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3화 “아이고, 그럼 아직 희망은 있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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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실종자들도 아까 그 펍 단골이었대요?”

 

“네.”

 

“하, 세상에.”
 

독 소장 일행과 펍에서 만나기 전, 권민은 웹사이트 다이어리에 기록을 남겼던 실종자 외에 다른 실종자들 가족에게 전화 탐문을 했다. 실종자가 런던시내에서 단골로 다니던 펍이 있냐는 질문이었다. 펍이 워낙 많아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이어지자, 힌트를 덧붙여 다시 물었다.

 

‘쿠키를 잘 하는 펍’이라는 부연설명에 몇몇이 기억해냈다. “아, 들은 적 있어요, 쿠키가 정말 맛있다고, 황홀한 기분마저 든다고, 섹시쿠키라고 불렀어요, 같이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권민은 그 펍이 어디냐고 물었고, 수화기 너머에서 느낌표가 쩌렁 울렸다. “솜누스요!”

 

독 소장은 권민의 보고를 들으면서 흡족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온 솜씨는 물론이고 신속한 일처리가 마음에 들었다. 사건 수사는 시간과 벌이는 줄다리기다. 한시라도 빨리 실마리에 접근해야만 진실을 찾아낼 수 있고 그래야만 비통함에 감금된 실종자 가족을 해방시킬 수 있다. 어쩌면 사건수사의 최종 목표는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는 게 아니라 피해자 가족이 과거를 잊고 미래로 떠나게 해 주는 게 아닐까, 독 소장은 불현듯이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생수 통 하나를 해치운 승주가 물방울 축축한 입술로 이기죽거렸다.

 

“솜누스(Somnus)! 그러고 보니 간판 이름도 그냥 지은 게 아니었네. 쳇, 겉멋은 들어갖고. 좀 있어 보이고 싶었나 보지?”

 

독 소장이 시선을 돌렸다.

 

“뭔 소리야?”

 

“솜누스라는 이름이요. 그것부터가 지 정체성을 드러내네요. 하긴 인터넷 아이디 지을 때도 지들 인격에 맞게 짓잖아요. 악플 다는 놈들은 닉네임도 천박하더만요.”

 

“솜누스가 무슨 뜻인데 그래? 난 처음 듣는 말이구만. 영어는 아닌 것 같고.”

 

“로마신화에 나오는 용어죠. 히프노스나 힙노스(Hypnos)는 들어보셨죠?”

 

“응. 잠의 신이잖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솜누스도 같은 뜻이에요. 술의 신을 로마신화에서는 바커스로, 그리스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로 부르는 것처럼 이 경우도 용어만 다르고 뜻은 같죠.”

 

“음, 그렇구먼. 근데 그게 왜?”

 

“신화에 따르면, 솜누스의 정원에는 양귀비꽃이 무지 많았다고 해요. 양귀비꽃에서 즙을 짜내서는 밤마다 세상 사람들한테 꽃즙을 끼얹어서 잠을 자게 했다는 전설이 있어요. 양귀비꽃이 뭐예요? 마약의 아이콘이잖아요.”

 

“아.”

 

“꼴에 허세 끼에 잘난 척 끼는 있어갖고 마약질이나 하는 펍 주제에 미학적으로다가 포장 좀 한 거죠. 그것 말고 얍삽한 게 또 있는데요, 힙노스라는 대중적인 용어 대신 덜 대중적인 솜누스를 택한 점이에요. 가소로운 것들. 똑같은 말을 해도 현학적인 용어 쓰면 좀 있어 보인다고 느끼는 중2병이랄까.

 

더구나 은유 좀 써보려는 수작까지. 잠은 곧 죽음을 뜻하잖아요. 죽음을 은유적으로 잠들었다고 표현들 하고요. 피해자들이 그 집 단골이라는 게 뭘 뜻하겠어요. 그놈의 펍 단골이면 쥐 죽은 듯이 사라진다는 거 아닙니까. 죽음으로 이끄는 펍인 거죠. 지들이 잠의 신이라도 되는 양 허세에 들떠 있는 거라니까요. 과대망상병자들.”

 

솔깃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독 소장과 달리 권민은 따분해 보였다.

 

“그자들이 그렇게 미학적일 것 같지는 않군요.”

 

승주는 얕은 지식으로 따져 묻던 어설픈 대학생 제자를 떠올리며 권민 쪽을 곁눈질했다.

 

“솜누스에 그런 깊은 의도는 없을 겁니다. 대중적인 힙노스 대신 솜누스라고 지은 건 이미 주변에 ‘힙노스’라는 펍이 있어서겠죠. 힙노스는 오래된 펍이에요. 옆 길목으로 내려가면 바로 보입니다.”

 

승주는 뜻밖의 지식으로 자신을 놀라게 한 대학생 제자를 떠올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권민이 계속 설명했다.

 

“애초에 솜누스라는 간판을 처음 단 사람은 지금의 펍 주인이 아닐 겁니다. ‘쿠키앤부즈’ 글자가 펍 안 메뉴판에도 있는 걸로 봐서는 ‘쿠키앤부즈’는 지금의 펍 주인이 직접 지었겠죠. 하지만 간판에 적힌 솜누스 글자체와 쿠키앤부즈의 글자체가 달랐어요.

 

솜누스 글자체는 정식 간판제조업자에게 맡긴 깨끗한 인쇄체였고, 쿠키앤부즈 글자는 사람이 직접 쓴 손글씨였죠. 이게 뭘 뜻하겠습니까. 솜누스 간판 제작 당시에는 쿠키앤부즈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었다는 걸 말해 주는 거죠. 간판 제작 시에 쿠키앤부즈 글자만 빼먹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럴 듯한 추리였다. 독 소장과 승주는 집중해서 귀 기울였다.

 

“그리고 간판에 허브 그림이 있더군요. 허브 그림의 색상과 그림체가 솜누스 글자 색상 및 간판 배경색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걸로 보아 간판 제작 당시에 그려진 그림이 분명합니다. 펍 내부에서도 납작한 촛대 걸이가 벽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박혀 있었죠. 향초를 올려놓기 좋은 크기였어요.

 

살펴보니 모든 걸이에 말라붙은 촛농 흔적이 있더군요. 결정적으로는, 간판에 적어놓은 쿠키앤부즈 글자 밑으로 작은 글자가 보였습니다. 쿠키앤부즈 글자를 원래 적혀 있던 그 글자 위에 덮어쓴 거죠. 줌카메라로 촬영해서 확대해 보니까 희미하게 알파벳 흔적이 보이더군요. aroma boutique였습니다. 솜누스라는 간판을 단 이전 주인의 업종은 허브나 향초 가게였을 겁니다.”

 

독 소장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올라 입술이 꽃봉오리 만개하듯 함박 벌어졌다. 허브 가게라면 잠의 신이라는 간판명과 의미상으로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