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도깨비 씨름』 – 0편

17년 3월

아시다시피 나는 지난 몇 년을 『로밀린 고대사(古代史)』집필에 매달렸습니다. 추루했던 한 살이를 마무리하는 데에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으니까요. 원고를 온전히 마친 후에야 지금껏 미뤘던 편지를 읽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지요. 숨이 끊어지기 전, 마지막 즐거움으로 남겨뒀던 일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먼 친척의 경조사나 지난날 함께 여행했던 모험가의 소식 따위가 가득해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 친구여. 중요한 건 언제나 보잘 것 없는 일들 사이에 묻혀있건만, 나는 그걸 잊고 살았습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여태껏 세상을 떠돌며 왕국을 위협하는 조짐을 찾는 이들이 내게 편지를 했습니다. 그슨대와 그슨새가 서로 연합하여 낮과 밤을 번갈아 통치하는 것은 이제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연합 왕국이 오도깨비 왕국과 손을 잡은 것은 그대라 할지라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요. 그들은 전에 없이 간교하게 일을 꾸미고 있습니다. 바다의 두억시니 역시 움직임이 수상하여 나는 그들도 악한 일에 가담하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마법사여, 누구보다 현명하고 왕국을 지키는 마법사이자 내 오랜 친구여. 부디 내 말을 가볍게 넘기지 말고 치매 난 노인의 허튼소리로 여기지 마십시오. 나는 이 모든 말이 헛소리로 끝나길 간절하게 바라고 있으나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왕국의 적이 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기저기 거점을 세워 보급로를 준비하고 있으며 바닷가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보급선이 건조됐습니다.

 

나부끼는 깃발에 맞춰 나팔수가 추악한 군가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귓가에서 맴돌며 떠나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끝내 나는 근심에 싸인 채로 관에 들어갈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왕궁의 마법사여, 다가올 위기를 힘써 준비하시오. 나는 더 이상 도움이 될 수 없으니 내 신실한 친구들이 보낸 편지를 함께 보냅니다. 나는 천 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한 통의 답장도 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아직껏 내게 편지를 합니다. 내가 거꾸러지기 전에 어린 조수라도 두어 편지를 정리하게 해야겠으나 지금은 사람을 구할 시간조차 모자라니 분하기만 합니다.

 

왕국은 친구와 손을 잡아야 하고 충직한 신하에게 맡겨 군을 다듬어 닥쳐올 고비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부 사막 왕국은 저들끼리 싸우기 바쁜데다 국경을 어슬렁대는 오도깨비를 경계하는 데만도 힘이 모자랄 것입니다. 북부 왕국은 그 옛날, 요새를 세운 뒤로 문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강철로 세운 문이 영원하리라 믿고 있지요.

 

그들이 과연 우리를 도와 요괴에 맞서 싸울 것인가에 대한 답은 수수께끼입니다. 내륙인 중 유일하게 그곳을 다녀온 저로서도 확신을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고래섬은 여전히 신비에 뒤덮여 실체조차 확실치 않습니다.

 

지금의 평화가 얼마나 계속될 것인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용사가 어둑시니 왕국을 무너뜨린 후로 우리는 안온한 날씨가 계속 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이제 사백 년하고도 구십팔 년 전의 일입니다. 나는 우리가 정말로 어둑시니를 이 땅에서 지워 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불안함에 나는 밤마다 괴로움에 몸부림칩니다.

 

나는 모든 일의 시작에 아직 풀지 않은 비밀이 있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우습지요, 곧 시들 목숨이 새로운 연구를 시작한다는 게 말입니다. 그러나 친구여, 나는 내 시름을 덜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나는 떠날 준비를 마쳤습니다. 누구도 손대지 않았던 유적으로 갈 생각입니다. 부디 거기서 왕국을 구할 단서를 찾기만 바랄 뿐입니다. 그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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