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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총을 사다

분류: 수다, 글쓴이: 조딘, 17시간 전, 댓글6, 읽음: 58

한 수학자가 있었습니다.

무한의 농도를 측정하는 자였지요.

무한이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정신이 미쳐버렸습니다.

정신이 나가면 요양을 하고

다시 괜찮아지면 무한의 문제로 돌아가고

그러다 다시 또 정신이 나가곤 했습니다.

 

그가 정신이 나갈 때마다 했던 일은

바로 셰익스피어를 지우는 일이었습니다.

말 그대로예요, 셰익스피어의 존재를 지우는 거죠.

그는 철학자 베이컨을 숭배했습니다.

그 수학자에게 베이컨은 최고의 철학자며, 과학자며, 예술가며, 또한 시인이었지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너무나 훌륭했고

너무나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이는 베이컨 밖에 없다고 믿었으므로

수학자는 무척이나 자명한 논리적 귀결로, 셰익스피어가 베이컨이라고 믿어버렸습니다.

 

심지어 무한을 다루기로 했던 강의에서조차

무한은 입에 담지도 않은 채 셰익스피어-베이컨 가설을 증명하려 하는 통에

관계자들이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전해집니다.

미친 수학자는 게오르그 칸토어. 셰익스피어-베이컨 가설은 사실 그렇게 간단한 얘기가 아니어서, 그 진위는 http://en.wikipedia.org/wiki/Baconian_theory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왜 하필 셰익스피어였을까요.

역설적이게도 베이컨이 아닌 셰익스피어야말로

우리가 아는 가장 뛰어난 예술가였기 때문일 겁니다.

셰익스피어는 지나치게 뛰어난 까닭에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되고 말았던 거예요.

 

 

 

셰익스피어는 인터넷 주문으로 기관총을 샀어

셰익스피어는 총을 사서 다 쓸어버리려고 했어

셰익스피어가 자주 찾던 창녀의 이름은 수지

셰익스피어가 산 총의 이름은 우지

 

모든게 너무 우스워져서

피츠버그를 떠나 햄릿을 쓰기 시작했어

한 자, 한 자, 햄릿을 써나가다가

셰익스피어는 점점 열이 받기 시작했어

그래서 그는 기관총을 샀지

총을 사서 다 쓸어버리려고 말야

 

셰익스피어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샀어

그는 약에 취해 클럽에 들어갔어

레드제플린의 곡은 너무 느려서

셰익스피어는 직접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를 샀지

그는 검은 옷을 차려 입고, 마샬 스택 앰프를 켜고

그리고 그의 등 뒤로 올라타려는 비비 원숭이와 춤을 췄어

사랑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는 이젠 지긋지긋해

셰익스피어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를 샀어

 

셰익스피어는 멍청한 대학 영어 수업에서

비극을 분석하는 검은 뿔테 안경들이 싫었어

셰익스피어는 문학이 지겨웠어, 글자라면 꼴도 보기 싫을 지경이었어

그는 차라리 훨씬 더 야하고 재밌는 비디오를 보기 시작했어

 

셰익스피어는 애너하임에 술집을 차렸고

데낄라에 취해서 스프 숟가락으로 머릴 빗었어

셰익스피어는 애너하임에 술집을 차렸지

거기서 잡지를 팔고, 담배를 씹었어

그는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잠은 차 안에서 잤어

셰익스피어는 지겨웠던 거야

그래서 기관총을 샀지

셰익스피어는 기타를 사서 연주하기 시작했어

 

shakespeare’s got a gun / dan bern

(너무 터무니없어서 정말 좋아하는 가사

 

 

당신은 타임머신을 타고 16세기 영국으로 갑니다.

시기가 시기인만큼, 도착한 곳에서 즉각적으로 셰익스피어를 떠올리게 됐지요.

그래,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대문호 셰익스피어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언어의 장벽은 무시한다고 칩시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죠.

아무도 셰익스피어를 모르는 거예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커녕 그 존재조차도.

당신은 생각합니다, 아마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집필하기 직전인가보다.

그런데 문득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정말로 악의 없는 순수한 장난이었을 수도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심정적으로다가 당신을 믿습니다.

여하간에, 당신은 스스로 셰익스피어의 첫 번째 작품을 출판해버린 겁니다.

물론 일말의 양심은 남아있어서 필명은 ‘셰익스피어’로 하고요.

일은 그렇게 된 거예요.

미래의 당신이 알고 있던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과거로 간 당신 스스로가 집필한 작품이었던 겁니다.

부트스트랩 패러독스.

범인은 당신 혼자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비슷한 장난들이 연이어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여하간에

셰익스피어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했더라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돼버린 거죠.

지나치게 뛰어난 까닭에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되고 말았던 거예요.

 

아, 그렇지만

이 세계엔 타임머신이 없고,

있더라도 당신에겐 없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리 없고,

일어났더라도 확인할 방법이 없겠지요.

제가 떠든 얘기는 그저 한 과학자의 사고실험일 뿐입니다.

시간 여행이 가능해지면 어떠한 역설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개중 가장 매혹적인 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고 실험을 제안한 과학자는 데이빗 도이치. 미친 과학자의 전형처럼 생긴 그의 얼굴은 https://en.wikipedia.org/wiki/David_Deutsch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운명이, 타인의 시선이 나를 경멸하여

나는 홀로, 버림받은 신세를 한탄하며

하릴없는 울음으로 귀머거리 하늘을 괴롭히고

처지를 절감하며 스스로를 저주하니

희망이 많기로는 이 사람,

용모가 수려하기로는 저 사람,

친구가 많기로는 그 사람과 같기를,

이 사람의 재주와,

저 사람의 권세를 부러워하며

내 가진 것에는 만족을 느끼지 못할 때

이와 같은 생각들로 나 자신을 거의 경멸하다가도

 

문득 그대를 생각하면, 나는

첫 새벽 적막한 대지로부터 날아오른 종달새처럼

천국의 문턱에서 노래 부르니

그대의 사랑을 생각하면 곧 부귀에 넘쳐

나의 운명을 제왕과도 바꾸지 아니 하노라

 

sonnet 29 / rufus wainwright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싯귀인가.

셰익스피어를 너무 사랑해서 주기적으로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자의

이번 달 할당량이었습니다.

(온통 셰익스피어 지우기 얘기 뿐이지만

조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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