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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ISTJ 과학자의 연구일지

분류: 내글홍보, 글쓴이: 노르바, 5시간 전, 읽음: 38

* 다다음편까지 약 스포 포함(이지만 어제오늘 업로드 된 내용으로 충분히 유추 가능한)

 

외전 — 퀸시의 연구일지
부제: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피험체들은 한다)

[연구일지 #247]

오늘도 피험체E를 관찰했다.

2년이 지났다. 데려올 때는 경비 셋을 날려버리고 복도를 반파시킬 기세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조용해졌다. 처음엔 좋다고 생각했다. 협조적인 피험체만큼 연구자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없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있다.

능력치를 안 보여준다.

처음에 보여준 게 전부인 척하고 있다. 확실히 그렇다. 처음 측정값과 현재 측정값이 오차 범위를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일정하다. 사람의 컨디션은 날마다 다르다. 이건 의도적으로 통제하는 거다.

혹시 잡아오면서 실수로 다른 능력자가 죽은 게 신경 쓰여서 그러나? 아니면 여기가 불편한가? 외로움 타는 성격인가?

…외로움?

메모 해둔다. 나중에 심리학 논문 찾아봐야겠다.

그나저나 이 정도로 공을 들이는 피험체가 없는데. 시설 온도도 맞춰주고 식사도 제때 주고 있는데. 뭐가 문제인 건지 모르겠다. 이러면 연구 진척이 없는데…

말도 안하고 요구사항도 없으니 답답하다 답답해.

[연구일지 #289]

세 번째 불멸 능력자를 포획했다.

잠깐 실험해 봤는데 이 녀석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첫 번째는 재생 속도가 너무 느렸다. 전선 투입 불가. 두 번째는 절단에 재생이 안 됐다. 제한적. 이 녀석은 다르다. 회복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처음보다 현재가 빠르다. 이건 자체 적응형이다. 자체 진화형 가설도 충분히 가능하다.

오늘 실험 설계를 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조수가 자꾸 되물어서 귀찮았다. 설명을 한 번 들으면 한 번에 알아들어야지. 그나마 빠릿빠릿한 녀석인데 오늘은 영 맘에 안 들었다.

아무튼 피험체R로 명명한다.

데이터가 빠르게 쌓이고 있다. 좋다.

[연구일지 #301]

피험체R 관찰 계속.

피험체E만큼 팔팔하지는 않은데… 뭔가 좀 그렇다. 얌전하긴 한데 그렇다고 또 말을 잘 듣는 것 같지는 않다.

미묘하게 눈치가 빠른 것 같기도 하다.

복도를 이송될 때마다 발소리를 세는 것 같다. CCTV로 확인하니까 입술이 조금씩 움직인다. 속으로 웅얼거린다는 의미다. 기록해둔다.

이런 거 보면 사실 불멸 능력 외에도 다른 것이 있는 게 아닌지 가설이 생긴다.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다. 더 관찰해야 한다.

차곡차곡 쌓이는 데이터는 기분 좋다. 이 맛에 연구한다.

[연구일지 #312]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둘을 아예 한 곳에 붙여놓으면 어떨까.

피험체E가 요즘 좀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잘 보면 저녁마다 벽에 등을 기댄다. 옆방 쪽 벽에. 피험체R이 들어온 이후로. 이건 명백히 사회적 연결 욕구다.

심리학 논문에서 이런 케이스를 꽤 봤다. 고립된 개체에게 사회적 자극을 주면 반응 범위가 넓어진다. 능력 발현도 그럴 것이다.

피험체E가 빨리 탈출 의욕을 가지고 탈출 방법을 익혀서 실제로 탈출을 감행해야 실험 환경을 바꿔줄 텐데. 공용 구역 배치가 답이다.

배치 변경 서류에 서명했다.

벌써 기대된다.

[연구일지 #334]

군에서 연락이 왔다.

피험체R을 바로 전장 투입이 가능한지 보고 싶다고 했다.

흠.

예상대로. 안 됐다.

이 녀석을 전장에 보내는 건 연구 관점에서 너무 비효율적이다. 전투에 투입하면 데이터를 제대로 수집할 수 없다. 변수가 너무 많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현재 피험체R의 정신 상태를 보면 전장 투입은 불가능하다. 총소리만 들어도 굳어버린다. 불멸 능력자가 총소리에 굳는다. 기록하기도 좀 민망한 데이터다.

공포 학습이 너무 깊다. 내가 너무 열심히 한 탓인가. 아니면 이 녀석의 멘탈이 생각보다 약했던 탓인가.

이 녀석을 연구해서 일반인의 재생 능력을 높이는 쪽이 훨씬 생산적이다. 높으신 분들은 왜 항상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것만 보는지. 이 녀석 하나만 투입해서 뭘 하겠다는거야.

답장은 정중하게 보류 의사를 전달했다. 데이터가 더 필요하다고.

[연구일지 #356]

드디어 피험체E가 바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관계성 실험 설계가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피험체R과의 대화가 늘었다. 정확히는 피험체R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피험체E가 가끔 짧게 대답하는 구조지만 아무튼 접촉이 늘었다. 생체 신호도 변화가 있다. 좋다.

그런데.

피험체R이 갑자기 탈출을 시도했다.

그쪽 아니야. 그쪽 아니라고!

도면 상으로 보면 명백히 막다른 방향인데 왜 자꾸 거기로 가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학습 능력이 낮은 건지 아니면 일단 부딪혀보는 성격인 건지. 아무튼 가면 안 되는 쪽에 CCTV를 더 설치했다.

그리고 카드 키 관리 방식을 바꿨다. 주머니 말고 목에 걸게 했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복선이 될 수 있겠다. 메모해둔다.

[연구일지 #371]

피험체R이 또 탈출을 시도했다.

이번엔 꽤 멀리 갔다. 두 번째 구역 앞까지. 카드 키를 어떻게 확보했는지 확인했더니 이송 중에 연구원에게 빼앗았다. 연구원이 보고를 안 했다. 나중에 따로 불러서 주의를 줬다.

어쩔 수 없이 추가 실험을 진행했다. 그 상태에서 이동시키면 피험체E가 복도를 지나면서 듣게 된다. 심리적 압박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볼 수 있다.

이송 후 피험체E의 걸음 속도 변화를 측정했다.

변화가 있었다.

예상한 대로다.

그리고 피험체R이 탈출시도를 해서 막느라 어쩔 수 없이 죽인 채로 끌고 오는 상황이 생겼는데 피험체E의 생체 신호가 크게 요동쳤다. 어차피 되살아나는 거 알면서. 물론 예상은 했는데 수치가 예상보다 컸다. 의존도가 꽤 깊어진 것 같다.

가뜩이나 큰 눈이 더 커져서 솔직히 좀 안쓰러웠다.

…이런 감상은 연구일지에 쓰는 게 아닌데… 지운다.

연구원에게 피험체E를 잘 달래두라고 전달했다. 실험개체에게 정을 주면 실험하기 힘들어서 다른 사람 시키긴 하는데… 남을 시키면 영 탐탁지 않다. 그렇다고 직접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에휴.

[연구일지 #389]

드디어 이 녀석들이 탈출을 감행했다.

사무실 밖이 시끄러워서 CCTV를 켰다.

예상대로 피험체E가 경비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벽을 부수고 있었다.

벽을…

정문이 아니라 북쪽 외벽을. 내부 구조를 어떻게 파악한 건지 하필이면 제일 얇은 벽을 골랐다.

아니 저게 가능하다고?

나는 피험체E의 능력으로 저 정도 강도의 충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측정값 기준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하고 있다. 눈앞에서.

역시.

내가 맨 처음에 봤던 게 맞았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보여주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실제 상한이 측정값 훨씬 위에 있다는 걸.

실제 상황에 놓이면 더 많은 능력들이 발현된다. 이건 그냥 놔둬야 한다.(아… 하지만 외벽 수리비…)

추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조수가 물었다. ‘추격할까요.’

고개를 저었다.

‘기다려.’

자료파일에 메모해뒀다.

[실제 능력 상한 미확인 상태. 계속 관찰 필요. 다음 단계 준비.]

[후기 메모]

이 두 피험체에 대해 정리하자면.

피험체E. 처음부터 숨겼다. 4년 동안 숨겼다. 징한 녀석. 내가 파악한 것의 몇 배가 있다.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모른다. 실전에서만 나온다.

피험체R. 불멸 능력 외에 다른 것이 발현될 가능성이 있다. 치명적인 상황에서만 트리거된다는 가설. 아직 미확인.

그리고 이 둘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상호의존을 형성했다.

계획대로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피험체들이 가끔 할 뿐이지.


(무표정하게 열심히 쓰던 것들)

 

그…….

홍보글… 맞습니다… 그리고 1부 요약입니다…

노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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