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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클립스, 검은 태양 / 내가 쓴 소설 내가 코멘터리

분류: 내글홍보, 글쓴이: 박규동, 18시간 전, 읽음: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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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인 미대생과 금수저 미대생의 아슬아슬한 우정을 그린 이야기.

예술을 둘러싼 소설이지만 포커스는 정서적 결핍과 돈에 맞췄다.

편지의 형식을 빌렸기에 현학적이거나 화려한 미사여구는 쓰지 않으려 했다.

2024년 2월에 출간했던 ‘대마왕’이 그랬듯이, 정말 실제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도록 최대한 리얼하게 적어갔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친구인 데이비드를 동경한다. 동경에는 열등감이라는 대가가 따른다.

그런 열등감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데이비드라는 인간을 매일 머릿속에 그리고 살았다.

내가 가난한 미대생이라면, 데이비드를 떠올릴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열등감은 쉽게 분노로 이어진다. 그 분노를 문장으로 정제하기 위해 영감이 필요했다.

최대한 문학이나 미술 같은 예술 하면 떠오르는 분야에서 영감을 얻는 것을 지양했다.

뻔한 이야기가 나올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의외로 프로레슬링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처음 반 고흐와 폴 고갱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해보려는 의도와 정말 먼 곳에서 영감을 얻었으니 나조차도 신선하다 느꼈다.

레슬매니아 19, 숀 마이클스 VS 크리스 제리코.

크리스 제리코는 숀 마이클스를 우상으로 우러러보며 숀과 같은 레슬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는다.

숀의 머리 스타일, 숀의 기술들을 사용하며 롤 모델의 자취를 따라가던 그의 뒤틀린 열등감.

그가 제2의 숀 마이클스가 아닌 첫 번째 크리스 제리코가 되겠다는 대사에서 머릿속에 전구가 켜졌다.

근육질 남자들의 이야기를 병약한 화가들의 이야기로 옮겨보면 어떨까?

2011년 CM punk가 생방송 중 자신의 불만을 폭로한 전설적인 프로모 ‘파이프밤’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매일매일 지난 6년간 뼈가 빠지도록 굴러 내가 최고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럼에도 당장 메인이벤트는 드웨인(더락)의 것이라는 게 역겹다.’

문학과 미술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영감을 얻으려 했으니, 그 원천은 프로레슬링뿐만이 아니었다.

두 번째 영감의 소스는 힙합이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에미넴. 이천 년대 초반의 에미넴, 슬림 셰이디를 좋아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에미넴에 관해서는 다들 상반된 평가를 내놓는다.

그럼에도 슬림 셰이디가 에미넴보다 위대했다는 말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팬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MGK와 에미넴의 디스전에서 공감이 되는 가사가 한 줄 있었다.

‘I’m sick of you bein’ rich and you still mad, let’s talk about it’

MGK는 ‘Rap devil’에서 엄청난 부를 이루고도 마치 1집 때의 분노를 흉내 내려는 듯한 에미넴의 행보를 비판했다.

다들 디스전에서 에미넴의 승리를 말하지만, 나는 MGK의 말에 더 공감했다.

심지어 내가 에미넴의 팬이었음에도.

사람들은 왜 슬림 셰이디(2000)는 좋아하지만, 에미넴(2020)은 좋아하지 않을까?

1집과 2집 시절 에미넴의 가사들은 다음과 같았다.

‘this song is dedicated to all the happy people


All the happy people who have real nice lives

And have no idea what it’s like to be broke as fuck’

가난하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모르는 행복한 사람들에게 바친다고 시작하는 eminem의 곡 ‘rock bottom’.

사람들은 에미넴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기에 그를 좋아했다.

오늘 TV를 틀어보면 뉴스는커녕 예능 TV쇼 하나도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지 않는다.

그러나 슬림 셰이디는 매일매일 땀 흘리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진심을 이야기했기에 명반이 나온 거다.

나도 그런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했다.

하루에 40명이 목숨을 끊는다. 그렇다면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를 하는 사람은 몇이나 되고 목숨을 끊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TV를 틀어도 이미 떠나간 40명이나 그들을 따라갈 내일의 40명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나는 기승전결이나 문장의 기교보다 고통의 표현에 집중했다.

이 소설을 읽을 마음이 없더라도, 지나가는 문장 하나라도 보았을 때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한 문장을 읽었을 때, TV의 호화로운 삶이 아닌 ‘본인’이 겪고 느끼는 매일의 고통이 담겨 있는 소설.

나는 작가들이 독자들에게 자신과 같은 사상이나 믿음을 갖길 원하며 쓰는 글의 팬은 아니다.

남들이 모두 내가 믿는 정의나 나의 인생관을 공유해 줄 거란 믿음은 허상에 불과하다.

단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10만 자를 쓴다면, 그건 얼마나 낭비인가. 메시지라는 단어는 3글자에 불과한데.

나는 창작이라는 것이 전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는 단순한 과정이길 바란다.

그렇기에 어떤 사명감이나 내 말이나 내 감정이 옳다는 생각은 전혀 갖고 쓰지 않는다.

이클립스라는 소설은 어떤 조언도, 프로파간다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이 있으면서도, 매일을 개같이 구르며 살아야 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그 기분을 적어 내린 소설이다.

소설에서 사용되는 예술, 미술, 그림들은 모두 고통이라는 소리를 연주하는 악기로 사용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클립스조차 결국 ‘이야기’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클립스는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뉴스도 아니다.

현실과 이클립스라는 소설이 얼마나 닮았는지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독자들이 읽으며 밑줄을 치고 싶은 문장들이 몇 개 담겨 있을 것이다.

누구 한 명이라도 이클립스를 읽고,

내가 에미넴의 rock bottom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겪을 수 있다면,  이 소설을 세상으로 내보내야 했다.

브릿G에 연재하며 이클립스의 회차들을 읽을 때 ‘헉 너무 슬픈 거 아니야’ 하고 놀라기도 한다.

뭐 어쩔 수 없다. 현실의 감정을 말하기로 한 작품이고, 현실은 슬프니까.

박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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