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4화 “어머, 세상에나, 언제쯤 오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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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의 차는 언더그라운드 표지판이 서 있는 도로에 멈춰 섰다. 상냥한 작별인사와 무뚝뚝한 화답을 끝으로 세 사람은 헤어졌다. 독과 강은 권민의 차가 주변 자동차들 틈에 섞여 사라질 때까지 전쟁터로 피붙이를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6

 

권민은 이수진의 하숙집부터 들렀다. 낯선 검정 차가 현관 앞뜰로 들어와 멈추자, 거실 소파에 퍼져 있던 주인여자가 경계하며 현관 창문으로 다가가 살폈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키가 6피트 정도 돼 보이는 동양인이었다. 얼굴 생김새는 여자인데, 아시아 여자가 저리 큰 경우는 처음 보았다. 권민이 벨을 누르기 전에 현관문이 먼저 열렸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권민은 영어 발음을 일부러 어눌하게 꾸몄다.

 

“홈스테이 하시죠?”

 

“네.”

 

“제 친구가 예전에 이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가 집주소를 알려줬어요. 아주 좋은 분들이라고 추천하더군요.”

 

“어머 그래요?”

 

주인여자는 예상치 못한 칭찬에 낯빛이 누그러졌다.

 

“혹시 남는 방 있나요?”

 

칭찬보다 더 반가운 말이었다. 실종 사건 이후로 안 좋은 입소문이 돌아 홈스테이를 접어야 할 처지였다. 여자는 권민을 얼른 안으로 들여 몇 가지 캐물었다. 학생이냐는 질문에는 대학원에 진학 예정이라고 둘러대고, 왜 짐이 배낭 하나밖에 없냐는 질문엔 며칠 후에 항공편으로 도착할 거라고 꾸며댔다.

 

권민은 2층 방으로 안내되었다. 주인여자가 나가자마자 건너편 동네를 살폈다. 창문을 통해 대니얼 스미스의 집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앞뜰에 은색 세단이 주차돼 있고 창문 안쪽으로 사람의 그림자가 얼비쳤다. 망원경으로 근접 주시해 얼굴을 확인했다. 의뢰인이 촬영해 온 사진 속 사내 모습과 일치했다.

 

권민은 심야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었을 야심한 시각이었다. 스미스의 집으로 걸어가며 적외선 야시경을 겨누어 살폈다. 집 내부에 사람이 돌아다니는 흔적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집 앞에 주차된 세단 밑바닥으로 접근해 위치추적기(GPS)를 부착했다.

 

시계카메라로 자동차 외관과 번호판 사진도 찍었다. 미행 추적 시에 차량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차 모양과 번호판을 알고 있어야 했다. 권민은 다시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도시락 배달이 중지되는 날짜는 모레다. 당일에 움직일지 미리 움직일지 지켜볼 뿐이다.

 

놈을 감시하기 위해 모든 식사를 방안에서 해결했다. 순간을 놓치면 낭패다. 창문가에 붙인 의자에 망부석 자세로 정지된 채 망원경으로 스미스를 살폈다. 그는 당일 오후가 돼서야 움직였다. 외출준비를 하는 듯 주섬주섬 뭔가를 챙기는 윤곽이 포착됐다. 녀석이 휴대폰 통화를 하며 점퍼를 걸쳤다. 권민도 일어섰다. 침대 위에 3일치 홈스테이 비용과 메모를 남겨두고는 배낭을 챙겨 나왔다.

 

여행 가방을 든 스미스가 문단속을 하고 은색 세단에 올라탔다. 녀석의 자가용이 도로를 타고 사라지자 차 안에 대기하고 있던 권민도 은근슬쩍 뒤따랐다. 차가 움직이는 방향은 본머스에서 런던으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장거리 주행이라서 도중에 행방을 놓친 적이 몇 번 있었다.

 

위치추적기는 이런 때 유용했다. 사방에서 치고 빠지는 차량이 많은 도로에서는 제 아무리 능숙한 운전자라고 해도 추적 차량을 쉼 없이 따라붙을 수는 없다. 주행 중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놓치는 횟수가 여러 번 생긴다. 이번에도 그랬다. 녀석의 차가 사라질 때마다 권민은 넷북과 연결된 위치추적 화면을 통해 다시 접근해 차종과 번호판으로 확인하면서 미행을 무난히 이어나갔다.

 

스미스는 레스터 스퀘어로 이어지는 도로로 꺾어져 들어갔다. 차가 멈춘 곳은 ‘솜누스’ 펍이었다. 권민은 맞은편 갤러리 앞 주차공간에 차를 댔다. 1분도 안 돼서 갤러리 직원이 구겨진 인상으로 달려 나와 차창을 두드렸다. 권민은 차창을 열며 선수 쳤다.

 

“컬렉터께서 고를 작품을 배달하러 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예약하셨나요?”

 

“저는 잘 모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레이놀스 남작님이라고만 들었습니다.”

 

남작이라는 귀족호칭이 튀어나오자, 차디찬 추위에 사레들려 있던 직원의 뚱한 목소리가 끈적끈적한 여름 날씨로 돌변했다.

 

“어머, 세상에나, 언제쯤 오실까요?”

 

“한 시간 안에는 오실 거예요. 제가 좀 일찍 출발했네요.”

 

“아, 네, 그러시군요. 추운데 들어와서 기다리세요. 홍차 새로 들여놓은 게 있답니다.”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여기가 편합니다. 리무진이 보이면 바로 맞이해야 돼서요.”

 

“아, 네, 그러시겠군요. 얘기 나눠서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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