니께 자연스럽게 높임말이 나오는 유교걸이라 미안하다. 너도 안동에 큰집이 있으면 어르신한테 반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거야. 호랭이는 기린의 어깨에 손을 턱 걸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겨우 변명거리가 생각났나 보다.

 

“산파국에서 보내 준 조수인데 오늘 첫 날이라 사아들이 높임말 쓰는 게 재밌었나 봐. 아까부터 계속 저러네.”

 

마고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자 어깨를 쥔 손에 힘이 꾸욱 들어갔다.

 

“장난 그만하고 빨리 제대로 인사해.”

 

“아하하, 미안. 안녕! 기린이라고 해. 호랭이의 조수로 함께 하게 됐어. 잘 부탁할게.”

 

과장된 웃음을 터트리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연극톤으로 대사를 읊는 기린 옆에서 호랭이는 체념한 듯 두 눈을 꼭 감았다. 아, 혹시 이 동네에서는 악수도 안 하나? 손을 얼른 뒤로 뺄까? 아니 그 동선 그대로 손을 올려서 머리를 긁자. 기린이 갈 곳 잃은 오른손의 행보를 결정지은 순간, 마고의 주름진 손이 그의 손을 잡았다.

 

“난 마고야.”

 

악수는 옛날 사람들이 자신의 손에 무기를 쥐고 있지 않으며 상대를 해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보이는 의미로 손을 맞잡은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핸드폰을, 즉 손에 이식한 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악수는 자신의 모든 개인정보를 걸고 상대방을 신뢰한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실제로 악수하는 찰나의 순간을 틈타 상대의 핸드폰에 해킹툴을 심는 범죄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동의하지 않은 근거리 파일 공유나 다운로드를 막는 보안 프로그램의 설치는 필수였다. 물론 기린의 핸드폰에도 락이 걸려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기린은 맞잡은 손을 통해 마고가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몇 안 되는 연락처를 훑어 보고, 길냥이 사진들만 가득한 포토 갤러리를 뒤적거리고, 미처 지우지 못한 스팸 문자들을 읽는 것 같았다. 설마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꺼림칙한 기분에 얼른 손을 뺐다.

 

“산파국에서 보내 왔다고?”

 

“응, 오늘 왔어.”

 

기린은 손바닥을 엉덩이에 슬그머니 닦으며 대답했다. 단단하고 차가운 손의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 설화는 여전한가?”

 

“설화?”

 

“산파국 한밭지부 지부장 말이야. 직원들 무시하는 걸로 악명 높잖아.”

 

한밭? 대전을 말하는 건가? 구체적인 질문에 말문이 막힌 기린을 위해 호랭이가 다시 나섰다.

 

“이제 일 시작한 애가 지부장을 만날 일이 있었겠어? 나도 요즘엔 얼굴 볼 일이 없는데.”

 

“그런가?”

 

“그럼! 아휴, 오늘 자전거도 없이 하루 종일 걸어다니면서 일했더니 많이 피곤하다. 우리 좀 앉자.”

 

기린의 어색한 연기에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더니만, 그의 연기도 형편없기는 매한가지였다. 기지개를 하다말고 소파에 엉덩이를 내려놓는 호랭이를 무시하고, 마고는 기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기린은 그에게 앞이 막혀서 호랭이를 따라 소파로 향하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서 있었다. 마고와 눈이라도 마주치는 순간이면 악수할 때처럼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 볼 것만 같았다. 호랭아,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 우리가 거짓말 하는 거 다 알고 있는 눈치야.

 

“나한테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잖아?”

 

역시 짐작대로였다.

 

“아, 그게… 미안!”

 

호랭이가 엉거주춤 일어서며 사과를 하자 마고는 낄낄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다행히 험악한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다. 여차하면 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도망칠 각오를 하고 있던 기린을 마고가 소파쪽으로 안내했다.

 

“일단 앉아. 거짓말을 지독히도 못하는 둘이서 이천년을 넘게 산 할멈을 속이려 하다니 기가 차는 일이다. 노력이 가상해서 조금 더 놀아줄까 싶었는데 도저히 봐줄 수가 없더라.”

 

“어떻게 된 건지 나도 알 수가 없어서. 내가 상황 파악을 하는 동안만이라도 대충 둘러대려고 한 건데, 초장부터 들통나버렸네.”

 

호랭이는 여전히 기린의 연기력을 탓하는 표정으로 소파에 앉는 모습을 쏘아 봤다.

 

“아무리 조수라지만 보호 고글도 없이 현장에 투입되지는 않았을 테고,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맨 몸인데 내가 의심이 안 들겠냐? 초보 배우가 처음 무대에 오른 것 같은 두 아가씨의 연기는 차치하고 말이야.”

 

마고는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둘을 바라보며 흔들의자에 앉았다. 이제 상황 설명을 해 보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길에서 높임말을 쓰는 애를 마주쳤는데, 얘는 자기 이름밖에 기억이 안 난다 하고. 내 구역에서 내가 모르는 새에 사아가 나타날리가 없잖아. 그렇지?”

 

“하지만 나타났네. 이미 벌어진 일을 두고 그럴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건 아집이야.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마고의 지적에 호랭이는 말문이 막혔다. 기린은 멀뚱멀뚱 눈동자만 움직이며 양 무릎에 손을 얹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마고의 슬리퍼에 눈이 갔다. 어린애가 만든 것처럼 마감이 깔끔하진 않았지만 귀여운 구름 모양의 실내화였다. 조금은 마녀같은 포스의 무서운 이미지였는데 실내화에 왠지 마음이 갔다. 그러고보니 흙 묻은 신발을 신고 집 안에 들어왔는데 괜찮은 건가? K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