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편을 읽고 왠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떠올랐다. 내 편파적인 독서 경험에 따르면 남자가 나오는 SF는 좀 섬세한 맛이나 재미가 없다. 그들은 보통 분위기를 망치거나 위기를 몰고오는 장치로 쓰일 때가 많다(혹은 자신이 위기 그 자체일 때도 많다). 특히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야만’의 의인화 같은 인물들이다. 아니면 ‘현실’의 의인화 버전일지도?
그런데 이 작품은 남자가 주인공인 SF지만 재밌고 유쾌하다. 아름답게 만발한 꽃밭이 절로 그려진다. ‘머릿속이 꽃밭’이라는 말을 의인화한다면 혹시 은우가 저 먼 차원에서 다시 이 세상으로 살아 돌아올 수 있게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내가 얼마나 이 글에 이입하는가, 가 정말 진짜 중요해요. 그만큼 나는 안전지대에 있어, 라는 안도심이 흔들리기 때문이죠. 그 이입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바로 ‘현실감’이고, 그 이입을 잘 살릴수록 이입이 된 독자들은 작가의 흐름에 따라가며 절망적인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나와 상관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 불쾌라기보다, 불편한 감정. 이걸 잘 살리는 글이에요.
공포는 불쾌해서는 안 돼요. 불편해야죠. 불쾌하면 안전지대에 있는 나를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되지만, 불편한 것은 안전지대 안에 있어도 계속 떠올리고 생각나게 할거거든요.
번연 작가의 글은 치밀함에서 오는 매력이 있다. 그는 앞과 뒤의 복선을 통해 독자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이야기를 쓸 줄 안다. 이 작품을 통해, 언어와 언어의 연결고리가 주는 미묘한 감각을 작가가 충실히 뽑아낼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장면과 장면을 촘촘히 기워낸 한 판의 지도 속에서 인물과 동물, 신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환상을 느꼈다. 그가 창조한 세계에서 외롭지 않은 고양이를 보았다.
가장 대중적인 속설에 따르면, 차는 불교와 함께 전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차가 제일 융성했던 때는 불교가 흥했던 고려시대의 일이겠지요. 화랑과 차의 조화를 생각해 본 일이 없었던 저입니다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화랑과 불교의 관계가 멀 리 없으니 당연히 차와 화랑은 어울릴 것이란 결론을 냈습니다. 하지만 읽는 제가 결론을 내고 말고 할 일은 아닌 것이죠.
화랑과, 동자승과, 차 한 잔의 이야기. 다식을 탐하는(?) 동자승의 귀여움에 젖어 보십시오.
10월은 높은 하늘 아래 너른 들판에서 황금빛 곡식이 무르익는 추수철입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내 변덕스런 날씨와 싸워가며 가꾼 결실을 드디어 수확하는 계절이지요. 장르 소설에서 ‘수확’이 연결되는 지점은 무얼까 고민해 봤어요. 소년 만화처럼 주인공이 점차 성장해서 목표를 쟁취하는 스토리? 글 초반에 뿌린 떡밥을 후반부에 회수하는 것?
호러 소설의 비중이 높은 편인 브릿G에서는 빨갛게 익은 사과를 똑 똑 따는 것처럼 뎅겅 뎅겅 머리를 자르는 장면을 수확의 느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 머리와 몸이 분리되는 소설들을 선물 세트로 모았습니다. 감사한 분에게 마음을 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