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슬립] G시 P로에 다녀왔다면 바지는 꼭 털어
매미가 죽어있었어.
왜, 가끔 경험하기도 하잖아?
매미나 바퀴벌레, 모기 따위가 옷과 가방에 붙어서 집까지 오는 경우 있잖아.
P로에 다녀왔으면 특히 더 꼼꼼히 확인해야 해.
알다시피 거기 구멍가게가 꽤 많잖아?
화약총을 파는 문방구나.
항상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정육점의 분홍 조명을 쓰는 이발소.
나비문신 자매가 운영하는 담배가게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고.
레코드 가게.
비디오 대여점.
만화방.
분신집.
연탄가게. 복덕방.
퀴퀴한 오락실.
전파사.
비디오가게.
분식집. 쌀가게.
비디오 대여점.
기타등등. K로에는 그런 오래된 구멍가게가 많아.
가본 사람은 누구나 알지.
특유의 냄새를 한 번 맡아보면 절대 잊지 못하니까.
살 냄새. 소독약 냄새.
사용 후 새로 채우지 않은 기름 냄새.
켜켜이 쌓인 종이. 거미줄. 음모론의 냄새.
케이스를 잃어버린 B급 영화들이 탑처럼 쌓여서 풍기는 플라스틱 쉰내.
하수구 위로는 담배. 시가. 낙엽. 머리카락.
그것들 사이에 하얀 액체 담긴 고무 풍선이 여럿 섞여 구멍을 꼼꼼히도 틀어막고.
빗물이 찰랑찰랑하게 고인 곳은 나병환자를 연상케 하는 고름내를 풍겨.
시대를 미처 쫓아가지 못한 것들이 모인 P로는 뭐라고 할까… 구덩이(Pit) 같은 거리야.
그래서일까. 뭐, 알고 있겠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지만.
이런 곳에는 벌레가 쉽게 모여들어.
바퀴벌레. 여치. 흰개미.
콘크리트 균열 사이에 둥지를 튼 5cm 정도의 지네 때.
초파리. 나방. 이름 모를 작은 벌레. 딱정벌레. 쇠파리.
무엇보다 끔찍한 건 푹푹 찌는 습한 밤공기 속를 울려대는, 매미.
난 정말로 더러워서 진심으로 가기 싫었는데 말이지.
그 시대를 아는 사람은 또 그런데가 마음에 드나봐.
깨끗한 무인카페보다 반지하 다방.
축음기로 틀어주는 옛날 트로트를 들으며 마시는 쌍화차가 대체 무슨 매력인건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 시대를 살던 사람에게는 그런 곳도 아늑했나봐.
G시에서 오래 살은 사람들은 꼭 여기로 향한다 하더라고.
그리고 대부분은 찾지 못해.
예를 들어, 옛날이 좋았다며 노래를 부르시던 우리 증조할아버지처럼.
P로에서 누가 불렀다며 요양병원을 갑자기 뛰쳐나가셨다길래, 일이고 뭐고 팽개치고 뛰어가기야 했지.
하지만 찾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지.
말했다시피 P로는 옛날 것들로 가득한 구덩이의 거리야.
한 번 섞여들면 나 같은 요즘 사람은 거기에 뭐가 있는지 분간하지 못해. 옛날 거라는 게 그렇잖아?
멋진 건 모르겠고. 벌레가 많다는 것 정도만 보였지.
적어도 집에 왔을 때 바지는 잘 털었어야 했는데…
바스락소리가 나면서 매미 한 마리가 툭 떨어졌을 땐 어찌나 놀랐는지.
미리 말했다 시피 매미는 죽어 있었어. 주름이 아주 많고, 검고, 짙은 색.
그게 바스락대며 발버둥치거나 비명처럼 울었다면 난 선 채로 기절했을지도 몰라.
뭐, 내 경험담은 여기까지.
도대체 왜 매미가 죽을 힘을 다해 내 바지에 붙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아무튼, P로에 다녀왔다면 바지는 꼭 털어.
죽은 벌레도 떨떠름하겠지만, 그 안에 더 작은 벌레들이 숨어 있을지 누가 알겠냐고.
집 전체를 벌레 둥지로 만들고 싶지는 않잖아?
쉽게 손이 닿지 않는 장농 이불 뒤편이나 책장과 책의 틈새.
습기로 눅눅해져 딱 붙지 못하고 떠버린 천장지.
어설프게 키우는 베란다의 화분 아래. 깨진 욕조의 틈새 같은 곳.
벌레가 집 안에 들어왔다면… 사실 살만한 곳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조심해.
매미가 죽어있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