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질서의 끝 – 1부

분류: 수다, 글쓴이: Izedokia, 4시간 전, 댓글1, 읽음: 32


 

 

질서의 끝

 

 


 

 

※ 1월에 시작된 기획을 급조한 것이라 1부와 2부의 차이가 큽니다. 1부는 본래 1~2월에 게시했어야 할 내용으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또 한 해가 지났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새해가 왔다는 느낌을 잘 받지 못하겠다. 필자에게 있어 신년이 가지는 의미는 기껏해야 연말정산을 하고, 평소 즐기지도 않던 일출을 일부러 보러 가는 정도일 것이다. 이번에는 햇빛이 구름에 반사될 때 절묘한 분광을 일으키며 국소적인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옛날이었다면 조금은 상서롭게 생각했을지도 모르나, 요즘은 그저 화려한 종말의 전조가 아니기를 바라게만 된다. 필자가 일출을 본 요 몇 년간, 사람들의 탄성과 함께 차올랐던 희망은 금방 바닥나기 일쑤였고, 여명이 오기 전 춥고 어두운 시기만이 인상에 남았기 때문이다.

무언가 도래했다는 감각을 느끼기 힘든 것도 당연할 것이다. 현대인에게 있어 새해의 시작은 그저 시스템의 일주一周만을 의미하니까. 그리고 세상에는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들이 훨씬 많지 않던가. 물질과 우주는 언제나 같은 법칙 아래 존재했고,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아둔함 또한 고금을 통틀어 변한 적이 없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극복할 수 없는 한계로 남았고, 우리는 그 저주를 짊어진 채 오늘을 살고 있다. 지혜의 명료함으로 세상을 밝혀도, 영장의 그림자는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할 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도 변한 게 거의 없는 것 같다. 세상의 여러 화두 앞에 필자는 여전히 총체적으로 무능하다. 사회, 정치, 경제, 법률, 역사 등 무엇을 논하더라도 항상 백지에서 시작한다. 시사 평론을 빙자한 잡글을 쓴지도 좀 되었고, 가끔은 어찌저찌 다 쓰고야 말았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성장했다는 감각만은 아직 느껴보지 못했다. 그저 글을 쓰는 매 순간이 도전이라고만 느낀다. 세상 돌아가는 방식은 참 이상하고, 필자는 그저 한 마리 어리석은 짐승에 불과하다.

원자력 마을, 제세동기, 버클리 패킷 필터, 듀프로세스…… 참 많은 소재가 필자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필자가 이들 잡글을 완성된 형태로 게시할 수 있었던 것은, 미숙한 아이를 독려하듯 다그치지 않고 그간의 미진한 글을 응원해 준 여러분 덕분이다. 독자께서 용기와 행운을 베풀지 않고서야, 필자 스스로 문필가를 자처하고 세상의 어지러움을 바로 마주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만은, 적어도 이번 한 번만은 솔직하게 고백해야겠다. 필자는 올해 처음으로, 그것도 난데없이 던져진 미증유의 사태를 보고, 감히 무어라 적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1. 석유

 

2026년 1월 3일, 미군은 수도 카라카스를 포함한 베네수엘라 주요 거점을 공격하고, 특수작전부대를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생포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꿈같은 이 선언은, 강습상륙함 USS Iwo Jima에 이송된 마두로의 사진이 트럼프의 소셜 미디어에 게시되면서 완전한 사실이 되었다. 온두라스 양지의 마약왕을 사면하는 “관대함”을 보인 트럼프가, 이번에는 허구의 마약 밀매 조직 ‘태양의 카르텔Cártel de los Soles’을 뿌리 뽑겠다며 베네수엘라를 타격한 것이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소위 “민주주의 배달”에 이골이 나 있던 자칭 세계의 경찰이, 공화정을 표방하는 주권 국가의 영토를 타격하고, 명시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타국 국가수반을 생포하다니? 볼테르의 삼단 부정법을 쓰고 싶어지는 대목이지만, 어이를 잃을 대목은 이게 끝이 아니다. 트럼프는 작전이 시작되기 전 이를 의회에 통고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군사 작전이 아닌 마약 사범 ‘체포 작전’으로 이번 공격을 정의하고 있다. 헌법과 듀프로세스의 파괴자였던 그는 이제 국제법마저 위반하며 삼관왕에 오르게 되었다.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트럼프의 전횡은 오직 그의 “양심”만이 그 끝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조금 뜬금없는 얘기부터 하겠다. 기억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2023년에 〈청기사와 백장미〉라는 잡글에서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스탠더드 오일의 자식들은 가이아나 유전 사업권을 공격적으로 매수하며 탄소중립의 퇴행을 알렸고,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의 영유권 분쟁은 남이 던진 성냥불에 불탄 꼴이 되었다.」

 

베네수엘라 공습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필자는 이 당시에 놓쳤던 무언가가 부메랑이 되어 뒤통수에 꽂힌 느낌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때만 하더라도 남미를 바라보는 미국 보수주의자의 시선은 소재에 있어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미국을 바라보는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의 온도 차도 자명하게만 느껴졌고, 마두로는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독재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두 국가 간의 영토분쟁도 지상적인 이권 다툼이고, 그 사이에 엑슨모빌과 같은 석유회사의 빨대가 샌드위치처럼 포개진 상태라고 안일하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사건이 벌어지고 나니, 필자는 이 표현을 너무도 경솔하게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아나의 유전은 현재 엑슨모빌, 쉐브론,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등이 지분을 나누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미국계 기업의 비중이 높고, 외교에서도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에 반해, 베네수엘라는 2000년대에 합작 투자를 거절한 엑슨모빌 시설을 압류한 바 있고, 이후로는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중국해양석유총공사와의 협력를 개시하며 대미 외교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양국의 유전은 그 특성에도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가이아나의 스타브록Stabroek 광구는 심해 사암층에 저장된 경질유이고, 탐사 단계인 카이에투Kaieteur 광구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 벨트Orinoco belt와 마라카이보 분지Maracaibo Basin는 내륙에 분포하고 있으며, 중질유라는 특성이나 설비 노후화의 문제로 채산성이 낮다고 평가된다. 즉, 과야나 에세키바Guayana Esequiba를 둘러싼 2023년의 분쟁은, 기존 유전이 성숙기로 접어든 베네수엘라가 ― 정확히는 대선을 앞둔 마두로 대통령이 경제 반등을 구실로 지지율을 얻기 위해 ― 다시금 에세키보 지역에 영유권 주장을 한 것이고, 그 새로운 도화선이 가이아나 영해에 속한 심해 유전인 것이다.

2023년 에세키보 분쟁에 관한 필자의 견해는 이러한 세부사항을 간과한 것이었고, 특히 전략 자원으로서의 석유보다는 환경적인 맥락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그럼 이 시점에서는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까? 이제 희토류나 석유 등의 전략 자원을 놓고 ― 그 옛날 디도와 아이네이아스의 자손이 그러했던 것처럼 ― 본격적인 양강 대결이 개시되었다고 말해야 할까? 그 타당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현 사태를 요약하기에는 다소 지엽적인 듯하다. 베네수엘라에 묻힌 흑금색 보석이 자본의 신을 기쁘게 할 거란 성급한 착각과 마찬가지로, 그런 협소한 도식은 현실의 복잡하고 거대한 흐름을 설명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련의 사태를 이해하는 데는 석유 하나보다는 더 많은 화두가 선행해야 한다. 이를테면, ‘미사일’이나 ‘마약’ 같은 것 말이다.

 

 


 

 

2. 미사일

 

쿠바섬에는 코치노스만Bahía de Cochinos이라 불리는 해역이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 양 떼처럼 몰려들었다가 깃털이 되어 떠나가는 구름, 그리고 그 사이로 빛나는 아름다운 석양이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이곳은 물고기들의 그윽한 비밀 기지이자 산호의 보금자리로, 다이버의 심장과 눈물을 가라앉히는 매력적인 바다이다. 코치노스만은 쿠바의 조용한 자부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20세기 미국에 있어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일 테지만 말이다.

이름을 피그스만Bay of Pigs이라고 바꿔 부르는 순간, 이곳은 우리가 익히 아는 미국과 CIA의 영원한 치부로 변모한다. 피그스만 침공은 많은 사공이 개입한 끝에 작전이 좌초된 사례이다. 본래 쿠바 망명자를 훈련시켜 게릴라로 투입하려던 ‘플루토 작전’은, 시간이 지나 공군의 지원과 공수부대의 도로차단을 전제로 한 대규모 상륙 계획으로 부풀려졌다.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작전의 주축이었던 제2506여단에서 불필요한 말이 흘러나왔고, 이는 언론을 타며 점점 기밀이라는 정체성을 잃어갔다. 결과적으로, 여러 악재와 무리한 결정이 겹친 끝에 플루토 작전은 처참히 실패했다.

피그스만 침공은 피델 카스트로의 머리를 한껏 달구었고, 이는 쿠바가 아메리카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papa가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그것이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초래했다는 ― 혹은 앞당겼다는 ― 평가는 여러모로 타당하다. 코치노스만의 소요는 쿠바의 맹렬한 연설가를 과감한 도박사로 바꾸어버렸고, 그 결과 아메리카의 목젖에 핵탄두와 미사일이 실려 온 것이니 말이다. 난데없이 나타난 소련의 탄도 미사일을 확인하고 미국은 공황에 빠졌다. 지난 작전의 실패로 CIA는 케네디의 신뢰를 잃었고, CIA의 정찰 권한이 축소되고 보고를 불신하게 되면서, 초기 대응에 필요한 시간을 상당수 낭비하고 말았다. 한 번 어긋난 시계의 시간이 계속 밀리듯이, 정보국과 연방 정부도 그때 이후로 좀처럼 맞물리지 못하고 하나둘 오류가 누적되었던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의 대응은 피그스만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대규모의 함대로 쿠바 영해를 봉쇄하면서도(실제로는 “검역”이라고 표현했다), 세부적으로는 전쟁의 뇌관을 자극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장성들은 멜로스를 압박하는 아테네인처럼 힘의 논리를 종용했지만, 케네디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고, 지난한 협상 끝에 미-소 양국이 전쟁의 매듭을 푸는 것으로 사태는 종결되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제3차 세계대전 ― 나아가 핵전쟁으로 번질 수 있었던 사건이었고, 인간의 분별력과 하늘의 기적이 없었더라면 실제로 그렇게 될 뻔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 저지’라는 목표에 매몰되었다가, 베트남에서의 실패와 데탕트를 기점으로 냉전 중심 사고를 차츰 재고하게 된다.

코치노스라는 이름의 그림자는 이후로도 미국에 장기간 남아있었다. 닉슨 대통령의 해결사 노릇을 했던 ‘백악관 배관공’은 피그스만 침공 계획의 협력자를 중심으로 모집되었고, 이들은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불법 침입 활동을 벌였다. 닉슨 재임 당시 CIA의 국장이었던 리처드 헬름스의 사례도 볼만하다. 헬름스는 자신의 커리어와 피그스만 침공의 실패를 분리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고, (그런 그의 강박을 잘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FBI에 수사 중단 압박을 넣으라고 CIA에 지시하는 과정에서 닉슨이 피그스만을 언급하는 것이 ‘스모킹 건’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다.

피그스만의 실패는 미국의 강력한 트라우마 중 하나이고, 이후 벌어지는 여러 오점과도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쿠바 측에서는 플루토 작전과 동시에 진행된 ‘마르스 작전’의 입안자가 당시 부통령 리처드 닉슨이었다고도 주장하는데 그 진위는 알 길이 없다(조지 H. W. 부시의 CIA 국장 재임 기간을 착각한 것으로 보아 별로 신뢰할만한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다만 분명한 건, 피그스만 침공의 실패가 CIA는 물론, 케네디 자신과 그의 후임자들에게 있어서도 강렬한 교훈으로 남았으리라는 점이다.

 

 


 

 

3. 마약

 

중동 정세의 불안정성과 테러리즘에 대한 미국의 강박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특히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서라면 군사적 개입도 불사한다는 것이 평균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기실 테러보다도 앞서 내정 간섭의 도구로 부상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약’이다.

베트남 전쟁을 포함한 60년대의 여러 실책은 미국의 패권에 제동을 걸었고, 여기에 군비 부담과 민족주의적 반미 정권의 출현이 더해지며 그들은 새로운 국면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내외 정세의 불안 속에 닉슨 행정부는 공산주의를 대체할 신선한 악마를 필요로 했고, 그렇게 독실한 미국인들을 경악게 할 몽타주에 마약이 오르게 된 것이었다. 작전‧수사 권한을 부여받고 출범한 마약단속국(DEA)은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또 하나의 예리한 칼날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칼끝이 자국민을 겨냥하고, 나아가 수렁에 박혀 빠지지 않게 되면서, 마약과의 전쟁은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다.

원인은 문제의 다양한 양상만큼이나 여러 곳에 산적해 있었다. 우선 첫째로, 미국 자신부터가 마약 확산에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연이은 전쟁의 고통은 진통제 수요를 촉진했고, 그로 하여금 오피오이드는 미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릴 기회를 얻게 되었다. 뒤이어 펜타닐과 그 유사체가 속속들이 시장에 나타났고, 구매력과 접근성의 틈새를 노려 마약 또한 쉽게 자리 잡았다. 이러한 취약성은 90년대 옥시콘틴을 위시한 오피오이드 위기로 이어지고, 신자유주의와 제약회사의 로비, 그리고 후술할 역사적 오점이 겹치면서 사태는 수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둘째로, 속칭 “빨갱이commie” 다음으로 기소권을 남발하기 쉬운 대상이 ‘약쟁이junkie’였다. 통념상, 마약 중독은 반전 운동가‧좌익‧유색인종‧이민자 계층에 덧씌우는 편향적인 인지 틀로서도 유명하다. 이것은 당연하게도 우연이나 자연적 귀결이 아니고, (당시 연방 정부 관계자도 인정하였듯,) 잠재적 대항 세력을 와해하고자 의도적으로 퍼뜨린 이미지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표적 계층 중 메스암페타민이나 크랙 코카인과 같은 강한 중독성 물질보다는, LSD나 THC(대마초의 성분) 같은 의존성이 낮은 물질을 복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고, 마약의 확산과 2차 피해를 방지하려면 개개인의 도덕성보다는 포괄적인 정책이 보다 절실했다. 가혹한 노동 환경, 참전 군인의 빈곤화와 마약성 진통제 중독, 보건 지침 부족, 인종차별, 그리고 양극화 등은 기실 국가 차원에서 풀어나가야 할 과제였다. 그러나 내적 안정성에 대한 집착에 시달렸던 연방 정부는 범사회적인 교육이나 개혁을 시행하는 대신, 자국민을 포함한 범지구적 전쟁을 선포하며 총탄과 기소장을 퍼부었다(그나마 이게 DEA의 갑작스러운 출현을 납득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논증이다). 정부의 무능이나 실패는 공공에 드러낼 수 없는 이미지였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 다음 선거를 망칠지도 모르는 모난 돌부리일 뿐이었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미 본토에 마약이 공급되는 것을 정부가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촉진하기까지 하였다. 공산권 국가의 출현을 경계한 미국은 ― 전술한 중동과 중남미를 비롯한 ― 여러 권역에서 친미 성향의 국가와 수교를 맺었고, 한편으로는 반미 정부를 전복시킬 현지 대항군을 비밀리에 지원했다. 그런데 후자의 ‘사업’은 돈이 아주 많이 드는 일이었고, 때로는 반군의 잔혹 행위가 더해지며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이는 미 국방부(DOD, 아니면 이젠 “전쟁부DOW”라고 불러야 하나?) 및 CIA 예산이 반미 정권을 공격하는 용도로 쓰이는 데 제약이 생기는 결과를 낳았고, 특히 휴즈-라이언 수정안Hughes-Ryan Amendment과 볼랜드Boland 수정안이라는 형식으로 성문화되었다.

전후 사정을 간단히 풀어쓰자면,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 대통령의 “초법적” 권한을 울타리에 가두려는 흐름이 생겨났고, 두 수정안 역시 의회와 행정부 간 파워 게임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CIA에는 비밀 작전을 의회에 보고할 의무가 지워졌고, 민주당은 수차례에 걸쳐 무기 수출 및 자금 원조를 통제하는 법안을 내놓으며 정부를 압박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 정권에 대항하는 ― ‘콘트라’를 지원하는데 필요한 자금이 절실했는데, 연방 예산에 자물쇠가 채워지자 외부에서 자금을 충당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볼랜드 수정안을 우회하기 위해, 우선 레이건 행정부는 ‘엔터프라이즈’란 이름의 작전을 수립하고 이를 국가안보회의(NSC)의 관리하에 두었다. 그리고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로버트 맥팔레인Robert Carl “Bud” McFarlane을 필두로, 맥팔레인이 사임한 이후에는 올리버 노스의 주도로 이란에 무기 밀매를 진행했고, 이 자금의 일부를 콘트라 반군의 원조금으로 전환하였다(이것이 바로 레이건을 거의 끝장낼뻔한 ‘이란-콘트라 사건’이다). 여기에 더해, 콘트라는 코카인 밀매를 통해 추가적인 자금 통로를 확보했는데, 이들이 판매한 크랙 코카인은 CIA가 콘트라를 원조할 때 경유하는 기업들을 통해 미국으로 유통되었다. CIA는 이에 그치지 않고 코카인 밀매 수익금을 비자금화하여 라틴아메리카에서의 활동 경비로 유용하고, 이러한 부패가 누적되며 대미 마약 유통망이 성장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이때를 기점으로 마약과의 전쟁은 피로스의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DEA는 CIA가 배양한 암 조직과 싸우게 되었고, 기회의 땅을 향한 나르코스의 쥐구멍은 닫힐 줄을 모르고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약은 미국에 새로운 목표와 명분을 제공하게 되었다. 그들은 마약 수출을 하나의 공격으로 간주할 수 있게 되었고, 국경을 넘어 수사권을 행사한다는 전례 없는 발상에 이른다. 이것은 소위 “비군사” 무장 요원의 투입을 공조 수사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하는 데 쓰였고, 나아가 ‘파나마 침공’이라는 가장 첨예한 형태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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