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브릿G에 대한 인상과 지속 가능한 창작에 대해서

분류: 수다, 글쓴이: 스트렐카, 18년 1월, 댓글13, 읽음: 238

본문이 굉장히 깁니다. 마지막에 요약도 있어요!

 

 

저는 대여점 판타지로 시작해서 라이트노벨을 거쳐 웹소설에 도달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 와중에 황금가지나 웹진 거울 등지에서 다루는 ‘고전적인 장르 소설'(제 인상입니다)에도 관심을 가졌고, 읽어오면서 이런저런 소설도 썼죠. 그러던 차에 느낀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도 내 소설을 안 읽어줘!”

단순하고 유아적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괜찮은 사람이라면 그저 공책이나 하드디스크에 소설을 넣어두면 됩니다. 하지만 웹이든 어디든 소설을 공개한다는 것은, 누군가 읽어줬으면 한다는 얘기겠죠. 독자가 자신의 소설에서 재미나 감정의 움직임을 느끼고, 어떤 메시지를 읽어냈으면 하는 것- 그게 소설을 공개하는 이유라고 봅니다.

누군가 소설을 읽어주지 않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 가장 간단하게는 소설의 질이 떨어져서(안타깝고 부끄럽게도 제가 그렇습니다), 소설을 꾸준히 쓰지 않아서(이 부분에서도 찔리는군요), 그런 이유를 통틀어 ‘기대되는 작가’가 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이런 것들은 작품, 혹은 작가 내부의 문제입니다. 당연히 작가 외부의 문제도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소설 연재 플랫폼에는 플랫폼 내에 게시된 소설의 순위를 나타내는 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위는 조회-추천-선작(구독) 세 개의 변수로 결정되고요. 이 순위표라는 것은 플랫폼 메인 화면에 나타나며, 플랫폼에 접촉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왜 순위표는 메인에 표시되는 걸까요? 간단히 제 생각을 말하자면, ‘(가장)좋은 글을 노출하는 것이 플랫폼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이득이 되느냐? ‘좋은 글이 (신규)유저를 끌어들이는 데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메인에 노출될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므로, 그 한정된 지면 내에서 플랫폼을 가장 흥하게 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가 순위표라는 겁니다.

이 순위표는 분명 효과적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순위표에 노출되는 작품만 지속적으로 순위표에 남아있는 양성 피드백적 현상일 겁니다. 한 번 순위에 올라간 작품은 웬만해선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몇 연재 플랫폼들은 정기적으로 순위표를 초기화하죠. 제가 브릿G를 매일 살펴본 건 아니라(…) 브릿G도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순위에 드는 작품만 메인에 노출되느냐? 그건 또 아니죠. ‘최근에 연재된 소설’들도 노출됩니다. 그 외에는 플랫폼 차원에서의 홍보(ex. 플랫폼과의 계약에 따른 홍보, 브릿G의 편집자의 추천 제도)가 있고요.

이제 한 명의 작가가 자신의 소설을 창작하고 연재하는 전략을 세운다고 합시다. 이 작가는 막 플랫폼에 진입한 터라 순위에 드는 건 막연한 꿈일 뿐입니다. 플랫폼 차원에서의 홍보나 플랫폼 내외에서 입소문이 퍼지는 것도 기대하기 힘들죠. 그렇다면 작가가 취해야 할 전략은 두 가지로 정해집니다.

1. ‘최근 연재된 소설’ 목록에서 노출될 때 사람을 많이 이끄는 것. 즉, 제목이나 소개글 따위를 자극적으로 작성하여 독자에게 어필하는 것.

2. 잘 쓰는 것.

2번은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잘 써도 1번만 못한 경우도 있고요. 따라서 대다수의 웹소설 플랫폼에서는 1번의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물론 1번이라고 마냥 쉬운 일이겠습니까마는 2번보다는 쉽지 않을까요?

다만 일의 쉬움과 별개로 그걸 꺼려하는 사람들 또한 분명 존재합니다. 저는 어쩌면 브릿G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과한 파격을 싫어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고전주의자들이 그들의 시간 속에 머무르기 위해 만든 장소 같다는 느낌을 받지요. 까내리려는 건 아닙니다. 이 감상에 너무 기분이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다만 브릿G에는 ‘자극적인 홍보’를 지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는 지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소설을 연재하려는 작가가 브릿G에 연재하려는 작가라고 합시다. 이제 이 작가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요?

잘 써야죠.

잘 써야 합니다. 진짜 그것밖에 없어요! 트위터나 페이스북, 혹은 오프라인에서 자신의 글을 홍보할 수는 있겠죠. 브릿G 자유게시판에다 목놓아 외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한순간일 뿐입니다. 결국, 잘 써야만 합니다.

이야기는 지난한 지점으로 돌입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고민했을, ‘잘 쓰는 것’. 여기서 교육학적이나 방법론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건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하기로 하고, 이야기를 조금 되돌리겠습니다.

왜 잘 써야 할까요? 노출이 되기 위해서.왜 노출이 되어야 하나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해서.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싶죠? 독자가 재미나 정동을 느끼고 자신의 메시지를 읽어줬으면 해서- 즉, 독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싶다는 창작자의 욕망 때문입니다.

그 욕망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고 창작자 내면에서 끓어오르거나 부딪혀가며 사람을 창작하게끔 만들고야 마는 존재입니다.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창작합니다. 아닌가요? 아닌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일단 이야기를 이 지점으로 좁히겠습니다. ‘창작 욕구가 지속되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로.

독자에게 영향을 주려면, 잘 써야 합니다. 욕망을 지속적으로 만족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창작해야 합니다. 잘 쓰는 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사람은 먹고 살아야만 합니다. 여기서 가장 간단한 방법이 도출됩니다. 창작으로 돈을 버는 것.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말 더럽게 길었네요! ‘창작 욕구가 지속되는 존재들이 그 욕구를 지속적으로 만족시키는 데 가장 간단한 필수 조건은 창작으로 돈을 버는 것’이라는 지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글의 시작을 이 문장으로 해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 쓴 글이니 지우지 않기로 하고…….

돈을 벌어야 해요. 커다란 창작욕은 어쩌면 삶에 위협이 됩니다. 그에 대해 덕업일치는 가장 간단한 해답이지만, 달성하는 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창작자란 그 커다란 욕망과 함께 강력하고 단단한 내적 기준을 가지게 되는 존재들이고, 창작자의 내적 기준과 독자들의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며 더 나아가서 돈까지 벌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처럼 여겨집니다.

여기서 대전략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내적 기준을 독자들의 기준에 맞추는 것. 달리 말해 타협이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내적 기준과 들어맞는 기준을 가진 독자들을 찾는 것입니다. 후자의 어떤 극단에 있는 것이 브릿G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브릿G는 다른 웹소설 플랫폼과 많이 다릅니다. 우선 중단편 또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점이 그렇고, 유료연재가 중점이 아니라는 것이 또한 그렇습니다. 브릿G는 “종이책 출판 시장과 웹소설 시장을 연결하는 구심점”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잘 구성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플랫폼이 어떻게 이윤을 갖나 싶지만 살펴보면 자그마한 상품들이 꽤 잘 나가는 것 같네요. 한동안은 괜찮을 것도 같아요. 독자들의 분위기도 평화로워요. 전투적인 댓글이나 감상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비슷한 가치를 원하는 플랫폼, 작가, 독자가 잘 모여서 자그마한 선순환을 지속하고 있는 느낌.

…그렇지만,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을까요?

텍스트 기반의 창작자에게 웹소설이 하나의 금전적 해방으로의 탈출구로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아, 요즘은 가상화폐의 시대긴 하죠.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더니……. 하여간 우리는 다시 돈의 문제로 돌아오게 됩니다. 누군가는 덕업일치라는 해답을 벗어나 투잡과 취미의 영역으로 돌입합니다. 하지만 그게 누구에게나 만족스런 해답은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타협하면서 산다.” 맞는 말입니다. 다만 우리는 가끔 선을 그어야 할 때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이상 타협한다면 타협을 지속하다 이내 포기해버릴 것 같은 감각. 이대로 사람들이 빠져나가다간 아무도 남지 않을 것 같은 감각.

‘지속 가능한 창작’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이미 많은 이야기가 나눠졌겠죠. 그렇지만 제가 문외한이다 보니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니까 일단 제가 생각해왔던, 궁금하던 지점들을 대충 꿰어 이 글에 적었습니다. 아직 조금 더 적어야 할 것 같네요.

오늘 어떤 사람과 브릿G와 웹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브릿G에서 연재되는 소설들이 겨냥하는 독자와 웹소설이 겨냥하는 독자가 다르므로 브릿G가 다른 웹소설 플랫폼에 대해 마케팅적 열위에 있다 하더라도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는 ‘먼 일이긴 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유입은 마케팅에 굉장히 크게 의존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더군요. 한창 라이트노벨 판에 있을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결국 파이가 커져야 합니다. 그런데 파이를 키울 방법은 잘 모르겠더라고요.

가지고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지겨울 해답일, ‘백마 탄 초인’이 판에 내려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이영도 작가의 신작이라든가. 그로 인해 몰려올 신규 유저들은 이영도 작가의 신작 외의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을 가져줄 겁니다. 그 ‘여분의 관심’ 외에 파이를 키울 방법이 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무엇이 있을까요? 이 판이 커질 수 있는 방법에는 대체 어떤 게 있을까요? 또 지속 가능한 창작을 위해서는 어떤 지점이 필요할까요? 개중 개인의 영역에 속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억지로 그러모았더니 좀 이상한 모양새가 되었는데 여러분들의 독해력을 믿고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약:

1. ‘지속 가능한 창작’이 작가는 물론 독자와 창작판까지 이롭게 할 것입니다.

2. 하지만 ‘지속 가능한 창작’에는 금전적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난점이 존재합니다. 그 해답 중 하나는 ‘백마 탄 초인에 의한 파이 키우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은 좋은 해답은 아니며, 유일한 해답 또한 아닐 것입니다.

3.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창작’을 위한 조건이란 무엇인가요? 굳이 어떤 답안을 내지 않으시더라도,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s. 저는 개인이 해낼 수 있는 일로 ‘좋은 리뷰를 작성’하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독자에게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을 크게 충족시키는 것도 지속 가능한 창작에 영향을 줄 테니까요. 다만 저는 여러 핑계를 대며 리뷰를 쓰길 미루는데(…) 그래서인지 리뷰를 꼼꼼히 작성하시는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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