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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게에서 벌어진 일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입니다

분류: 수다, 글쓴이: 슬픈거북이, 15시간 전, 댓글13, 읽음: 159

음악이나 한 곡 먼저 들으시죠.

저한테는 오래전에 헤어진 여자친구가 생각나는 노래입니다.
게시판 글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그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양성애자였거든요.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것이 사귀는 데 특별히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양성애자가 뭐 특별한가요. 그냥 한 사람을 만나 사귀었고, 서로 맞지 않아 헤어졌습니다.

게이든 트랜스젠더든 저는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혀요.
그냥 사람입니다.

저는 누구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자신의 정체성을 근거로 타인의 생각을 교정할 특별한 권리를 얻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사람으로 대하면 됩니다.

그런데 최근 이곳에서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근거로 자신의 불편감과 해석에 특별한 우선권을 요구하는 일부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서 많이 불편해졌습니다.

“바꿔라.”
“교정해라.”
“그렇게 말하지 마라.”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어떤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표현 하나를 지적하는 것과, 그 표현을 한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 전체를 혐오로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 것과 성소수자가 하는 모든 주장과 해석에 동의하는 것 역시 전혀 다른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혐오’라는 말은 때때로 이렇게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으면 당신은 차별주의자다.”
“우리가 불쾌했다면 당신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사과하는 데서 끝내지 말고, 생각과 태도까지 교정하라.”

저는 그중에서도 ‘혐오’라는 표현이 가장 싫습니다.

제가 특히 무섭게 느끼는 말은 이것입니다.

“싫어하면 안 된다.”

‘혐오’라는 말에는 본래 어떤 대상을 몹시 싫어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뱀이나 개구리, 벌레를 싫어하는 감정에도 혐오라는 말을 씁니다.
물론 사람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배제 역시 혐오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같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싫어하는 감정과 한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부정하는 행위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두 의미를 일부러 섞어, 비판하기 어려운 강력한 방패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말하면 곧바로 혐오가 되고,
혐오라고 불리는 순간 차별이 되며, 차별이라는 판정이 내려지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말할 자격이 없는 가해자가 됩니다.

감정은 명령으로 없앨 수 없습니다.
무엇을 싫어하지 말라고 강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권리는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도 정체성을 이유로 모욕당하거나 배제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과 모든 주장과 모든 문화를 좋아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존중은 호감을 강요하는 말이 아닙니다.
함께 살아갈 권리를 인정하는 것과 서로를 좋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요즘 이 분위기가 무섭습니다.

성소수자가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과 ‘혐오’라는 말을 근거로 타인의 말과 생각을 판정하고 교정하려는 태도가 무섭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쓴 표현 하나, 행동 하나가 누군가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혐오가 되고, 가해가 되고, 사과와 반성만으로도 부족해 지속적인 자기검열과 교정을 요구받는 분위기가 두렵습니다.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타인의 말과 생각을 교정하려는 사람들은 항상 올바릅니까?
상처받은 사람은 언제나 옳고, 상처를 준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판단을 의심해야 합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은 생각보다 편향적입니다.
제가 브릿G에 처음 왔을 때 ‘극우 한남’ 같은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문제 삼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습니다.

어떤 집단을 향한 거친 표현은 혐오가 되고, 다른 집단을 향한 거친 표현은 공기처럼 지나갑니다.
어떤 불편감은 사회가 보호해야 할 상처가 되고, 다른 불편감은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투정이 됩니다.

저는 이런 선택적인 기준이 불편합니다.

저는 PC주의가 싫습니다.

성소수자를 싫어하거나 그들이 열등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권익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싫어하는 것은 특정 정체성과 상처를 근거로 타인에게 과도한 의무와 규정을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말을 바꾸라고 하고, 생각을 교정하라고 하고, 감정까지 통제하려 합니다.

언어를 바꾸어 사고를 바꾸려는 정치적 교정 운동.
유모차를 유아차로 바꾸는 등 그런 노골적인 방식이 많이 보입니다.

단순한 말다듬기가 아니라, 기존 표현에 잘못된 관념이 들어 있다고 판정하고 새 표현을 규범으로 세우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권장어에서 끝나지 않고, 기존 표현을 쓰는 사람의 의식까지 낡고 잘못된 것으로 취급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것이 숨 막힙니다.

오늘 더블킹님이 남긴 글을 보았습니다.
그 글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해를 불러올 만한 문장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깊이 공감한 지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미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인물의 설정과 관계를 무너뜨린 뒤, 어느 날 갑자기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바꾸는 방식에 대한 거부감입니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클레오파트라와 디즈니의 인종 변경 논란을 먼저 말해보고 싶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를 통치했지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케도니아계 그리스 혈통에 속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역사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작품에서 클레오파트라를 흑인으로 묘사해 큰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조선의 왕을 역사적 근거 없이 갑자기 동남아시아계 인물로 묘사한 뒤, 그것을 역사적 사실처럼 내세운다면 한국 사람들도 당황할 것입니다.

이 문제는 흑인 배우가 역사극에 출연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허구를 표방한 재해석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다큐멘터리라면 창작적 다양성보다 사실성이 먼저 요구됩니다.

디즈니의 실사판 인어공주.
아리엘은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인물입니다. 따라서 흑인 배우가 아리엘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역사 왜곡은 아닙니다.

다만 애니메이션을 통해 붉은 머리와 흰 피부를 가진 모습으로 수십 년 동안 각인된 캐릭터였기에, 기존 팬들이 외형의 급격한 변화에 이질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서로 다른 두 문제가 있습니다.
역사적 인물의 정체성을 사실과 다르게 묘사하는 문제와, 이미 확립된 가상 캐릭터의 설정을 새로운 작품에서 변경하는 문제입니다.

전자는 사실성의 문제이고, 후자는 원작의 연속성과 해석의 문제입니다.

이 둘을 무조건 차별이나 혐오의 문제로만 설명하면, 기존 설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감정은 처음부터 말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처리됩니다.

성적 지향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로 설정된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기존 작품에서 성적 지향이 명시되지 않았던 인물이 이후 동성 연애를 하는 것 역시, 그 관계가 충분한 서사 속에서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면 문제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쌓아온 관계와 성격, 기존 설정을 무시한 채 어느 날 갑자기 정체성만 부여한다면 독자는 그것을 서사가 아니라 제작자의 선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때 독자가 비판하는 것은 성소수자의 존재가 아니라 인물을 다루는 창작 방식일 수 있습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그것을 불편해하는 것은 혐오다”라고 말해버리면 작품에 대한 비평은 불가능해집니다.

문제는 성소수자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문제는 인물을 한 인간으로 쓰지 않고, 제작자가 전달하려는 올바른 메시지를 위한 표지판처럼 사용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들지 않고 기존 인물의 이름과 인지도만 빌리는 것.
서사를 쌓지 않고 정체성의 변경만으로 진보적인 작품이 되었다고 선언하는 것.

저는 그것을 다양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소수자 인물에게도 제대로 된 탄생과 관계와 서사를 허락하지 않는 게으른 창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PC주의를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면 됩니다.
처음부터 흑인인 영웅을 만들고, 처음부터 동성애자인 주인공을 만들고, 그 인물만의 역사와 성격과 관계를 충분히 쌓으면 됩니다.
그 인물이 매력적이고 이야기가 훌륭하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미 다른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랑해 온 인물과 이야기를 가져와야 합니까.

왜 기존의 설정을 바꾸고, 기존의 관계를 해체하고, 기존의 인물을 새로운 가치관을 전달하는 매개로 사용하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존의 것을 반드시 부수어야만 하는 걸까요.

“기존의 관념을 부수겠다.”
“당신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뒤집겠다.”
“우리를 올바르게 바라보도록 만들겠다.”

그런 의도가 작품보다 먼저 보이기 시작하면 등장인물은 더 이상 한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작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대신 말하는 도구로 보입니다.

그 변화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다시 질문받습니다.

“왜 불편하지?”
“성소수자가 나오는 것이 싫은가?”
“기존의 편견을 버리지 못한 것 아닌가?”

하지만 기존 설정을 존중해 달라는 요구와 성소수자를 부정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저는 성소수자인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싫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서사와 개성을 가진 인물이라면 오히려 반갑습니다.

제가 싫은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사랑하고 있던 이야기를 빌려 그들의 관념을 교정하려는 방식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과, 기존의 세계를 빼앗아 고쳐 쓰는 것은 다릅니다.
다양성이 필요하다면 다양성을 가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면 됩니다.
왜 반드시 기존의 인물과 설정을 바꾸어야만 다양성이 완성되는 것처럼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

문득 오래전에 만났던 여자친구와 이 문제에 관해 한 번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은 양성애자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논쟁이 더욱 낯설게 느껴집니다.
한때 저는 양성애자인 사람과 아무런 문제 없이 연애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게시판에 표현 하나를 쓰는 것조차 누군가의 정체성을 침해하는 일이 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별문제가 아니었던 그 모든 것이, 어느 날부터 왜 이렇게 거대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사람과 대화한다고 해서 제 말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적어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는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제가 아쉬워하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워딩하나 글자하나 토씨 하나에도 신고하시는 겁니까?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왤까요?

세상이 이대로 가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당분간 자게에서 활동하는 건 하지 말아야 할 거 같습니다.
오늘 이후로는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하겠습니다.

슬픈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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