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바운드 하트 리뷰
*다른 곳에 쓴 걸 옮긴 거라 말투가 다른 점 양해 바랍니다
지고의 쾌락을 위해서
잊지 못할 그 날의 밤을 위해서
그저 함께 있기 위했다가
이젠 살아남기 위해서
한 줄 요약
치정극 아래에 음산히 깔린 사악의 경계
작년 12월에 펀딩으로 받은 헬바운드 하트다. 작년 펀딩을 왜 이제 읽냐고? 사실 이 정도면 꽤 빨리 읽은 축에 속한다…… 실제로 읽는 시간도 상당히 빠르게 앉은 자리에서 완독했다. 200페이지가 좀 넘는데, 판형이 왼쪽 정렬에 글자 포인트도 좀 크고 넉넉해서(?) 잘만 조절하면 150쪽까지도 압축 가능할 듯…… 그렇게 긴 이야기는 아니었다.
줄거리를 살짝 설명하자면,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세노바이트(이계의 존재들)를 불러오는 퍼즐인 ‘르마샹의 상자’를 둘러싼 하나의 치정극이다. 정확히는 상자가 주요한 아이템으로 등장하는 건 아니다. 이 일의 원흉이기도 하고, 사건 해결의 단초로서도 작용하지만, 서사 자체는 한 부부의 불화로 인한 치정극이기 때문이다.
작중에 나오는 인물은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쾌락과 향락에 젖어 산 끝에 르마샹의 상자마저 열어 쾌락을 추구하려던 프랭크, 그의 동생이자 아주 건실하게 살며 예쁜 아내를 열렬한 구애로 얻은 로리, 로리의 아내이지만 결혼식 전날 밤 프랭크와의 하룻밤을 잊지 못해 그 날을 그리워하던 줄리아, 마지막으로 로리를 짝사랑하지만 결혼한 그의 곁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려던 커스티.
20세기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로리-줄리아의 관계가 너무나도 기시감이 들어서 굉장히 당혹스럽긴 했다. 어떻게 보면 불륜 스토리의 보편적인 관계라고 볼 수 있으려나? 그런데 문제는 이 불륜이 단순한 치정극이 아니라, 공포와 금기를 넘나들어 현실과 이계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금기를 적극적으로 위반하고 넘나드는 프랭크와 줄리아는 공통점이 있다. 자기 욕망에 휘둘려서 자신이 무엇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프랭크는 지고의 쾌락을 위해 파열의 교단 소속 세노바이트들을 불러내는 르마샹의 상자를 열었고, 줄리아는 프랭크를 자기 뜻대로 길들이기 위해 남자들을 꾀어내 살인을 행한다.
커스티 역시 르마샹의 상자를 열어버리는 금기를 범했으나, 프랭크처럼 온전히 다 열지 않았다. 또한 커스티는 프랭크와 달리 자기 욕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았고, 지혜를 끌어다 써서 세노바이트로부터 협상을 이뤄낸다.
로리는 뭐…… 지혜롭지도 않고, 눈치는 있었으나 지나치게 우둔했던 자의 말로랄까. 불쌍하긴 한데 사람이 너무 찌질하게 나와서 정이 안 갔다. 처음부터 로리가 커스티와 맺어졌으면 모를까, 분에 넘치는 줄리아를 아내로 들인 시점에서 로리의 불행과 파멸은 약조된 게 아니었을지.
작품은 결국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다. 로리는 프랭크와 줄리아의 욕망에 희생당했고, 프랭크와 줄리아는 자기 욕망만 좇던 나머지 커스티에 의해 파멸하고 만다.(사실 커스티가 파멸시킨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파멸시켰다) 커스티는 로리를 위해 움직였으나, 결국 자기 목숨만을 간신히 부지하고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이 작품이 가지는 매력은 프랭크-줄리아의 불륜 관계나 로리의 불쌍하고 찌질한 남편 이력을 감상하는 것이나, 혹은 커스티의 놀라운 생존기(?)를 보는 것에 있지 않다. 물론 어느 정도는 도파민 터지는 매력이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본 작품이 호러로서 작동하게 하는 ‘파열의 교단’과 ‘세노바이트’, 그리고 ‘르마샹의 상자’라는 설정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파열의 교단과 세노바이트들이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는 작중에서 다루지 않는다. 네 명의 세노바이트가 나올 뿐이고, 그들의 외관이 다뤄지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쾌락’을 선사했는지 잠깐 다룰 뿐이다. 르마샹의 상자 역시 그것이 작동하는 기믹과 그것을 전달해준 ‘키르허’라는 독일인이 부수적으로 다뤄질 뿐, 구체적인 설정은 작중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들은 분명히 소설 내 지배적인 장치로서 존재한다. 프랭크가 1장에서 르마샹의 상자를 연 것을 시작으로, 프랭크가 머물렀던 곳에 로리-줄리아 부부가 이사 오게 되고, 음산한 방에서 프랭크와 줄리아가 재회하게 되며 파국으로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나아간다.
개인적으로 1장의 현실과 이계의 경계가 무너지는 장면, 음산한 방에서 줄리아가 프랭크를 발견하던 장면, 커스티가 르마샹의 상자를 여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의 모든 배경 묘사가 취향이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마치 자연스럽다는 듯 인식을 틀어버리는 것이 매력적으로 읽혔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장면을 다시 읽고 다시 상상해야 했었지만, 오히려 그런 이질적인 장면의 구성이 호러로서의 분위기와 배경을 더욱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결말 역시 어설프게 해피엔딩으로 끝내거나, 신파로 흘러가거나 그러지 않은 점 역시 좋은 점으로 꼽는다. 일어난 파국을 조용히 닫는 것 역시 여운이 남았다. 조연으로 등장한 커스티가 최후의 생존자가 되는 것도 아이러니컬했고.
재미있게 읽었다. 순식간에 완독할 정도의 가독성과 재미가 있었다. 그 이전에 분량이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도 있겠지만. 종이책의 메리트는 까리한 표지와 새빨간 책 디자인 외엔 없는 듯……(왼쪽 정렬과 큼지막한 판형이 은근히 거슬리면 거슬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