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강림

  • 장르: 판타지, 로맨스 | 태그: #군상극 #마녀 #마법사 #기사 #암살 #전쟁 #모험
  • 평점×3468 | 분량: 67회, 2,129매 | 성향:
  • 소개: 은퇴한 고대 마녀가 왕궁을 습격하고 공주를 납치했다. 1부 : 마녀전쟁(완) 2부 : 영웅전설(완) 3부 : 시간의 실타래(연재중) Art by 견우님 더보기
작가

Rynring님이 보내주신 축전입니다.

19년 4월

안녕하세요, 이촉입니다!

2부 완결 공지 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또 이렇게 게시판에 글을 올리게 되었는데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제가 Rynring 님으로부터 완결(2부) 축전으로 팬픽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원작에 비해 여러모로 파격적(?)인 티드메의 이야기랍니다.

여기 지면을 빌어 바쁘신 중에 귀한 시간을 내어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축전을 써주신 Rynring 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 * *

 

 

 

(上편)

 

 

 눈이 비처럼 쏟아지는 날이었다.

 티드메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들판을 걷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이라고는 드레스 같은 치마와 가느다란 윗옷 . 싸늘한 추위가 그대로 옷을 통과했다.

 어깨에 눈이 산처럼 쌓이고 나서야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방향은 지나온 길이었다. 사나운 눈폭풍 너머 그녀를 따라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마녀를 미행하는 존재라니. 순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지만, 감정은 눈처럼 얼었다. 

 현재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친구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인간이랑 놀아줄 기분이 아니었다. 

꺼져. 쫄래쫄래 쫓아오지 말고. 놀아줄 기분 아니니까.”

 그녀는 평소처럼 사무적이고 단정하지 않았다. 상대를 무참히 찢어버릴 목소리. 실로 악당 같은 마녀다웠다.

아니면 목숨을 걸어. 기꺼이 응해줄 테니까.”

 경고를 알아먹은 것일까? 그림자는 말이 없었다. 

이젠 귀찮게 하지 않을 테지.’

 그녀가 발걸음을 옮겼다. 가끔 마녀란 존재에 호기심을 품고 접근하는 자들은 많았다. 마법사부터 이단심문관, 좀도둑까지. 선을 넘지 않으면 조용히 돌려보내 주지만, 기분 좋지 않은 지금은 어떨까. 조금만 자극받아도 물어 버릴 듯했다.

 그때였다. 그림자의 기운이 사라진 것이.

옷이 얇네. 춥겠다. 우리 집에서 녹이고 갈래?”

 사라진 기운은 코앞에서 나타났다. 검은 후드를 눌러 인영은 그녀를 가로막았다. 

 마녀인 그녀가 눈치챌 틈도 없이.

….”

 그녀는 당황했다. 순식간에 기척을 지우고 나타난 인영. 위험한 감각이 전신을 뒤덮었다. 손끝이 저리는 감각에 눈을 부릅뜨고 으르렁거렸다.

뭐하는 자식이야?”

데리러 자식인데.”

어디 교단의 소속이지?”

무교야.”

어쨌든! 분명히 그냥 돌아가라고 경고했…!”

 가만두지 않을 테다. 그런 마음으로 발자국 내디뎠는데.

풀썩.

“…….”

“…….”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아씨….’

 장미처럼 붉은 머리카락이 속에 파묻히자 위로 우수수 눈보라가 몰아쳤다. 꼼짝없이 밑에 덮이는 모양새였지만,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름 위압감을 심어 주려고 화를 내는 타이밍에 다리가 꼬이다니. 수북한 때문이리라. 창피함과 분노가 공존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잠자코 있었다.

죽은 하면 가겠지.’

 그녀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대뜸 나타나서옷이 얇네. 춥겠다. 우리 집에서 녹이고 갈래?’ 라니. 필시 귀찮은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쉽게 부러뜨릴 상대는 아니리라. 괜한 싸움에 힘쓰고 싶지 않았다.

리소.’

 우울했으니까. 

 깊은 동굴에 처박혀 100 동안 놓고 있을 정도로 우울했으니까.

그래. 묵묵부답은 긍정이란 소리가 있더라.”

 그런데 인영이 헛소리를 내뱉었다. 혹시 혼자서 박수치는 부류인가? 벌떡 일어난 그녀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항변했다.

내가 언제 긍정했다고 그래!”

지금 했네.”

“……?”

긍정이라 말했네.”

“…….”

그럼 간다. 거기로.”

아니 잠깐!”

  막돼먹은 인간은 뭐지? 아니, 애초에 인간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가 무어라 세울 틈도 없이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 # #

 그녀가 눈을 장소는 나무집이었다. 가운데 난로가 자리하고 있었고 안락해 보이는 나무 계단이 2층으로 뻗어 있었다.

 창문 밖에는 여전히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워낙 사나운 기세라 보았던 히드라가 입을 벌리고 있는 같다고 테드메는 생각했다. 

떴네?”

 익숙한 목소리에 푹신한 의자에서 않은 티드메는 고개를 기울였다. 귀를 덮는 붉은 머리칼이 고개를 기운 방향으로 미끄러졌다.

 인간은 여전히 후드를 쓰고 있었다. 초록색 후드에 날이 치렁치렁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편한 복장은 아니리라.

 어쨌든 마녀가 한쪽 쓰고 당하다니. 다른 마녀가 보면 놀림이라도 당할 상황이었다.

 그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화냈다.

 

. 죽고 싶어?”

?”

나랑 놀고 싶으면 목숨을 걸라고 했잖아!”

 그녀 발밑으로 마법진이 떠올랐다. 무형의 기운은 마녀의 마법. 평범한 인간이라면 손도 못쓰고 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어깨를 움츠리지 않았다. 얼굴은 가려져 있었지만, 득의양양한 목소리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물론이지. 목숨을 걸지. 이거 맛없으면 너한테 오늘 돗자리 펴고 죽는다.”

 그는 슬그머니 몸을 비켰다. 보기만 해도 따끈따끈한 난로 위에 무엇인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탐탁지 않았던 그녀의 얼굴이 맛있는 냄새에 절로 풀어졌다. 재빨리 화난 다시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그러기엔 침이 입가에 고였다.

감히 독이 음식을 내밀어? 그건 음식에 대한 모독이야.”

독이 들었다니. 어차피 너한텐 통하지도 않을 텐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 들었어. 먹든 말든 자유지만. 네가 먹지 않는다면 버려야겠지.”

티드메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의표를 찔린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결국 백기를 그녀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입만. 입만 먹는다.”

그래.”

 이윽고 낯선 음식에 대한 시식이 시작됐다.

 난로 앞에 털썩 주저앉은 그녀에게 그가 젓가락을 내밀었다. 담요를 슬금슬금 무릎 위에 올린 그녀가 불현듯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잠깐. 뭔데 나한테 반말이야?”

네가 반말 먼저 했는데.”

내가?”

그래.”

 생각해보니 그런 같기도 했다.

 처음 그를 보았을 지금보다 기분이 최악이었다. 거칠게 눈보라까지 치는 상황이니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으리라. 원래 타인에게 함부로 말을 놓지 않는 그녀였지만, 이미 여기까지 버린 이상 신경 쓰지 말기로 했다.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죽여야겠어.’

 티드메는 남자가 이어 내민 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릇에는 스튜처럼 물이 가득 있었고 안에 요상한 음식이 들어 있었다. 냄새가 어찌나 자극적인지 코끝이 파르르 떨리는 느낌이었다. 각종 향신료를 팍팍 쏟아 부은 음식의 냄새도 이것보단 자극적이었다.

이거 어떻게 먹지?’

원체 어떻게 먹는 것인지 몰라 그를 스윽 쳐다보았다. 후드 너머에서 눈이 마주쳤다. 그는 손으로 먹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이렇게 젓가락으로 먹는 거야. 알겠어? 티드메.”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그를 따라 면발을 입에 넣었다. 

후루룩, 후루룩.

 직후 그녀의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커졌다.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눈꺼풀을 여러 깜빡였다. 

“…이거 뭐야? 뭔데 이렇게 맛있어? 딸기잼을 바른 호밀빵보다 맛있다니!”

  말을 끝으로 그녀는 면발을 흡입했다. 옆에서 그가 보고 있다는 것조차 잊은 계속 젓가락을 놀렸다. 그는 멀찍이 떨어져 남은 양을 전부 그녀에게 양보했다.

 후드 안에 있는 입가가 부드럽게 휘었다.

내가 직접 라면을 끓여주는 존재는 흔치 않아. 받은 거야.”

 대답은 없다. 오직 젓가락만 기교스럽게 움직일 . 

 배가 부르면 젓가락질 속도가 느려질 텐데. 그녀는 오히려 가속도가 붙었다. 작은 입술 근처에 국물이 묻어도 여념치 않았다. 보다 못한 그가 헝겊으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몸을 틀어 그릇을 보호했다.

손대지 . 꺼니까.”

“……저기 100박스는 넘게 있거든?”

 순식간에 그녀의 그릇은 말끔하게 비워졌다. 모닥불로 다가가 남은 양을 연신 담았다. 그러는 사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쓸어내렸다.

. 누구야?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어?”

글쎄. 누굴까.”

장난치지 . 요상한 음식을 대접받았으니 참고 있는 거야.”

어차피 곳도 없으면서. 조금 쉬고 가도 되지 않을까?”

여기서?”

그래. 신께서 무대가 시작되려면 한참 남았다고 했거든.”

신이라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그녀는 마녀였다. 따위 믿지 않았다. 심지어 신이란 작자는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뜨거운 면발을 후후 불며 물었다.

신이 누군데?”

세기의 미남. 이촉이라고. 대단한 신이 있어.”

처음 듣는데?”

그렇겠지. 그분의 얼굴은 진주같이 빛나고 조각같이 또렷하며 세계의 도서관을 합친 같은 지식까지 겸한 신이거든. 나도 번도 적은 없어.”

아니. 무슨 헛소리야? 방금 무슨 무대가 시작되려면 한참 남았다고 했다며? 직접 봤으니 대화를 나눈 아니야?”

. 그건 말이지. 꿈에서 계시를 받은 거야. 메시아에게 계시를 받은 것처럼.”

라면을 우물우물 씹은 그녀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쓸어내렸다. 

이단 재판관 맞지? 회유하는 거야?”

회유? . 세기의 미남 이촉님을 경배하라고 회유하고 있긴 하지.”

미안한데. 마녀야. 종교는 믿지 않아.”

그분은 종교가 아니야.”

신은 종교로 유지되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자체가 믿음이지.”

“…….”

분은 진리야.”

 후드 너머에서 번뜩이는 광기에 그녀는 슬그머니 시선을 거두었다. 그가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부분에 관해선 건드리면 같았다.

, …. 그렇다고 할게.”

그래. 생각했어. 사인도 있는데. 돌아갈 하나 줄까?”

“…….”

 티드메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식사를 이어나갔다. 오랫동안 살면서 여럿 미친놈을 봤지만, 정도로 가지에 몰두한 인간은 드물었다. 대게 저런 성격은 건드리지 않는 무탈했다.

 식사는 한참이 지나서야 끝이 났고 그녀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환한 미소가 걸렸다. 

맛있네.”

그럼. MSG 다른 세계에서도 통할 음식이거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답례는 할게. 위대한 마녀니까!”

 근엄하게 일어선 티드메는 자신의 허리에 양손을 짚었다. 갑자기 이런 곳에 떨어지게 것은 당황스러웠지만, 맛있는 음식 덕분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친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고작 라면에 옅어졌다. 친구가 알면 땅을 치고 일이었지만.

뭐가 가지고 싶어? 황금? 보석? 아니면 차원여행? 아니다. 너도 기이한 힘을 가지고 있는 보니 차원은 넘어다닐 있는 같으니까…. 여튼. 원해?”

.”

좋아. 그럼 바로 만들어 …. 아니 잠깐. 뭐라고?”

 순간 후드가 벗겨지며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목소리는 영락없이 남자처럼 굵었지만, 얼굴은 중성적인 미모였다. 

 머리카락을 묶음으로 묶어 땋아 내린 모습. 범상치 않은 등장에 티드메가 움찔거린 찰나 그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의 이마에는 커다랗게 ‘G’라고 적혀 있었다.

원작이 시작되기 전까지 여기서 쉬고 갔으면 좋겠어. 브릿G 원해. 티드메.”

 

(中편)

 

 티드메가 수상쩍은 공간에 남은 이유는 간단했다. 

 방구석에 산더미 같이 쌓인 라면 박스. 매운 라면부터 오동통한 라면, 파송송 계란 라면, 맛있는 라면, 안성에서 끓인 라면까지. 수없이 많은 라면의 향연에 그녀는 고개를 순순히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뒤로부터 그녀의 일상은 간단했다. 하루를 라면으로 시작해서 라면으로 끝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영양불균형으로 병에 걸렸을 테지만, 그녀는 마녀. 영양불균형으로 쓰러지는 일은 절대 없었다.

 게다가 남자는 지겹지 않게 가지각색 라면을 끓여주었다. 콩나물을 넣기도 했고 해산물을 넣기도 했으며 가끔 일본식 라멘이라며 신기에 가까운 마법을 부렸다. 

 그는 조미료를 높은 곳에서 뿌릴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렇게 라면을 끓이냐고 물으면 텔레비전에서 허세 셰프한테 배웠다고 말했다. 텔레비전이 뭔지도 모르는 그녀는 그저 수긍하는 척했다.

 어쨌든 라면만 먹으면 되니까.

. 평생 이러고 살고 싶어.’

 어느새 생활에 익숙해 져버린 그녀는 날을 세는 것조차 관두었다. 마지막으로 날짜를 것은 10.

지금은 년이나 지났을까. 15? 20? 30? 모르겠네.’

 사실상 그녀는 라면 하나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생활을 지속할 있었던 이유는 남자의 신기에 가까운 요리 실력 때문이었다. 요리왕 이촉에 버금가는 엄청난 손맛. 입에 넣으면오오오오옷!’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실력은 마녀를 마법같이 사로잡아 버렸다.

 아마 다른 마녀들이 보았다면 혀를 끌끌 차며역시 티드메.’ 라고 했을 광경이었다.

 다만 24시간 라면만 먹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남자는 가끔 신기한 물건을 들고왔다. 체스는 테드메의 세계에도 있는 것이지만, 다른 것들은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대체 이게 뭐래.”

보드게임.”

?”

체스 비슷한 거야. 가르쳐 줄게. 같이 할래?”

만일 한다면?”

라면을 불태워야겠군.”

빨리하자. 재밌어 보이네.”

시간은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 없는 정조차 생기게 만드는 . 특히 상대가 청소도 하고 놀아주고 그녀가 좋아하는 밥까지 해주는 사람이라면. 

 거의 발닦개 따로 없었다. 씻는 것만 그녀 혼자서 뿐이었다.

 잠옷까지 빌려 입은 티드메는 이젠 거의 제집 안방처럼 누워 있었다. 그러면서도 푸카칩을 손에 놓지 않은 그와 보드게임을 진행했다.

 게임이 팽팽한 시점에서 방해 전략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근데. 있잖아 G.”

.”

. 나한테 이리 잘해주는 거야?”

1000번째 묻는 같은데.”

궁금하니까.”

 순간적으로 남자가 핀치에 몰렸다. 그러나 여유롭게 그는 구석에서 빠져나왔다.

네가 좋으니까. 그래서 원작이 시작되기 전에 여유가 된다면 만나고 싶었어. 물론 네가 싫다면 바로 보내줄 생각이었지만.”

흐음. 저번에 말했던 이촉인지 뭔지 하는 ?”

. 분은 세계를 관장하는 세기의 미남신님이지. 어쨌든 지금도 가고 싶으면 가도 .”

 주사위를 던지는 그의 얼굴은 태연했다. 티드메는 빤히 그를 쓸어내렸다.

거짓말 하기는. 저번에 간다고 했더니 주인 잃은 개처럼 실망했으면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번이나 변할 동안 같이 지내니 습관이나 성격 같은 것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처음엔 기묘하고 이런 미친놈이 있나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은 달라졌다.

 애완용 인간을 하나 키우는 느낌. 물론 집안일은 전부 그가 한다는 함정이었지만.

나름 쓸만한 인간이야. 세기의 미남신한테 고마워해야겠네.’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순수하게 빛났다.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서울은 내꺼다!”

 뎅구르르르.

 주사위가 굴러가며 나온 숫자는 8. 귀신같이 사회복지기금접수처에 걸렸다.

 서울 바로 지역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사위를 굴렀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그의 말이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승리의 여신은 내게 손을 들어주나 . 티드메.”

“…그래서? 아직도 내가 좋아?”

 손은 멈추지 않은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남자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카드를 먹었다.

아니. 이젠 사랑해. 감정은 마리아나 해구보다 깊어.”

그녀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젖혔다. 게임과 별개로 솔직한 말을 내뱉었다.

감정에 공감하기 힘들어.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그릇과 안에 내용물을 몰라. 마녀는 인간과 다르니까. 특히 사랑이란 감정은 제일 난해해.”

이해해주지 않아도 . 네가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해.”

흐음….”

 어려운 문제였다. 

 그와 십년을 같이 있으면서 기묘한 정이 사실이었다. 리소와 있을 때처럼 싫진 않은 감정이었다. 그러나 감정이 인간이 말한 사랑이라는 감정일까? 답엔 아니라고도, 맞는다고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인간이 아닌 마녀니까. 

 그런데도 그가 싫진 않았다. 그것이 계속 여기에 있는 번째 이유였다.

 다만 가지만 정의할 있는 투명한 물에 붉은 물감이 스며들 천천히 번지는 감정이었다.

 그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티드메도 인지하고 있었다.

체크메이트.”

“…, 이건 사기야!”

 결국 역대급으로 파산해버린 티드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손을 들었지만, 패자는 말이 없이 없고 승자는 미소 지을 .

.”

툴툴거리며 바닥에 누워버린 그녀는 등을 돌렸다. 작은 그녀 밑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아. 삐지셨구만. 라면 끓여 줄까?”

고파. 그것보다 머리 아프네.”

 자연스럽게 남자는 그녀의 머리맡에 앉아 허벅지를 내주었다. 그녀는 작은 머리를 거기에 올려놓았다. 땅바닥에 누운 것보단 머리가 편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그의 얼굴은 어김없이 인간이었다.

이봐 G. 그거 알아?”

.”

떠나야 . 원작이 시작될 거래.”

알아. 그분께 계시 받았어. 얼마 전에 편지 왔잖아. 시간이 간다고.”

 세기의 미남은 편지로 소식을 전해왔다. 마녀강림의 시간선이 시작된다고.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많은 죽음을 눈앞에서 보았고 수많은 이별을 헤치고 자리에 도달한 마녀. 그녀에게 헤어진다는 개념은 오랜 친구보다 익숙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마음 언저리가 간지러웠다. 필시 라면 때문은 아니리라.

내가 가면. 다시는 여기에 오겠지?”

그렇겠지. 이런 기회가 흔한 아니니까.”

라면도 다시는 먹겠지?”

글쎄. 그건 신님께 부탁하면 가끔 가능하지 않을까?”

네가 없잖아.”

순간 그가 멈칫했다.

끓여주는 전속 요리사가 없어. 맛이 나오기나 하겠어? 오히려 실망할 .”

“…하긴. 손맛이 끝내주긴 하지.”

 시원스레 내뱉은 티드메의 대답에 그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다운 대답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익숙한 손길에 티드메는 눈을 감았다. 잠에 취하지 않는 그녀지만, 이렇게 눈을 감고 있으면 무엇인가 상쾌한 느낌이었다. 그가 쓸어내리는 손끝이 자장가라도 되는 잠에 빠지게 했다.

 그녀가 나긋하게 입을 뗐다.

너랑 있음 편안해.”

?”

 

그냥 내가 있던 세계는 너무 복잡하거든. 혼자 세계와 동떨어져 있어. 특이한 존재니까 말이야. 게다가 다른 마녀들은 무서워하고 매번 피곤한 사건의 연속이거든. 어디 조용한 곳에 박혀서 살고 싶어.”

그렇구나. 힘들었겠네. 티드메.”

영혼 .”

미안.”

어쨌든. 너랑 있으면 편해. 다른 모르겠어. 그냥…. 몸이 수면 아래로 잠기는 같이…. 나른해. 그래서 여기가 좋아.”

라면이 좋은 아니고?”

라면도 좋긴 . 그게 빠지면 섭하지.”

한숨 . 자고 일어나면 먹을 시간이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새 작고 귀여운 마녀는 꿈나라로 떠났기 때문이었다. 빙하 밑에 잠긴 그녀의 정신은 흔들어도 한동안 깨어나지 않겠지.

 적적함이 가라앉았다.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만이 귓가에 울릴 뿐이었다.

나도 한숨 잘까….”

 그가 기지개를 켰다. 그녀처럼 낮잠이라도 요량으로. 

 눈을 감기 직전 잠시 그녀를 힐끔거렸다. 작은 마녀는 자는 모습조차 귀여웠다.

감사합니다. 세기의 미남님.”

 그렇게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독자는 눈을 감았다.

 창밖에선 영원히 그치지 않는 눈보라가 창문을 슬프게 두드렸다.

 

 # # #

 시간이 흐르고 흘러 티드메가 떠나기 하루 전날이 되었다.

  원작이 시작하기에 세기의 미남신은 티드메를 불러들였다. 길고 휴가가 끝난 셈이었다. 처음엔 다소 황당하고 낯설었던 이곳도 이젠 원래 있던 세계보다 편안하고 익숙했다.

 그래서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리가. 

 마녀였기에 누구보다 세계의 억제력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G 마지막까지 별다른 흔들림이 없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아쉬워하거나 다른 반응이 나와야 텐데. 

 티드메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下편)

 

마녀의 감정은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슬픔이나 기쁨, 지루함, 설렘 같은 감정의 그릇은 존재하지만, 크기가 인간과 다를뿐더러 내용물 또한 차이가 크다. 기형적이고 비틀려 있다. 

 오랜 시간 시간에 갇혀 지내온 그녀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감정의 그릇을 키워갔다. 아예 그릇의 뚜껑을 닫아버린 마녀도 있었고 그릇의 내용물을 비워버린 마녀도 있었다. 

 시간은 닳고 닳는다. 그녀들의 감정 역시 마찬가지.

 그렇다면 티드메는 어떨까. 

 인간과 다를 없는 그녀의 감정은 미지근함 자체였다. 다른 마녀들이 닳아가는 시간 속에서 감정을 방어하기 위해 웅크렸을 그녀만이 혼자 다른 방식을 취했다.

 내용물을 그대로 두었다.

 닳아가는 그대로.

 마치 인간처럼.

 티드메는 단순히 무덤덤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말라 버린 우물처럼, 비가 오지 않는 사막처럼 들어 있어야 내용물이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아니라 닳고 닳다가 결국은 증발하고 없어져 버렸다.

 시간이란 영원의 굴레 속에서 잃어버린 것이었다. 

이봐 G.”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고 있었다. 둘은 걸음 떨어진 거리를 두고서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다.

아쉬워?”

 말의 내용은 질문이었지만, 목소리에는 마른 가시가 담겨 있었다. 그렇듯 그는 따뜻한 무미한 얼굴이었다.

아쉽네.”

내일 떠난데.”

아침은 근사하게 만들어 줄게.”

 그녀가 어이없다는 헛웃음 쳤다. 남자의 심리가 이해가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아쉬워하고 매달려야 것이 아닌가. 

 그것이 그녀가 아는 인간. 

 사랑에 빠진 인간일 텐데. 

  남자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사랑한다고 하지 태도는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고분고분한 발닦개.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

 그녀가 손가락을 팅궜다. 십년이 아닌 백년 동안 타오른 모닥불이 말라버렸다. 그가 황당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 이거 꺼지면 .”

묻는 말에 대답해. 지금까지 나한테 거짓말했지?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했던 전부 거짓말이지?”

?”

인간이잖아. 근데 지경이 되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담담할 있어? 이건…. 말이 . 네가 인간이라면 말이야.”

 그녀는 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했지만, 남자는 언제나 그녀를 사랑했다. 적어도 스스로의 입으로 그렇게 말했다. 

  말에 안심하고 있었다.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남자는 감정을 유지하고 있구나. 시간에 감정이 닳고 닳아 말라버리는 마녀와 달리 인간은 마르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담담하면 됐다. 내일은 떠나는 시간. 순간만큼은 인간답게 흔들려야 마음이 진실이라고 티드메는 생각했었다.

보고 싶다. 가지 . 나도 갈게. 그런 마음을 품는 당연한 아니야? 네가 사랑했다면 그런 반응이 정상 아니냐고.”

 말을 내뱉는 그녀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그를 쓸어내렸다. 마녀의 감정은 바짝 말라 있지만, 그만큼 자극에 민감했다. 평소 성격이 담담한 것도 말라버린 그릇에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냉정함을 잃기 때문이었다.

설사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도 그런 기색은 비춰야지. 네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지금까지 마음이 거짓으로 보인단 말이야. 내가 그딴 거짓 같은 입발림 들으려고 여기에 있는 알아?”

 시선이 마주쳤다. 태연하다 못해 차분한 눈동자. 담담하게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다.

라면 때문에 여기에 있지 않았나. 마음이 그간 진심이든 아니든. 네가 편히 있다 가면 거야. 그런 감정은 마녀에게 불필요한 감정일 텐데.”

물론 라면이 맛있긴 했지만….”

 말끝을 흐리는 티드메는 옅은 숨을 내쉬었다. 자존심인지, 마녀의 성격 탓인지, 아니면 말라버린 그릇의 바닥에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물기 때문인지.

 쉽사리 입을 떼기 힘들었다.

내가 맞춰볼까?”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옆으로 엉덩이를 것은 그때였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티드메는 어느새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남자 때문에 화들짝 놀랐다.

 붉은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커다래졌다. 

, 맞춰?”

내가 진심이 아니면 네가 슬픈 이유.”

“…웃기지 . 슬프지 않아. 그냥 거슬릴 뿐이야. 정이라도 들은 모양이지. 379 동안.”

 여기에 머물렀던 기간. 잠시 그가 멈칫했다. 설마 정확하게  세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내가 모를 알았어? 쳇바퀴 돌아가듯 똑같은 일상이었지만, 시간의 흐름은 기억하고 있어. 우린 시간에 갇힌 마녀니까 정돈 손쉬워.”

그래…? 생각보다 훨씬 크게 의미 두고 있었구나. 어쨌든 내게 기대한 있으니까 네가 그리 말하는 아니겠어?”

기대하고 있다니? 그거랑은 다른….”

 

티드메.”

 순간 그가 그녀의 앞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소중한 것을 만지는 것처럼 섬세한 손길이었다. 그리곤 부드럽게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지금까지 번도 신체적 접촉은 하지 않았던 그였는데.

 티드메는 의아하게 고개를 치켜 올렸다. 호기심 어린 아이마냥 눈꺼풀을 깜빡였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불쾌감이나 거부감은 보이지 않았다.

 도화지에 색이 물들 어느덧 축축하게 감정은 젖은 상태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고서 그녀를 응시했다. 콧잔등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그게 인간의 입장에선 기대한다는 거야.”

“…….”

그리고 그런 감정이 드러났을 인간들은 조금 용기를 내고 다가가게 . 네가 이해할 리는 없겠지만. 나는 기다렸을 뿐이야.”

“…?”

 그의 입꼬리가 깊게 휘었다. 소나기 같이 감정에 듬뿍 젖은 미소였다.

존중하니까. 그리고 변화를 네가 인지하길 바랐어. 여기에 오기전과 다른 감정을.”

 티드메는 말문이 막혔다. 항상 일상적인 대화와 생활.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그의 이런 모습이 낯설었다. 

 부여잡은 마음이 간지러웠다. 

 가까스로 그녀는 입을 뗐다.

만일 내가 인지하지 못했다면?”

슬프겠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하고 기다렸는데. 마녀의 마음을 얻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주입식으로 말할 생각은 없었어. 원래 감정이란 배우는 아닌 익히는 거니까. 경험처럼 말이야.”

 변화. 변화, .

 혼란스러웠다.

 말라버린 우물과 바짝 햇빛에 타들어 가는 사막. 조금씩 가랑비가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무엇인가 쐐기를 박을 것이 필요했다. 그녀 입장에선 확실하게 변화를 인지시킬 계기가 있었으면 바랐다.

 마녀가 아닌 인간의 방식으로.

 그녀답지 않게 머뭇거렸다.

“… 모르겠어. 크게 와닿지 않아. 네가 말하는 뭔지 같으면서도 …. 인간과 마녀의 감정의 그릇 자체는 똑같아도 안의 내용물은 다르단 말이야.” 

괜찮아. 직접 경험하면 되니까.”

“… 경험해?”

사랑을.”

 그녀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시야가 점멸했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 티드메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깊은 바닷속에 잠기는 느낌이 이러할까.

송골송골 맺혔던 물방울 위로 거센 소나기가 떨어지는 같았다. 옅은 숨조차 내쉴 없을 정도로 심장이 조여들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싫지 않았다. 백년 동안 쌓인 감정의 물줄기는 이미 우물을 채우고 사막을 초원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입맞춤은 서툴렀다. 그녀의 입술은 나비의 날개처럼 파르르 떨리기만 했다. 어디에 손을 둬야 할지. 허우적거리던 작은 위에 그의 손이 겹쳐진다.

 그대로 감싸 쥐었다. 마치 하나인 것처럼.

 그러면서 그는 능숙하게 입술을 비볐다. 그녀의 입술을 빨아 마시듯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움직였다. 촉촉하고 부드럽게 번지는 낯선 감각에 그녀는 머릿속이 하얗게 질리는 같았다. 그런데도 희한한 것은 마지막엔 놓고 싶지 않았다. 지금 시간에 갇히고 싶을 만큼.

 이윽고 입술이 떨어졌다.

.”

묘한 탄식을 내뱉은 티드메. 붉은 머리칼을 그가 쓸어 넘기며 말했다.

사랑인 아닌 헷갈린다면 마음에 손을 얹어 . 닳아가던 마음이 뛴다면 그건 사랑이겠지.”

“……사랑?”

그래. 우리가 말하는 사랑.”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의 말대로 터질 뛰는 심장. 그것은 빗줄기에 가득 우물이었고 풀숲이 무성한 초원이었다.

 장미처럼 붉은 입술이 달싹였다. 티드메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고? 네가 사랑하는 것처럼.”

그래.”

“…가만히 있어 .”

 작은 손이 그의 가슴 위에 닿았다. 조각같이 단단하고 각진 굴곡 사이는 물줄기가 흐를 듯했다. 위로 느껴지는 익숙한 소리. 그녀와 다를 없는 심장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사랑이라고.

# # # 

티드메는 옷깃을 여미었다. 어제까지 몰아치던 눈보라는 말끔하게 멎어 있었다. 보이는 풍경은 녹녹한 숲과 호수.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가 문을 열어 주었다.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봄같이 따스했다.

재밌었어. 그간.”

“…그건 내가 말이야. 덕분에 신기한 경험하고 .”

보고 싶을 거야.”

 그녀가 멈칫했다.

따라가고 싶고 옆에 있고 싶고 네가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되는 알잖아.”

그래. 아니까 이러는 거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빈자리가 너무 적적하니까.”

신발까지 신은 그녀는 준비를 끝마쳤다. 장미처럼 붉은 머리카락은 튤립처럼 휘어 있었고 곱게 뻗은 속눈썹과 작은 이목구비는 귀여움을 자아냈다. 거기다 맛있게 무엇인가를 먹는다면 누구보다 매력적이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봐 사람이 그였다.

이제야 그렇게 말하네. 미리 말하지 그랬어. 신한테 하루만 있게 해달라고 말할 .”

원작. 시작이야. 늦진 않아야지. 그러다가 친구 구하겠다. 이번엔 구해야지.”

라면 대신 생각난 친구. 티드메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랬지…. 잠시 잊고 있었어.”

얼른 .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우린 만나겠지.”

만나겠지. 아니라. 만날 거야.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다시 돌아올 거니까. 신을 때려서라도. 그럼 갈게. 있어.”

잠깐.”

 포탈을 타려고 문밖으로 나서던 그녀를 붙잡아 세웠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린 찰나.

사랑해.”

 그답지 않게 미련이 잔뜩 묻어 있었다. 시무룩함과 적적함, 쓸쓸함이 얼굴에 번져 있었다. 

 이것이 인간들의 미련이란 것일까. 가슴 한편이 저리긴 했지만, 동시에 귀엽기도 했다. 결국 남자도 인간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기에.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를 안았다. 작은 체구로 열심히 팔을 뻗어 허리를 휘감았다. 

이제 만족해?”

그래.”

 스르르 몸이 떨어졌고 그는 예전처럼 초연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를 또렷이 올려다 티드메는 활짝 웃었다. 앞에서 처음으로 순수하고 맑은 감정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제 가르쳐 . 이름. 브릿G 아니잖아. 그만 놀려.”

이런. …들켰나?”

그럼. 마녀니까. 그러니까 이제 알려줘.”

 그녀의 시선을 피한 그가 턱을 괴며 말했다.

그리드.”

그리드? 멋진 이름이네.”

그리 말해줘서 기쁘다. 빈말이라도 고맙네.”

빈말 아닌데 섭섭하게 그러네.”

 티드메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녀라도 아쉽지 않을 리가. 하지만 그녀가 있어야 장소는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 휴식은 이제 끝이 났고 다시금 시간의 실타래를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드.”

 그렇지만 

 원작의 그녀가 아닌 마녀로서의 그녀는

 우리의 시야 밖에 머무는 그녀는

 소설 인물이 아닌 살아 있는 그녀는

 

나도 사랑해.”

 우리와 다를 없는 존재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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