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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슬립] 잃어버린 반년 (M사 관계자는 보지 마세요)

글쓴이: 김뭐시기, 7시간 전, 댓글4, 읽음: 39

마지막으로 글을 쓴 게 벌써 반년 전이군요. 오랜만입니다. 압수당했던 스마트폰을 되찾아 도망쳐 나오자마자 이 글을 씁니다.

지금 저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길바닥에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반년 전에 쓴 글의 마지막을 다시 읽어보니, 한 학생이 버리고 간 캔 음료를 주워 마시며 제 미래를 걱정하는 부분에서 끝나 있더군요. 이야기는 그 지점부터 이어집니다.

한참 동안 처량하게 남이 버린 음료를 홀짝였습니다. 건더기까지 아까워 씹어 먹고 있자니 시간이 제법 흘렀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제 앞에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인상이 참 좋으신데,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걱정도 많으신 것 같네요.”

저는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제 나이가 서른네 살인데 모아 둔 돈도 없고, 특별히 할 줄 아는 것도 없습니다.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사실상 장기 백수로 살아왔고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는 온화하게 웃으며 따라오라는 듯 제게 손짓했습니다. 저는 별다른 의심도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도착한 곳은 M사의 음료 제조 공장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윗집 아주머니도 정신이 온전하셨을 때 이곳에서 일하셨습니다. 벌써 십여 년 전 일이지만,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실 때마다 M사 음료를 한 박스씩 가져오곤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안내를 받아 소독을 마친 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공장 안은 놀라울 정도로 깨끗했습니다. 작업자들은 마치 기계처럼 정해진 자리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고, 잔잔한 음악이 공장 전체에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할랄 식품 공장에서는 쿠란을 틀어놓고 작업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묘하게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필로사미아신시아필로사미아신시아필로사미아신시아필로사미아신시아…’

처음에는 외국어 노래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으니 같은 구절만 끝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날 일을 마치자, 관리자가 기숙사 열쇠를 건네주었습니다.

“신입은 모두 기숙사를 사용합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였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숙식까지 해결된다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리자는 열쇠와 함께 작은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휴대전화도 맡겨 주시면 됩니다.”

“네?”

“기숙사 생활 중에는 개인 전자기기 반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보안 규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순간 당황했지만, 음료 제조 공장이니 신제품 유출을 막으려는 조치겠거니 했습니다. 스마트폰을 봉투에 넣어 건네자, 관리자는 제 이름이 적힌 꼬리표를 붙여 보관함에 넣었습니다.

“퇴사하실 때 돌려드리겠습니다.”

그 말에도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습니다. 연락할 사람도 거의 없었고, 당장 잘 곳과 먹을 곳이 더 절실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공장 뒤편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기숙사는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깔끔했습니다. 방은 혼자 쓰게 되어 있었고, 침대와 책상, 옷장만 놓인 단출한 구조였습니다.

공장과 기숙사를 오가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업무는 단순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흘러오는 음료를 검수하고 상자에 담아 옮기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다만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작업이 시작되기 전, 모든 작업자가 생산 라인 앞에 일렬로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공장 안에 그 음악이 다시 흘러나왔습니다.

‘필로사미아신시아필로사미아신시아필로사미아신시아…’

노래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들은 작업 시간 내내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관리자가 고개를 숙이자 다른 사람들도 동시에 허리를 굽혔습니다. 저도 괜히 눈치를 보며 따라 했습니다.

처음에는 조회 같은 건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했습니다.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퇴근길에 제품 전시 공간이 눈에 띄어 잠시 둘러봤습니다.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마셔 온 음료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소풍만 가면 꼭 사 먹던 ‘끔찍이 소다’도 이 회사 제품이더군요. 달팽이들이 등장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광고로 유명했던 음료였습니다. 제품 설명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당시 광고에 등장한 달팽이는 ‘필로사미아 신시아 추출물’을 가장 친근하게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달팽이와는 전혀 닮지 않았는데도 그런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는 최근 출시된 신제품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G시 지역 한정판 에너지 드링크]

제품 소개에는 한 줄만 적혀 있었습니다.

[필로사미아 신시아 추출물 원물 함유]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필로사미아 신시아 추출물은 이미 알려진 식재료였습니다. 고단백 식품으로 유명했고, 저도 건조된 원물을 해외직구해 먹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원물 그대로 사용하는 제품이 출시됐다는 소식도 알고 있었습니다.

며칠 뒤부터 작업복에는 꽃 모양 배지가 달렸습니다. 낯선 문양이었지만 어딘가 익숙했습니다. 한참 바라보다가 그 문양이 무엇을 본뜬 것인지 알아차렸습니다. 필로사미아 신시아였습니다.

퇴근 후 다시 전시 공간을 찾았습니다. 희고 가느다란 꽃잎이 사방으로 뻗은 꽃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중심부는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짙었습니다. 아래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필로사미아 신시아는 M사의 모든 제품 철학의 출발점입니다.]

꽃 하나를 두고 ‘제품 철학의 출발점’이라고 적어 놓은 것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조금 더 아래에는 추출물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필로사미아 신시아 추출물은 자사 음료의 핵심 원료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제조 방식이 변경되었다는 안내가 적혀 있었습니다.

[소비자들의 필로사미아 신시아 추출물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그동안은 원물이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 가공해 사용해 왔으나, 최근부터는 원물 그대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변경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왜 작업복마다 꽃 모양 배지가 달린 걸까. 왜 사람들은 매일 같은 이름을 노래할까. 왜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는 걸까. 단순히 음료의 원료일 뿐이라면,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이상한 일은 그날 밤부터였습니다. 공장에서만 듣던 그 음악이 기숙사에서도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필로사미아신시아…’

잠들기 직전에도. 한밤중에 눈을 떴을 때도. 분명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도 그 이름만은 귓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가 시작됐습니다. 아침이 되자 작업자들은 어김없이 생산 라인 앞에 줄을 섰습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섰습니다.

‘필로사미아신시아필로사미아신시아필로사미아신시아…’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 그 노래만 들으면 가슴 한쪽이 답답해졌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모두가 동시에 허리를 숙였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고개를 숙였습니다.

무슨 의미인지는 끝내 알 수 없었습니다. 작업은 늘 하던 대로 이어졌습니다. 음료를 검수하고 상자에 담아 옮기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흘러오던 캔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G시 지역 한정판 에너지 드링크였습니다. 자주 보던 제품이었지만 디자인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원래는 없던 필로사미아 신시아 꽃이 캔 전면을 큼지막하게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무심코 캔을 집어 드는 순간, 옆에 있던 관리자가 제 손목을 붙잡았습니다.

“작업 중에는 제품을 만지시면 안 됩니다.”

차분한 말투였지만 손아귀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캔을 내려놓자,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음료 하나를 집어 들었을 뿐인데 반응은 지나치게 예민했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이상한 점은 계속 눈에 띄었습니다. 사람들은 식사하면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지만, 업무에 필요한 말만 짧게 주고받을 뿐이었습니다.

웃음소리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휴게실 벽 한편에는 꽃 모양 엠블럼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필로사미아 신시아에서 시작됩니다.]

어딘가에서 이미 본 적이 있는 문구였습니다.

왜 이 회사는 음료보다 꽃을 먼저 이야기하는 걸까. 그 의문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습니다. 그날 밤에도 음악은 어김없이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필로사미아신시아…’

처음에는 환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 이름은 점점 또렷해졌습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얼마나 지났는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며칠이었는지, 몇 주였는지조차 가물가물합니다.

분명한 건 그동안 단 한 번도 급여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월급이 언제 나오는지 궁금했습니다. 한두 번쯤은 물어볼까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됐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게 가장 이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입사 첫날 맡겼던 스마트폰이 떠올랐습니다. 퇴근 무렵 관리자를 찾아가 스마트폰을 돌려받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서랍을 열더니 제 스마트폰을 꺼내 건넸습니다. 너무 쉽게 돌려주는 모습에 오히려 당황했습니다.

저는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그대로 공장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누군가 불러 세울 줄 알았습니다. 뒤에서 제 이름을 부를 줄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저를 막지 않았습니다.

경비원도, 관리자도, 작업자들도. 모두 저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공장 정문을 지나 큰길에 나설 때까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뛰기 시작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계속 달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공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반년 전과 다를 것 없이 다시 길바닥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렇게 글로 옮겨 놓고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반년이라는 시간은 사라졌고, 손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김뭐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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