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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파는 가게>의 스티븐 킹이 단편에 대해 언급한 서문

글쓴이: 아이라비, 17년 11월, 댓글4, 읽음: 186

킹옹답게 역시나 좋은 글이라 올려봅니다~

들어가며

내 작품을 꾸준히 찾아주는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내가 준비한 몇 가지를 이제 달빛 아래 펼쳐 보이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손수 만들어서 팔려고 내놓은 소소한 보물들을 내놓기에 앞서 몇 마디 소개를 했으면 좋겠다. 금방이면 될 것이다. 여기, 내 옆에 앉아주기 바란다. 좀 더 가까이 와서 앉아도 된다. 안 잡아먹는다.

물론…… 여러분과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인 만큼 그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여러분도 알 거라 믿는다.

그렇지 않은가?

I

나더러 단편소설을 계속 쓰는 이유를 묻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들으면 여러분도 깜짝 놀랄 것이다(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재미있는 일을 하도록 만들어진 사람인데 단편소설을 쓰면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기타도 잘 치지 못하고 탭댄스는 아예 추지도 못하지만 단편소설은 쓸 줄 안다. 그래서 쓴다.

나는 천생이 소설가이고,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몰입감을 선사하며 현실과 거의 다름없는 허구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장편을 특히 좋아한다. 장편이 성공을 거두면 작가와 독자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결혼한 사이가 된다. 『스탠드』나 『11/22/63』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아쉬웠다는 독자가 있으면 그 작품은 성공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좀 더 짧고 강렬한 작품에도 장점이 있다.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낯선 사람과의 왈츠나 어둠 속의 키스나 벼룩시장의 싸구려 담요 위에 놓인 근사한 골동품처럼 삶의 원동력이 되고 가끔은 쇼킹한 매력이 있지 않은가. 아, 그리고 내 단편들을 한데 모아놓으면 자정에만 문을 여는 노점상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이런저런 것들을 늘어놓고, 와서 하나 골라보라고 독자들―그러니까 여러분―을 유혹한다. 하지만 정식으로 경고를 하자면 위험한 품목도 있으니 조심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런 품목들 안에는 악몽이 숨겨져 있어서 잠이 잘 오지 않을 때, 옷장 문을 분명히 닫았는데 왜 지금 열려 있는지 궁금할 때 자꾸 생각이 날 것이다.

II

짧은 작품에 적용되는 엄격한 규율을 내가 항상 유쾌하게 받아들였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짧은 소설을 쓰려면 지겨운 연습을 수없이 반복해야 터득할 수 있는 곡예 기술 같은 것이 필요하다. 어떤 선생님들은 어렵게 쓴 글이 쉽게 읽힌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장편에서는 모르고 지나갈 만한 실수들이 단편에서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엄격한 규율이 필수 조건이다. 황홀한 곁길이 등장하더라도 그 길로 새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큰길을 고수해야 한다.

나는 단편 소설을 쓸 때 내 능력의 한계를 가장 뼈저리게 실감한다. 내가 작가로서 자격 미달인 듯한 기분과 빛나는 아이디어와 아이디어의 구현 사이에 놓인 간극을 메우지 못할 것 같은 공포를 뼛속 깊이 느낀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어느 날 오호라! 당장 글로 써야 하겠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어디에선가 문득 떠오른 근사한 아이디어와 비교하면 완성된 작품이 수준 미달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결과가 가끔 제법 괜찮을 때도 있다. 그리고 어쩌다 한 번이지만 원래 떠올랐던 아이디어보다 나을 때도 있다. 그러면 여간 신나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그 염병할 경지에 다다르느냐 그것이 문제인데, 훌륭한 아이디어를 갖춘 작가 지망생들이 펜을 들지 못하거나 자판을 두드리지 못하는 이유가 그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추운 날 차에 시동을 걸려고 하려는 것과 비슷할 때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엔진이 작동되기는커녕 신음소리만 낸다. 하지만 계속 시도하다 보면(배터리가 나가지 않은 이상) 시동이 걸리고…… 털털거리다…… 조용해진다.

이 안에는 번개처럼 영감이 떠오르는 바람에 작업 중이던 장편을 잠시 중단하고 당장 쓸 수밖에 없었던 작품도 있다(「여름날의 천둥」이 그런 경우였다). 그런가 하면 「130킬로미터」처럼 몇 십 년 동안 자기 차례를 진득하니 기다려야 했던 작품도 있다. 하지만 훌륭한 단편이 갖추어야 할, 집중이라는 엄격한 기준은 어느 작품에나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장편 소설은 야구와도 같아서 20이닝까지 가더라도 끝나야 끝나는 거다. 단편 소설은 상대팀뿐 아니라 시계를 상대로도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농구나 미식축구에 가깝다.

장편이건 단편이건 소설쓰기에 관한 한 학습곡선에 완결은 없다. 국세청에서는 소득세 신고서를 보고 나를 전문 작가로 간주할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기술을 갈고 닦는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하루하루가 배움의 기회고 새로운 도전이다. 땡땡이는 용납되지 않는다. 타고난 재능을 늘릴 수는 없지만―한 세트로 주어지는 것이기에― 쪼그라들지 않게 관리할 수는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아, 그리고! 나는 내 일을 여전히 사랑한다.

III

내 작품을 꾸준히 찾아주는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한 것들을 여기 이렇게 펼쳐 보인다. 오늘 밤에 나는 이것저것 조금씩 팔아볼 생각이다. 자동차처럼 생긴 괴물(『크리스틴』의 재현이랄까), 부고를 작성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남자, 평행우주를 들락거릴 수 있는 e북 독자, 그리고 고전 중의 고전이랄 수 있는 인류의 종말. 나는 다른 노점상들은 이미 오래전에 퇴근하고 길거리에는 인적이 끊기고 차가운 달의 껍질이 도시의 협곡을 비추는 때에 이것들을 팔고 싶다. 바로 그때  담요를 펼치고  물건들을 늘어놓고 싶다.

사설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어쩌면 여러분도 이제 뭔가 사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직접 만들었고 애착이 가지 않는 것이 없지만 특별히 여러분을 위해 만든 것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내놓을 수 있다. 마음껏 구경하되 조심하기 바란다.

가장 괜찮은 녀석들에게는 이빨이 있으니 말이다.

아이라비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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