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인어는 어떻게 말할까?

분류: 내글홍보, 글쓴이: 비티, 5시간 전, 읽음: 19

인간은, 인간이기에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당연지사를 아포리즘으로 만든 말장난 따위로 보일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우리보다 후두가 살짝 더 높고, 성대가 살짝 더 길었습니다. 특히 비강이 우리에 비해 크고 넓었습니다. 동시에 혀의 근육조직와 귀가 충분히 발달해있기 때문에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듣고 분별하며 따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발성기관의 모델에 따라 네안데르탈인이 [e], [i]같은 모음을 발음하지 못하였을 것이란 논의와 현생인류의 언어에 분포하는 모음을 발음하는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란 논의가 존재하며, 치열을 바탕으로 [f], [v]가 잘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안된 바 있습니다. 저는 네안데르탈인의 비강을 근거로 이들이 현대인보다 콧소리가 풍부한 언어를 사용하였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고인류의 언어가 어떤 형태를 하고 있었는지는 크게 주목받는 분야가 아니거니와 실제로 그렇게 연구할만한 주제도 아니기 때문에 공통된 합의보단 여러 제안이 공존하는 상황이지만 이들의 언어가 현생 인류의 언어와 어떠한 방식으로든 달랐을 것이란 사실에는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현생 인류조차 신체 구조나 기후에 의해 언어의 발전 양상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보고가 존재하는 만큼 말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언어는 인간의 생리적, 환경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차이가 더욱 눈에 띄는 고인류, 인간 외 동물의 언어는 인간이 흔히 아는 언어와는 더욱 차이가 클 것입니다. 앵무새처럼 소리 자체는 유사하지만 물리적인 구조는 다른 경우도 있을테죠.

그렇다면 인어가 생물학적으로 개연성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면, 이들과의 소통법은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작중 언급되는 문화진화론이라는 용어로 알 수 있듯, <인어학 개론>의 핵심 아이디어는 진화가 신체 이상의 단위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번식을 위해 기술과 문화 같은 외부 세계를 일종의 표현형으로서 유전시킨다는 발상 자체는 리처드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과도 맞닿아있는 부분입니다.(실제로 제가 동의하는 몇 안되는 발상이기도 합니다.)

<인어학 개론>은 만약 인간이 인어의 형태로 진화한다면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하는 의문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이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선 인간과 옷의 관계에 대해 해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문명이 멸종할 정도의 대홍수라는 거대한 생물학적 사건과 직면한 인류에게 ‘옷’이 우리가 생각하는 ‘옷’과 같을 리는 없었습니다. 특히 늘 잠수를 하며 지내야하는 신인류에게 옷은 확장된 피부였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현대인도 옷에 땀을 흡수하거나 열을 차단하는 등의 기능을 기대하지만 일상적으로 방수가 되고 수중 열손실을 우려하진 않듯 말이죠. 아직 현생인류적인 옷을 기억하는 신인류에게 옷은 더욱 극적인 변화를 겪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수중 의복과 육상 의복을 구분하였으며(잠수복이 일상복인 그런 세상입니다), 수중 의복을 다루는 문화가 발생합니다.

의복은 열과 해수, 여러 파편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도구에서 수중 활동을 돕는 도구로 확장됩니다. 동시에 인간은 진화하고, 문화가 잊혀지면서 구인류의 잠수복을 재활용하던 문화는 점차 해양 포유류의 가죽을 재료로 새롭게 생산되기 시작합니다.

옷은 여기서 발전을 멈춥니다. 정확히는 더 이상의 극적인 발전은 없었습니다. 점진적인 변화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인간이 마치 광어나 가자미처럼 몸이 점차 납작해지는 것을 상상하였습니다. 인간은 해부학적으로 기도와 식도가 교차되어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간은 납작해지면서 손과 발이 퇴화합니다. 나중에 가서야 다시 유선형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부속지가 많이 유실되어 지느러미를 가진 인어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인간은 고래처럼 두꺼운 지방층을 얻게 되었을 것을 상상하였고, 환경도 점차 변화하면서 굳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대신 자유로워진 수중 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냥능력이 발전하였고, 이는 구인류부터 신인류, 나아가 인어가 모두 동일한 재료의 창을 사용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구인류의 문명으로부터 점차 멀어지던 인류는 인어가 되어서는 다시 활발하게 접촉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에 영향을 받아 처음부터 집을 짓게 됩니다. 허나 이렇게 짓게 된 집은 육지가 아니라 연안과 수중 동굴 속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불이 재발견되죠. 이를 토대로 크게 육지와 강, 바다로 나아가게된 인류는 다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인어가 어떻게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소리는 물 속에서 더 잘 들립니다. 소리는 매질이 단단할 수록 더 잘 퍼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몇가지 이유에서 <인어학 개론>의 인어는 음성 언어를 발전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첫번째는 호흡기관의 구조 때문이고, 두번째는 발성기관의 구조 때문이며, 세번째는 인간이 물 속에서 능숙하게 소리를 낼 상황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식도와 기도가 교차하기 때문에 입과 코를 막지 않으면 물이 기도를 막습니다. 또한 인간의 성대는 소리를 울려서 소리를 내나, 소리는 매질이 바뀌면 큰 손실이 발생합니다. 저는 인간이 물 속에서 말하기 위해선 호흡기관과 발성기관이 분리되어야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분리된다한들 입과 목 내부의 조직이 해수 등과 접촉하면 이미 분화된 조직이 다른 조직으로 변하는 화생metaplasia 현상과 함께 쉽게 암에 걸릴 것이라 생각하였죠. 담배 연기에 닿는 기관지와 폐의 조직이 화생을 일으켜 암 확률이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저는 피부처럼 변한 기도를 떠올렸습니다.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죠.

여전히 인간의 언어 능력을 지닌 인어는 수어Sign language를 사용할 것이라 가정하였습니다. 잠수부들이 수신호를 사용하듯 말이죠. 때문에 같은 시기, 인어는 수중 시야가 발달하는 양상을 띕니다. 이 또한 빠르거나 급하게 수영할 때엔 소통이 불가능해졌지만, 생각해보면 사람도 달리는 동안은 의사소통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습니다. 이런 언어는 한순간의 발생이 아니기에 인어는 구인류 시절의 유산을 구전이 아니라 수전手傳하게 됩니다.

구전이 수천년의 지식을 간직하기도 하듯, 인어는 수전을 통해 수만년, 수십만년, 수백만년 전의 모습을 전하였습니다. 자세히 언급되진 않았지만 진화 과정마저 기억되고 있죠. 이것은 인어 신앙의 근거가 됩니다. 대홍수가 일어나기 이전의 문명과 두 발로 걸어다니던 시절의 기억이 바다 속 경험과 결합한 것입니다.

티리신 신앙의 티리신Tirisin이 무슨 뜻이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하누만Hanuman은 폴리네시아 문화가 기층문화로서 보존되었다는 설정입니다. 하와이어로 숨-인간Hanu-manu란 뜻의 단어와 어원을 공유합니다. 아마 티리신도 티베트 지역의 언어가 보존되었다는 설정이었겠습니다만 기억은 나지 않네요.

인어신 알식키는 육상인류가 인어의 수어를 음성 언어로 번역한 것이며, 인두시만은 인더스의 사람을 뜻하는 육상인류의 언어를 인어가 차용한 결과물입니다. Indus-man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호모 에우로파가 스스로를 칭하던 인두시와 하누만의 이 결합한 것이죠. 한국 수어와 한국어가 서로 차용어를 주고 받는 사례를 바탕으로 구상한 단어였습니다.

수어와 음성언어는 서로 어휘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어 화자가 Christmas를 크리스마스라고 듣고 차용하듯, 수어 화자도 크리스마스란 단어를 차용할 수 있습니다. [12/25]을 뜻하는 단어와 [축하]를 뜻하는 단어가 결합할 수도 있지만, 크리스마스의 [C]로 크리스마스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어가 영어의 소리를 빌리기도, 뜻을 빌리기도 하듯 말입니다. 언급되지 않았지만 <인어학 개론>의 세계에서 인어와 인간은 서로 손과 말을 섞어가며 대화합니다. 이 언어는 어느 한 언어에 기반하여 발달한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던 인어와 인간이 그저 대화를 위해 발생시킨 전혀 새로운 언어입니다. 마치 무역지처럼 여러 언어집단의 접촉이 활발한 지역에서 의사소통을 위한 임시 소통수단인 피진Pidgn이 발생하고, 이것을 배운 아이가 크레올Creole이라는 새 언어를 구사하게 되듯 말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간단한 의사 표현을 위한 수신호의 집합이던 인어 피진이 새로운 문법과 단어를 지닌 언어가 되었습니다. 오직 대화를 하고싶다는 의지만을 위해서 말이죠.

아주 긴 세월이 지나, 다리라는 것을 가진 이들이 신화소가 된 세상의 인어가 인간을 다시 만났을 때, 이들은 그저 수전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인간이 자신의 친척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인간은 신비로운 것이었기에 인어는 필사적으로 소통을 시도하였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와 홍수에 대해 거대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던 인간이 수천만년만에 고산지대에서 해안으로 내려왔을 때, 이들은 날개 달린 인간의 형태로 기억된 인어와 만나게 됩니다. 때문에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서까지 대화를 하려하였습니다.

허나 접촉이 늘수록 충돌과 차별도 늘어납니다. 인어와 인간은 가까워졌다 멀어지길 반복하였습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먼 조상일지도 모른다는 옛 신화는 시대착오적인 비웃음거리가 되어죠. 그리고 진화학을 되찾았습니다. 인간과 인류는 본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도구와 문화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진화의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더 긴 세월이 흘러, 우리 세계에서 성소수자나 신경다양인 등의 인식이 재조명되듯, <인어학 개론> 세계에서도 ‘인어가 되고 싶어하는 인간’과 ‘인간이 되고싶어하는 인어’의 존재가 가시화되었습니다.

두 다리 대신 지느러미가 달린 삶을 동경하던 이들이 어느덧 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땅 박차기보다는 바다를 헤엄치고 싶을 것이라,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문장이 트랜스인어들을 위한 헌사인 것은 아닙니다. 고인류가 공룡을 동경했듯, 인어를 동경하는 인간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학자가 되었습니다. 한때 괴짜라 불리던 이들이 학계에 발을 딛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직 트랜스인어나 서로의 형태 그 자체를 그저 존재 자체로 긍정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모아이를 만들던 이들은 어느덧 모아이를 거부하고 날개 달린 인간을 동경해왔습니다. <인어학 개론>은 그 자체로 이스터섬의 역사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리타향에서 귀향해온 먼 가족과 상봉하고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인어학자라 부릅니다. <인어학 개론>은 인어학자가 인어학자를 키우는 시대의 효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지느러미를 동경해온 자들이다. 그러니, 인어학이라는 지느러미로, 인류는 다시 인어와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주석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인어학 개론>의 스토리입니다.

이규락 작가님의 <포스트 보르헤스류 문학이 가지지 못한 형식미>는 텍스트 속에 숨겨진 세상의 따뜻함, 요컨대 스토리를 읽어주셨습니다.

 

JIMOO 작가님은 <현실의 경계를 뛰어넘는 판타지 소설>을 렌즈로 지느러미를 동경한 자들의 시선을 엿보아주셨습니다.

 

결코 길지도, 쉽지도 않은 이 실험적 텍스트에, 인간의 입장에서 서사를 부여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인어학 개론>이 보다 풍성하다고 저는 자부합니다.

인어 신앙에 대해 조명해보고자하는 시도는 이러저러 사정에 의해 좌초되었지만, 결코 아쉽지는 않은 까닭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어학 개론>은 논문이나 학술서를 패러디하기 위해 적은 것이 아닙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를 미리 가져온 것입니다. 허구가 아닌, 유예된 현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비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