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슬립] 3번 승강장 그 후
틈
승강장 노란색 안전선 안쪽, 선로가 있는 바닥면에 위치한 빈 공간. G시는 예산 부족으로 아직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역사가 많았다. 내가 일하는 곳도 그런 곳이었다.
신입 교육에서 선임은 저 틈을 ‘대피공간’이라고 불렀다. 선로에 떨어졌는데 열차가 이미 가까워 올라올 수 없으면, 그 안으로 몸을 최대한 밀착하라고 했다. 최후의 수단이었다.
“웬만해선 저기 내려가지 마.” 선임이 못을 박듯 말했다. “승인 없이 선로 내려가는 것 자체가 규정 위반이야. 확인할 게 있어도 그냥 위에서만 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순찰이라 해봐야 승강장 위에서 선로를 훑어보는 정도였다. 떨어진 물건이나 이상이 보이면 보고할 뿐, 직접 내려가는 일은 없었다.
그 틈은 늘 저 아래,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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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막차가 끊긴 뒤였다. 나는 승강장 끝단을 지나던 중, 아래쪽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처음엔 배관 소음인가 했다. 그런데 다시 들으니, 사람의 숨소리에 가까웠다. 가쁘고, 힘겨운.
나는 승강장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손전등을 비췄지만 틈 안쪽까지는 닿지 않았다.
“저기요?” 나는 소리쳤다. “누구 계세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숨소리가 조금 더 뚜렷해졌다. 누군가 그 틈 안쪽에 있는 게 분명했다.
규정과 경고를 떠올렸다. 내려가지 말라던 선임의 말.
하지만 지금 저 아래 사람이 있고,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나는 무전기로 상황을 보고하려다가, 응답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전력이 차단됐는지부터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승강장 끝에 있는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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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 위, 승강장 하부의 그 홈은 생각보다 깊었다. 나는 손전등을 앞세우고 천천히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숨소리가 커졌다. 사람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빛이 안쪽을 비췄다. 웅크린 형체가 보였다. 팔로 머리를 감싸고, 무릎을 접고, 벽에 몸을 바짝 붙인 자세.
“괜찮으세요?” 나는 다급하게 다가가며 물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조금만…”
가까이서 보니 그 사람의 옷 위로 먼지가 수북이 앉아 있었다. 방금 떨어진 사람의 것치고는 지나치게 오래된 흔적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 형체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어깨가, 숨을 쉬듯이, 위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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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면 도와야 했다. 손을 뻗어 끌어내야 했다.
머릿속으로는 그 생각뿐이었는데, 몸은 정반대로 반응했다. 형체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자, 나는 뻗으려던 손을 거두고 대신 뒷걸음질을 쳤다.
아뿔싸.
이목구비가 있어야 할 자리가 지나치게 매끈했다.
“3번.” 낮고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직, 안 지나갔어.”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만 벙긋거렸다. 도와야 한다는 생각과,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몸을 잡아당겼다.
이긴 건 후자였다.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문득, 이 역에도 떠도는 3번 승강장 괴담이 떠올랐다. 이 틈이 그 승강장과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논리적 근거 하나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갔다.
형체는 다시 몸을 웅크렸다. 이미 그 자리에 밀착할 대로 밀착해 있었는데도, 계속 더 깊숙이 파고들려는 듯 등을 떨었다. 오지 않는 열차를, 이미 지나갔거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열차를, 여전히 피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저 멀리 터널 안쪽에서 낮은 진동이 느껴졌다. 이 시간에 다닐 열차는 없었다. 그런데도 레일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무전기도, 규정도, 눈앞의 형체도 모두 잊고 계단 쪽으로 냅다 뛰었다.
진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자책이 뒤늦게 밀려온 건, 승강장 위로 올라와 숨을 몰아쉬던 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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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보고서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무엇을 봤다고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일말의 죄책감은 남았다. 분명 살아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손 한 번 내밀지 못하고 도망쳤다.
다음 날, 나는 참지 못하고 선임에게 물었다. “선배, 혹시… 저 아래 틈에서 사람, 아니 유령을 본 적 있으세요?”
선임은 커피를 젓던 손을 잠깐 멈췄다. 오래 대답이 없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마도 그거 같은데… 몇 년 전에, 노숙자 한 명이 취해서 선로에 떨어진 적이 있어. 그날 마침 마지막 열차가 늦게 들어왔고. CCTV에는 그 사람이 대피공간 쪽으로 기어드는 것까지만 잡혔어.”
“그래서요?”
“열차 지나가고 확인했는데, 없었어.” 선임은 종이컵을 내려다본 채 말을 이었다. “홈 안쪽에도, 선로 어디에도. 그래서 그냥 실종 처리됐어. 시신도, 흔적도 못 찾았으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뒤로 가끔,” 선임이 덧붙였다. “그 틈 근처에서 이상한 숨소리가 들린다는 얘기가 있었어. 근데 막상 확인해보면 아무것도 없다나.”
선임은 더 이상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선임의 표정에서, 더 캐물으면 안 될 것 같은 무언가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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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나는 그 틈 앞을 지날 때마다 걸음을 서두른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만 아직, 단 한 번도 조용했던 적은 없다.
그리고 지금도, 막차가 끊긴 시간에 순찰을 돌 때마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가쁘고, 힘겨운, 누군가의 숨소리를.
처음엔 그게 틈 안쪽에서 나는 소리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일 때마다 이상한 걸 알아챘다. 그 숨소리의 간격이 내 숨과 정확히 겹쳐 있었다. 내가 숨을 들이쉬면 그것도 들이쉬고, 내가 참으면 그것도 참았다.
오늘 밤도 나는 그 앞에 서서 숨을 죽여본다. 틈 안쪽도 똑같이 조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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