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슬립] 애매하게 젊은 희민의 슬픔
안녕하세요. 김희민입니다. 네 살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사하지 않고 살던 B 아파트 10x동 30x호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신세가 되었습니다.
저는 소위 캥거루족이라, 염치없이 이 나이가 되도록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제게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집을 매물로 내놓으셨더군요.
그렇게 절망에 휩싸인 채 터덜터덜 걷다가, 지쳐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한 학생이 마시던 음료 캔을 길바닥에 휙 버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교복을 보니 G고등학교 학생인 것 같았습니다.
생활복인가?
우리 때는 생활복이라는 게 없었는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버려진 캔을 보니 M사에서 출시한 G시 지역 한정판 에너지 드링크였습니다. 필로사미아 신시아 추출물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카페인과 단백질을 동시에 보충할 수 있다는 제품으로, 여명 707 광고라도 하듯 뉴스 전문 채널 YMCA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광고를 내보내던 터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귀한 걸 길바닥에 버리다니.
맛은 그저 그렇지만 고단백 영양식이라 건조된 원물을 해외직구해 먹고 있었는데, 살아 있는 상태는 실제로 처음 봤습니다. 꿈틀꿈틀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배가 고픈데 돈이 없어서 학생이 버리고 간 캔을 집어 들어 내용물을 마셨습니다. 확실히 건조된 것보다 풍미도 좋고 식감도 살아 있네요.
아, 하지만 저는 이런 식감을 싫어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돈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장기 백수로 살아왔는데, 앞으로가 막막하기만 합니다.
…
근데 나한테 부모가 있었나?
…
내 이름이 김희민이 맞긴 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