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5화 “다른 여자들은? 파는 건가? 인신매매?”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저리로 가봐…… 음…… 제니, 아직 안 끝났어……?”

 

사내의 손이 가리킨 곳은 막힌 벽뿐이었다. 가리킨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세 걸음 떨어진 곳에 출입문이 보였다.
 

권민은 뒤엉킨 남녀들을 지나 장식문양이 새겨져 있는 육중한 나무문을 열었다. 계단을 따라 뒷마당이 펼쳐졌다. 아무도 안 보였다. 주위를 휘둘러보며 뒤뜰을 가로질러 뛰어갔다. 다른 주택가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났다. 놓친 것인가. 아니다. 차를 두고 멀리 가진 않았을 것이다. 도보로 움직일 만한 거리다. 권민은 저택들을 좌우로 훑었다. 왼쪽으로 두 채 떨어진 곳에 있는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마당에 천막이 드리워져 있고 공사 중일 때 세워두는 철제 기둥도 여럿 보였다. 빈집임이 틀림없다. 보폭을 좁히며 마당 안으로 재빨리 숨어들었다. 1층 창 너머로 불빛이 희끗거렸다. 가까이 다가가 살폈다. 광활한 어둠 속에 놓여 있는 전기난로 불빛이 바닥 깔개에 누운 두 형상을 끈적끈적하게 비춰주었다.

 

엎질러진 와인 잔의 알코올 액체가 흠뻑 배어든 깔개 위에서 남녀의 알몸이 엎치락뒤치락 신음하며 뒹굴었다. 여자의 젖가슴을 움켜쥐고 허공으로 고개를 쳐드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스미스였다.

 

단순한 애인인가, 또 다른 희생물인가.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두 사람의 열정적인 행위가 끝나려면 아직은 시간이 남아 보였다. 그 틈을 타 준비해 놓은 소품이 실려 있는 자동차를 가져와야 했다. 권민은 차가 세워진 곳으로 뛰어가 빈집 맞은편으로 몰고 왔다. 가짜 쌍까풀은 생수병 물로 닦아내고 가발과 트위드 재킷도 원래 차림으로 바꿨다. 몇 가지 소품을 점퍼 안주머니에 넣은 후, 자동차 해치를 들어 올려 소형 양철통을 꺼내들고는 저택 마당을 은밀히 밟았다.

 

빈집 속 커플은 여전히 뜨거웠다. 권민은 가지가 부스스 늘어진 자작나무를 참호로 삼은 채 어둠 속에 숨어 지켜보았다. 스미스와 여자는 욕망이 시들해지자 그제야 추위를 느끼고는 담요를 뒤집어쓰며 전기난로 앞으로 다가갔다. 뭐라 얘기를 나누다 시시덕거리더니 스미스가 거실 구석으로 들어가 술잔과 와인 병을 가져왔다. 여자는 술잔을 받아들어 건배를 기울이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스미스는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잠시 후 여자가 술잔을 놓치며 바닥으로 널브러지는 윤곽이 포착됐다. 갑작스런 실신. 스미스가 술에 약을 탄 게 분명했다. 이제 시작인가? 권민의 집중력이 조여들었다.

 

스미스는 알몸 여자를 들쳐 업고는 손전등 불빛을 휘두르며 거실 저편으로 사라졌다. 권민이 창가로 다가갔다. 전기난로만 홀로 남았을 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전기난로 불빛에 거실 저편이 희미하게 얼비쳤다.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길목이 아른거렸다.

 

권민은 이미 걸쇠가 망가져 있는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가 계단으로 내려갔다. 손전등은 들킬 염려가 있어 위험했다. 한 손에 잡히는 소형 적외선 야시경을 길잡이 삼아 암흑을 디뎌나갔다. 귀에 모든 감각을 실어 인기척을 초 단위로 감시하며 벽에 바싹 붙어 이동했다. 바닥에 다다르자 시큼한 포도주 알코올 냄새가 흥건히 감겨들었다. 곰팡이가 거뭇하게 돋아있는 빈 오크통 서너 개와 낡은 와인 장식장이 한때 와인창고로 쓰였던 곳임을 알려주었다.

 

발걸음 소리와 질질 끄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밀폐된 공간 안에서 밖으로 새어나올 때 나는 파동이었다. 권민이 모퉁이 벽을 돌면서 소리 나는 쪽으로 시선만 슬쩍 내밀었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닫힌 문짝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방안에 있는 스미스는 휘파람을 흥얼거리며 묵직한 무언가를 질질 끌어 올리는 소음을 내고 있었다. 여자에게 몹쓸 짓을 하기 전에 녀석을 유인해야 했다.

 

권민은 점퍼 안쪽 주머니에서 미니 플라스틱 자명종을 꺼냈다. 5분 뒤에 알람이 울리도록 맞춘 후, 문짝에서 몇 걸음 떨어진 어둠 속 바닥에 자명종을 내려놓았다. 알람이 짖어대자, 문짝 안에서 당황한 발걸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문을 박차고 다급히 뛰쳐나온 스미스는 권총을 쳐든 채 소리 나는 쪽을 노려보았다.

 

방안에서 삐져나온 전등 불빛에 자명종이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 스미스는 웃음을 터뜨리며 자명종을 발로 걷어찼다. 고장 난 알람 소리가 지글지글 멈추기 직전, 문짝 옆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권민이 스미스 뒤로 유령처럼 다가가 권총 든 오른쪽 손목을 꺾어버렸다. 권총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스미스가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지하 천장에 튕겨 사방으로 울려 번졌다.

 

권민의 운동화가 바닥에 누운 권총을 암흑의 아가리 속으로 밀어버렸고, 스미스는 간신히 현기증을 떨쳐내며 적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녀석의 주먹질은 리듬이라곤 전혀 없이 강약과 각도 조절의 미학이 뭔지도 모르는 그저 뒷골목 깡패들이 남발하는 잡스런 몸부림에 불과했다. 권민은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주먹질을 빠짐없이 받아치면서 그 반동을 이용한 단타 역공으로 상대를 무력화시켰다.

 

유연하게 단련된 권민의 무릎이 스미스의 복부로 칼날처럼 꽂히자 몸뚱이는 바닥으로 고꾸라졌고, 스미스는 이 갑작스런 적의 등장이 전혀 믿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기도 전에 뒷덜미 혈맥으로 쑤셔 박히는 권민의 손끝 충격파에 사지를 떨다가 정신을 잃었다.

 

권민은 열린 방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천장에 박힌 걸쇠가 눈에 들어왔다. 한때 전등이 달렸을 법한 녹슨 걸쇠에 밧줄이 걸쳐져 있고, 그 밧줄에 알몸으로 묶인 여자가 바닥에 다리를 질질 끌린 채로 곯아떨어져서 코까지 골고 있었다. 스미스의 신발 자국이 어지럽게 널린 맞은편 바닥에는 채찍과 술병이 조촐한 파티를 준비 중이었다.

 

이런 짓거리가 정말 재미있는 것인가, 권민은 이 따위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어봄으로써 이성을 모욕하고 싶지 않았다.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