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내가 자괴감에 빠져 글을 못 쓰는 건에 관하여?!

분류: 수다, 글쓴이: Lena, 6월 2일, 댓글3, 읽음109

세 줄 쓰고 트위타 보고 세 줄 쓰고 드러눕고 세 줄 지우고 두 줄 쓰고 한숨 쉬고 컨트롤+S 눌러놓고 게임하고… 두 시간쯤 뒤에 돌아와서 위에 서른 줄 써 놓은 거 훑어보다가 또 자괴감에 빠져서 나 혼자 있는 방에서 혼자 끅끅대다가 새벽 꼴딱 새고 해 뜨는 거 보고 나서야 아… 오늘은 늦었구나… 하고 컴퓨터 끄고……

네, 요즘 그러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꽤 넉넉하게 쌓아놨다고 생각한 비축분도(연재 속도 최속으로 달리면서 내내 놀아도 3주는 버틸 양이었습니다) 오링…이 아니라…, 바닥이 나고, 그런 와중에도 최소한의 퀄리티는 유지하겠다는 명목으로 6월 안에만 끝내겠다고 널널(?)하게 타이머 걸어 놓고 대체 어디가 문제인지 이래저래 훑어보면서 골을 쥐어짜고 있습니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슬럼프입니다. 깊은 함정에 쑥 빠져서 도무지 자력으로 나올 수가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한 번 쓱 읽어봐 주고 피드백 걸어 줄 가까운 친구나 지인이 없네요. 사실 당연한 일이기는 해요. 다들 자기 일로 바쁘고, 질이 좋지도 않은 저의 텍스트 더미를 몇 시간을 할애해 가며 읽어 주기에는 귀찮고 여유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 관계로 오늘도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론리-울프가 되어 혼자서 아이디어를 쥐어짜내며 괴로워하는 중입니다. 역시 날로 먹으려 한 건 잘못이었어, 그럼그럼 글이 어디 그렇게 쉽게 나오나. 그렇게 스스로를 책망하고 각오를 다집니다. 한 장면을 써내기 위해 수 년을, 한 권을 써내기 위해 일생을 투자하는 대작가들을 본받으며 스스로를 희망고문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디어 하나 떠올려 보겠다고 몇 시간 동안 묵상도 하고 산책도 하고 게임도 하고 별 짓을 다 하는데도 마땅히 번쩍하는 것 하나 없네요.

이쯤 되면, 이럴 거면 처음부터 왜 썼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컨트롤+Q, I 눌러서 원고 분량 확인해 보니 벌써 원고지 천 장이 넘었습니다.(다들 스크리브너처럼 간지나는 거 쓰시던데… 저는 고전파라서 한글2014 씁니다 ㅠㅠ) 그게 천 장짜리 쓰레기더미로 보이는 거죠. 그런데 그런 생각을 품고 나니, 당장 만들어낸 주인부터가 애정을 잃어버렸는데 그 누가 애정을 갖고 작품을 봐 주겠어, 하는 자괴감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네, 저놈의 자괴감이 가장 큰 적이에요. 아주 그냥 원수입니다. 무슨 한 글자를 쓰려 해도 자괴감이 턱 하고 가로막고 앉았으니 도저히 진행을 할 수 없습니다. 연재하던 거 통짜 삭제 버튼 위에 손이 자꾸 갑니다. 게임하거나 트위타 보거나 하고 있으면 자꾸 머릿속의 다른 자아가 맹공을 퍼붓습니다. 너, 네가 싼 똥은 치워야지. 재주가 없으면 노오오오력이라도 하란 말이다! 그러면 억지로 파일 켜서 다시 몇 글자 끼적이다가 머리 싸매고 비명이나 내지릅니다. 뭘 어쩌라고, 뭘 써도 쓰레기인데 어쩌라고, 그러면서요.

그리고 그 끝에는 아무나 읽어줘! 하는 심정으로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게 하소연하는 글을 쓰는 거죠. 네, 이거요. 이런 거 쓴다고 글이나 아이디어가 뿅! 하고 튀어나오는 거 아니라고 여전히 자괴의 자아가 정신을 두들겨패지만, 어쩌라고, 하고 한 마디 툭 던지고 어쨌거나 씁니다.

저런 사고의 함정을 매일매일 빠짐없이 거치고 겪으며 정신력이 점점 깎여나가고, 어느샌가 브랜디쉬.hwp라는 가증스러운 수백 KB짜리 파일을 열려고 마우스를 가져다댈 때마다 피가 말리기 시작합니다. 그게 지난 주 일이네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6월이네요. 1년의 반이 지나간 건가 싶지만 사실은 12분의 5만 지나갔으니 다행인가보다 합니다. 이제 와서 밝히는 TMI인데요, 제 필명이 유월이지만 6월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愉月이라구요. 유월이라고 지었는데 다들 6월을 떠올리시더라구요. 좀 더 다이나믹하고 개성 있는 이름으로 지을 걸 그랬나 싶지만 낙장불입인 걸로…

어쨌거나 여기까지 읽어 주셨다면 감사합니다. 평범한 아마추어 글쟁이 하나가 슬럼프에 빠져서 자괴감에 일방적으로 짓눌리며 발악하는 모습의 단편을 끝까지 감상해 주셔서요. 여러분은 평소에 멘탈 관리 잘 하셔서 이렇게 안 되고 좋은 글 뿜뿜 쏟아내셨음 좋겠습니다 ㅠㅠ…

L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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