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어에게서 작품으로
안녕하세요. 제주도에 휴가를 온 Stelo입니다.
일요일에 사지방이 고장나서 걱정했는데,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서 다행입니다. 첫 날에 비가 내렸지만 제주도 여행은 꽤 괜찮았습니다. 그 이야기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또 하도록 하고요.
늦은 밤 오늘의 문장 대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써보려 합니다.
1. 작품에서 나에게로
요즘 리뷰를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합니다. 지난 토요일에도 리뷰 두 편을 썼는데요. 생각난 김에 이야기하지만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는 192~30년대 카프 작가들을 모델로 잔인했던 일제강점기에 대해 아름답게 풀어낸 소설입니다. 꼭 읽어보시길.
본론으로 돌아와서요. 제가 리뷰를 쓰는 방식이 많이 변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작품 자체보다는 그 작품이 딛고 서 있는 세상과, 제가 그 작품을 왜 그렇게 읽었는지에 집중하게 되었거든요.
2. 작품에서 이유 찾기
1년 전에 제가 썼던 리뷰들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저는 작품을 평가하고 분석하면서, 하나의 이미지를 그려나가려고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마음의 풍경님의 [푸른 그림자] 1화를 리뷰했던 [나쁘지 않은 시작], 그리고 조딘님의 [꽃, 다시 꽃]을 리뷰했던 [감정들로 그려낸 기이한 조선]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이 도입부가 저를 왜 놀라게 만들었는지 문장 하나하나를 인용해가면서 설명하기도 했고요. 작품에 나오는 독특한 소재들을 물감처럼 써서 작품의 분위기를 그려나가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저는 어떤 작품들에는 실망하기도 했었어요. 나름 작가분들에게 도움을 드린다면서 피드백을 쓰곤 했었죠. 보통은 4가지 중 하나였어요.
1. 문장이 늘어지고 읽기 어렵다.
2. 도입부가 독자를 끌어당기지 못한다.
3. 단순하고 전형화된 (특히 여성) 캐릭터를 만들고 죽인다.
4. 화자의 시점과, 이야기 흐름에 맞지 않는 설정 설명이많다.
넷 다 작품에서 이유를 찾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객관적인 기준처럼 보이죠. 하지만 이런 기준이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3. 혹평, 상처
저는 당연하지만 작가분들이 상처를 받으시는 모습들을 봤어요.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괜찮다. 고맙다.”고 하는 분들도 물론 계셨는데요. 그런 분들도 뒤에서 (트위터나 자게나, 작가 후기에서) 힘들어 하시더라고요. 어떤 분은 제 리뷰에 화를 내시기도 하고, 어떤 분은 나는 왜 글을 못 쓸까 우울해 하시기도 했어요. 꼭 저 때문은 아니겠지만 연재를 그만두는 분들도 계셨어요.
저는 고민했어요. 과연 나는 더 나은 작품을 위해서 작가님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걸까, 아니면 객관적인 이유를 명분 삼아서 화를 낼 뿐인 걸까. 리뷰어와 작가가 서로 소외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름 노력을 여러가지 했어요. 리뷰에 피드백을 달라고 부탁도 드려봤어요. 신통치는 않았어요. 두루뭉술하게 “괜찮다. 감사하다.”는 답이 가장 많았던 기억이 나네요.
장점을 찾으려고도 노력하고요. 제가 실망한 이유조차도 문학적으로 그려보려고도 했어요. 여기에 성공한 사례로는 번연님의 [호문쿨루스]를 리뷰했던 [부유하는 대죄]나 유권조님의 [아이스크림은 빨간색으로]를 리뷰했던 [남자의 눈으로만 보는 현실]이 떠오르네요.
4. 남들과 다른 나만의 주관
그러다가 제가 남들과 많이 다르게 생각한다는 걸 새삼스럽게 눈치챘어요.
당장 [아이스크림은 빨간색으로]를 리뷰한 다른 분들은 대부분 ‘가난한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로 읽으셨어요. 이 이야기에서 여주인공에게 이입해서 단절과 상처를 읽은 사람은 저 뿐이었죠.
최근에는 리체르카님이 쓰신 [벚꽃잎]을 리뷰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다들 이 이야기를 웃기게 읽으셨죠. 하지만 저는 읽기가 힘들었거든요. 아니겠지. 아니겠지. 했는데 정말 그런 결말이었어요. 다들 웃으시는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화가 나기도 했어요. 고민하다가 결국 [웃지 못할 사랑 이야기]라고 썻죠.
제 생각이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적…은 매우 많았어요. 그 아픈 시간들을 거치면서 저는 어느샌가 깨달았어요. 이해받고 싶다면 상대가 받아들일 논리와 근거를 대야 한다는 걸요.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무엇이 변했는지… 저는 [웃지 못할 사랑 이야기]를 쓰면서 논리를 무기로 삼지 않았어요.
5. 나와 세상에 대해 말하기
제가 [짝사랑 문제]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일까요. 저는 논리 대신 제가 무엇을 겪었고, 들었는지 이야기했어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상상해보곤 한다던가
중학교 2학년 때 짝사랑을 마음 속에 묻었던 기억이라던가
여동생의 친구가 아웃팅을 당했던 이야기 같은
그런 기억들 말이죠. 저는 이런 개인적인 이유들만 이야기해도 다들 이해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번에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를 리뷰했던 [이 복잡하고 잔인한 세상에서, 사랑]도 그랬어요. 저는 시인/ 표현의 자유/ 에스페란토/ 공산주의/남녀평등에 대한 의미심장한 정보들을 나열하면서 시작했죠.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이어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작품이 아니라 그 작품이 만들어진 세상에 대한 이야기에요.
저는 이 작품이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불편했어요. 제가 군인이라 기무부대 분들이 무섭기도 하지만… 저는 카프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끼거든요. 사실 세상 모든 게 다 복잡해요. 그래서 단순하게 좋은 이야기라고 쓸 수가 없었어요.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멀리 돌아가야 했죠. 제가 에스페란티스토로서 알게 된 것들, 중3 때 수첩에 “혁명가 정신”을 쓰고 살았는데 더 이상 혁명을 믿지 않는 이유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저는 작품이 아니라 ‘나와 세상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하면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해서요.
6. 리뷰어에게서 작품으로
하지만 이게 옳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라는 작품 자체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거든요.
작품에 계속 나오는 옛말을 주석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라던지요. 이게 책이었다면 불편했을 텐데 웹이고 브릿G니까 괜찮더라고요.
극적인 사건이 진행되기보다는 한 장 한 장 그림들처럼 장면들이 이어지는 느낌도 좋았어요.
거대한 대의보다는 두 사람의 사랑과 사람들의 아픔이 비중있게 그려지는 점도 있고요.
이런 형식들이 불편할 수도 있는데, 왜 좋게 다가왔는지 설명해도 좋았을 거에요. 소재와 형식이 서로 시너지를 냇다고 봐요. 현대가 아니라 아련한 역사 속 기억이기에.
하지만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이런 고찰들은 옆으로 밀어두게 되더라고요. 한계라고 할까요. 안타까운 점이죠.
결국 답은 중립에서 균형을 잡아야한다는 걸지도 몰라요. 작품에 대해서도 저와 세상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하는 거죠. 어쩌면 이 둘이 서로 시너지를 낼지도 몰라요. 하나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가지는 건 욕심일까요?
앞으로 계속 고민해봐야겠어요. 저는 항상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리뷰를 통해 서로 발전하고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거든요.
추신 : 리뷰 의뢰는 항상 받고 있답니다. 리뷰가 필요하시면 금액 상관 없으니까 편하게 부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