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의 끝 – 2부
(1부에 이어)
4. 참수 작전
참으로 설명이 길었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본론이다. 여러분께서 지금까지 보아온 설명은, 다름이 아닌 미국의 내정 간섭 방식이 어떠한 배경을 거쳐 변모하였는지를 풀어쓴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필자가 할 일은, 일련의 과거가 현재 우리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마누엘 노리에가는 1980년대 파나마의 실질적de facto 통치자로, 정식 절차에 의해 선출된 적은 없으나 거의 국가수반이나 다름없었던 인물이다. 그는 쿠데타 이전 파나마 국가방위군Guardia Nacional de Panamá으로 불렸던 군사경찰 장교 출신으로, 1968년 쿠데타를 기점으로 급부상, 이후 오마르 토리호스가 사망한 후 점진적으로 권력을 잡기 시작했다. 당시 국가방위군은 포트 귤릭Fort Gulick의 미 육군사관학교를 거친 장교들이 많았는데, 노리에가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노리에가는 상당히 오랜 기간 CIA의 정보원 역할을 했고, 특히 위에서 언급한 콘트라 반군의 자금 지원 경로에도 기여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 노리에가를 축출한 파나마 침공 ― 이른바 “정당한 대의Just Cause” 작전은 미국 ‘참수 작전’의 결정판이나 다름없다. 기존에는 비밀 군사 작전과 내부로부터의 전복을 시도하던 미국이, 어느 순간부터 신속‧정확하고 치명적인 타격을 중시하게 되면서 작전 형태가 크게 바뀌게 되었다. 파나마 침공을 지휘한 콜린 파월은 과거 캐스퍼 와인버거 휘하에서 이란에 대한 무기 밀매에도 관여했었던 인물로, 유사한 성격의 작전인 ‘그레나다 침공(긴급 분노Urgent Fury 작전)’의 계획 담당자이기도 하였다.
오랜 기간 미국과 유착 관계를 유지해 온 마누엘 노리에가가 ― 70년대 CIA 국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 조지 H. W. 부시에 이르러 축출된 건, 단순히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마누엘 노리에가는 올리버 노스와 접촉하며 FSLN에 대한 사보타주나 콘트라 반군의 활동 지원을 제안하였고, 토리호스 집권기 때 맺었던 운하 협정을 교묘히 이용해 파나마 내 미군 기지의 첩보 활동을 묵인했다. 그는 이란-콘트라 사건에 깊이 연관된 요인 중 한 명이고, 마약 밀매 운송망을 구축하면서 ‘엔터프라이즈의 한 축’이자 ‘미국에 코카인을 공급한 중개인’이라는 양면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다. 노리에가는 DEA의 수사권을 인정하고 이에 협력하면서 불체포 특권을 부여받기도 했지만, 그가 미국의 그림자에 지문을 남긴 이상, 처분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조지 H. W. 부시는 CIA 재직 시기 노리에가와의 관계가 있다는 도덕적 약점을 숨긴 채 대선 캠페인을 치렀고, 이후 대통령이 된 그는 임기 1년 차에 마누엘 노리에가의 처분을 개시했다. 1989년 12월 20일에 시작된 체포 작전은 다음 해 1월 3일 노리에가의 항복으로 신속하게 종결되었다. 노리에가가 단독으로 기소되고 CIA와의 관계가 재판에서 배제되면서, 엔터프라이즈에 관해 진술할 수 있는 유력한 증인 하나가 소멸했고, 미국 측 관계자들도 차례차례 면책되어 이란-콘트라 리스크는 흐지부지되었다.
노리에가를 정리하면서 미국은 내외의 소요를 잠재우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보았다. 파나마 침공을 계기로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 강력한 실존적 위기를 느낀 것은 덤이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반미 정권의 독재자를 언제든지 축출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였고, 일단은 미국의 공습 범위 내에 있는 국가들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점점 들불처럼 번져가던 중남미의 반미 감정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기도 했다.
병귀신속을 골자로 한 작전 패러다임은 그 후로도 한동안 이어졌고, 특히 중동 전역에 이식되면서 걸프 전쟁이라는 전례 없는 성공을 낳았다. 미국은 이때의 승리에 고무되는 것을 넘어 점점 도취되기 시작했고,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탈레반 정권을 일시적으로 몰아낼 때까지 계속되었다. 120일풍을 타고 춤추던 미국의 도취경은 곧 샤말شمال로 옮겨 이라크로 넘어가기에 이르렀다. 조지 W. 부시는 아버지의 치적을 재현한다는 추상적 목표에 매몰되어 있었고, 이것은 파월 독트린에서 강조되었던 ‘명확한 목표’와 ‘출구 전략’의 부재를 야기했다. (당시 콜린 파월은 국무장관으로서 안보리에서 국제사회의 참여를 호소하긴 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주전파인 럼즈펠드 및 월포위츠에 비해 그의 의견이 잘 채택되지 않았다.) 그 결과 이라크 전쟁은 부시 행정부 최악의 실패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마치 덫에 물려 시름시름 앓다 사라진 곰처럼, 흰머리수리는 중동이라는 수렁에 빠져 지금도 허우적대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실패 이후에도, 미국은 수뇌부를 제거하고 반미 무장 세력을 와해시킨다는 목표에 몰두하고 있으나, 참수 작전의 성공은 새로운 순교자를 만들어 항전을 독려하는 역효과만을 낳는 듯하다. 무자헤딘에서 알-카에다로, 알-카에다에서 다에시داعش(IS)로 이어지는 계보에는 미국의 발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다. 이는 중동의 역사‧민족‧종교에 대한 몰이해가 군사적 접근법과 만나 벌어진 비극이다. 미국은 승리할수록 더 많은 적을, 그리고 잘못된 교훈만을 거듭 얻고 있다.
※ 여기서부터는 2월 28일 이후의 내용을 더했습니다.
5. 다시, 석유로
세계의 화약고 ‘중동’이 변덕스럽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현재는 석유 그 자체나 오일 머니의 유치로 교류가 활발한 곳이지만, 옛날에는 경제 협력 파트너로 삼기에 망설여지던 세계였고, 지금도 중동은 수십 개의 도폭선이 숨겨진 일촉즉발의 땅이다.
한국에도 중동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박정희 정부 당시 외교 특보였던 최규하와 경제기획원 이선기 차관보가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되었을 때이다. 한국 대표단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파이살 알사우드를 만나 공공 차관과 사우디 중앙은행의 특별 대부를 약속받았다. 그런데 귀국길에 들으니 그가 난데없이 조카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4억 달러 차관이 백지화되는 그야말로 황당한 경험이었다. 이때를 계기로, 경제기획원은 석유 자본을 빌리기보다는 직접 벌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고, 그렇게 오일 환류 정책은 건설 수주를 필두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소개한 일화는 지극히 사소한 해프닝일 뿐이지만, 내일의 안녕을 장담할 수 없다는 중동의 특성만큼은 잘 묘사하고 있다. 그곳은 외지인에게 있어 그 어떤 곳보다도 이국적인 세계이고, 그런 만큼이나 무지한 상태로 섣불리 접근하게 되는 난해한 환경이다. 아랍 정체성, 쿠르디스탄, 수니파와 시아파, 그리고 이맘과 아야톨라 우즈마 등 관념적이지만 강력한 요인들이 하나의 거대한 사이클론을 이룬 것이 바로 중동이랄까.
그 복잡한 지반에서도 ‘이란’은 독보적으로 특수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사파비 왕조의 초대 샤 이스마일 1세가 대대적인 개종을 선포한 이래, 페르시아에는 처음으로 시아파 중심의 국가가 들어섰다. 이들은 당대의 패권국 ‘오스만 제국’과 경쟁 구도를 이루며 수니파 세력에 경종을 울렸고, 수니파 학자의 이탈과 시아파의 이주가 지속되며 완전한 “알리의 추종자شيعة علي”로 거듭나게 되었다. 현재도 이란은 (12이맘파를 주축으로 한) 시아파의 맹주로 여겨지고 있으며, 중동의 대립 구도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국가이다. (페르시아 일대의 민족 정체성 확립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해당 주장이 ‘준거가 부족하고 초점이 어긋난 논의’라고 생각한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구분은 ‘무함마드의 자손이 칼리파를 세습할 것인가’의 논쟁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후세인 이븐 알리’가 야지드 이븐 무아위야의 세습에 반대하다 사망하면서 그들 사이의 구분은 되돌릴 수 없는 간극이 되었다. 시아파는 지금도 무하람 10일째인 ‘아슈라’가 되면 카르발라에서 벌어진 참극을 애도하며 피에 젖은 수난극을 연출한다(과거에는 무기로 자해하여 실제로 피를 흘리기도 했으나, 현재는 헌혈과 분장으로 대체되는 추세이다). 개인 대 개인의 문제에서 두 종파의 차이는 유혈 사태에 이르는 경우가 드물지만, 집단 간 분쟁으로 ― 특히 이권 다툼으로 확장되면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는 경향이 있다. 둘 사이를 종단하는 역사란, 결국 순교자가 흘린 피의 강이기 때문이다.
현대 이란의 모태가 된 ‘이란 혁명’은 수니파-시아파 간 분쟁의 새로운 기폭제가 된 사건이었다. 팔라비 왕정을 폐지하고 신정 체제로의 전환을 이뤄낸 이란은 주변국에 혁명을 수출하려 시도했고, 이는 ‘친미 외교와 왕정을 표방하던 수니파 국가’ 및 ‘시아파를 탄압 중이던 독재 국가’에 경계심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시아파에 비해 수가 적어 입지가 불안했던 이라크 수니파 지도층 ― ‘사담 후세인’을 자극하면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수출하고자 했던 이슬람 혁명 모델은 (본의 아니게) 타 종파에도 나름의 비전을 제공하여, 훗날 다양한 내전은 물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까지 영향을 주기에 이른다.
그런 이란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은 매우 복잡하다. 우선, 친미 세속주의 정권이었던 팔라비 왕조는 이란 혁명과 함께 무너졌고, 루홀라 무사비 호메이니가 집권하면서 이란은 반미로 돌아섰다. 이에 미국은 이란을 향한 무기 금수 조치를 단행했으나, 이후 각각 ‘콘트라 반군을 지원할 비자금 확보’와 ‘팔라비 왕정 시절 수입한 미국산 무기의 부품 수급’이라는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이란에 무기를 밀매하기도 하였다. 이란은 중동의 여러 산유국과 인접해 있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국가이고, 호르무즈 해협과 샤트알아랍강을 모두 타격할 수 있어 중동 자원 분쟁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란 정치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슬람 혁명 수비대는 탄도미사일의 통제권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같은 단체들은 혁명 수비대를 통해 이란의 후원을 받고,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무장 투쟁을 전개 중이다. 혁명 수비대는 쿠드스군 ― 그러니까 예루살렘(=알-쿠드스القُدس)을 이념적 목표로 삼은 부대가 있을 정도로 반유대주의 성향이 확고하다. 이스라엘과 긴밀한 미국으로서는, 이란을 “석기 시대로 만들고” 그 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싶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의 이란 타격 옵션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실행 단계로 이행할 조짐이 있었다. 2019년 12월 29일, 알-카임 인근 카타이브 헤즈볼라 지휘부를 미군이 타격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친이란 시위대가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을 습격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사건은 바그다드 국제공항 공습 ―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와 ‘카타이브 헤즈볼라 부사령관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의 암살이라는 대형 사건으로 번지게 되었다. 하메네이의 신임을 받고 있던 솔레이마니가 사망하자, 이란은 그의 이름을 딴 작전에서 알-아사드와 에르빌 기지를 타격하였고, 양국의 분위기는 전쟁이 임박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COVID-19의 출현과 조 바이든의 당선으로 이때의 불씨는 땔거리를 잃고 흐지부지되었다.
2026년,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란의 반정부 시위에 호응한다는 명목으로 화섭자에 넣어두었던 불씨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하메네이 정권의 시위대 학살 등, 여러 동란으로 불안정해진 이란 고원의 퇴적층은 휘발유를 끼얹은 장작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 화근이 부주의하게 라흐바르의 지붕으로 떨어지며 사태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가고 말았다. 테헤란의 폭발은 알보르즈의 하얀 거인을 전율하게 했고, 쉬아 초승달의 차가운 빛نُور을 꺼뜨려 이란 전역이 업화نَار로 불타게 되었다. 알리 하메네이는 자국민을 학살한 독재자에서 순교자로 변모했고, 이란은 정권 교체 대신 복수와 항전을 부르짖게 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알리 하메네이는 지금까지 미국이 제거해 온 여느 독재자들과는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그는 과대대표된 독재자도 아니고, 무장 단체의 사령관도 아니며, 하물며 막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그림자 정치인도 아니다. 그는 이란의 2대 라흐바르이고 아야톨라이다. 이란은 헌법 제5조에 따라 “열두 이맘이 부재중인 동안 다수에게 공인된 정통 법학자의 통치를 받도록” 되어 있고, 이는 자연스레 시아파 성직 최고위인 ‘마르자’의 역할로 귀결된다. 1989년 헌법 개정이 있기 전까지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곧 아야톨라 우즈마였고, (비록 널리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알리 하메네이는 1994년에 아야톨라 우즈마가 되어 줄곧 이란 신정 체제를 지켜왔다.
이란의 정치는 시아파 율법학자와 혁명 수비대가 주축이 되고, 미국은 솔레이마니를 암살하며 이란의 두 기둥 중 하나를 무너뜨렸다. 그런 상황에서 ‘아야톨라 하메네이’마저 제거한다는 것은 곧 이란의 존재를 부정하겠다는 선언과 같으며, 그들이 ‘검의 지하드’를 선택하도록 몰아가는 행위이다.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담은 ‘하디스’에서, 가장 훌륭한 지하드란 ① 압제에 맞서 정의를 고하고 ② 자신의 피를 흘리는(=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언급된다. 그리고 시아파는 순교자의 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야지드 이븐 무아위야와 같은 “압제자”에 대항하여 자신을 내던지는 ‘역사적 투쟁 모델’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종교적 모델을 국민 다수가 체화하고 있는 이란을 실존적 위기로 몰아간 순간, 그들이 카르발라의 전례를 따르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인 셈이다.
이러한 기초적인 정치 역학도 파악하지 못하고 기존의 참수 작전을 답습한 결과, 2026년 이란 전쟁은 미국의 안일한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우선,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그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최고 지도자를 ‘세습’했다. 평소대로라면 라흐바르의 세습은 꺼려지는 일이므로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 하는데, 이번 공습으로 지도부가 증발하면서 강력한 명분을 제공하고 말았다. 그리고 ‘애초에 소수파였던 팔라비 왕가 복위 세력’이 발언권을 얻는 대신, 신정 체제에 우호적인 여론을 강화하면서 미국이 바라던 정권 교체는 가능성이 완전히 전소되었다. 게다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카드를 꺼내 들며 자원 전쟁의 양상으로 몰아가자, (미국 자신을 포함해) 세계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히게 되었다.
현재까지는 호르무즈 해협에 이목이 쏠리고 있으나, 자원 지정학적으로 이란이 가진 협상 카드는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많다. ① 이란은 파이살 알사우드와 헨리 키신저의 밀약으로 구축되었던 ‘페트로달러 체제’에 다른 도전자가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하는 가장 유력한 창구이다. ② 이란은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천연가스 매장량이 많은 국가이며,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석유 및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경유지로서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③ 동시에, 이란을 우회하기 위한 카스피해 파이프라인을 공격할 수도 있는 최적의 위치를 점유했다. ④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 산유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특히 석유 외에도 로보틱스나 AI 산업을 선도하는 사우디 아람코 시설이 이란의 사정거리에 노출되어 있다. 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이란과 매우 인접하다. 두 강이 모이는 샤트알아랍강은 운송 외에도 해수 담수화 프로젝트에 결정적인 곳이므로, 이곳이 공격받게 되면 중동 수자원 확보 계획에 큰 차질이 될 수도 있다. 이상의 다섯 가지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화폐경제‧물류‧에너지‧인프라‧식량의 총체적 저하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저유가 시대에 저평가되었던 ‘석유의 무기화’ 역량은, 페트로달러에 대한 도전과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의 봉쇄로 날카롭게 벼려졌다. 이제 이란이 카르발라 72명의 순교자와 같은 운명을 맞지 않는 한, 페르시아의 고원이 미국 중심 질서에 편입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미국은 어설프게나마 지연되고 있었던 자원 전쟁의 서막을 열어버렸고, 압제자Tyrannus가 저지른 악업 때문에 세계는 테바이의 역병을 앓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영웅의 양심이 없으므로, 이는 오직 시민과 그 대표자가 어떤 역사를 쓰느냐에 따라 비극의 향방이 갈릴 따름이다.
6. 질서의 끝
도널드 트럼프는 제1세계 맹주hegemon이자 기축통화국이라는 위치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우방의 탓으로 돌리며 대통령에 등극했다. 이는 (신자유주의 모델의 실패로 인한) 경기 침체를 외면하는 그럴싸한 도피escapade였고, 재벌 신화와 경제 성장을 연결 지으려는 유권자의 기이한 버릇과 맞물리며 트럼프를 돋보이게 했다. 트럼프는 매번 말이 되진 않으나 강경한 주장을 펼쳤고, 그의 전통적 지지층은 그것이 ‘강한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진지하게 믿었다. 그리고 그가 1기 행정부에서 미국을 파멸시키지 못했으므로, 유권자는 또다시 그에게 기회가 있다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며 트럼프는 새로운 기회second wind를 얻게 되었다.
2기 행정부의 목표는 숙원 사업을 마무리 짓는 것이었다. 우선, 트럼프는 크리스티 놈과 같은 카포레짐을 거느리고 이민세관단속국을 시카리우스로 변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이민자 단속에 협조하지 않는 주를 통제 불능 상태로 낙인찍었고, 반란법을 발동하겠다고 협박하며 계엄 분위기를 조성했다. 내부의 불만이 터지려 할 때마다 그는 모든 게 잘 되어가고 있다며 떠들어댔고, 휘발성volatile 관세 정책과 탈-헤게모니를 휘두르며 뒷골목의 떡대bruiser처럼 굴었다.
공포 분위기로 내부 단속을 일단락했다 판단한 트럼프는 뜬금없이 그의 검지를 외부로 향했다. 소위 “불법 이민자”들은 갑자기 남아메리카 독재자의 비밀 카르텔과 연루되었고, 트럼프는 군대를 동원해 주권 국가를 타격한 후 이를 “방위적 경찰 작전”으로 선전했다. 1월의 작은 승리에 잔뜩 취하자 트럼프는 그다음 목표로 그린란드를 지목했다. 그의 망상 속에서 미국의 탄도미사일 방위망은 북극까지 확장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았고, (마치 아들 부시가 허위 정보에 속았던 것처럼,) 어느 날 트럼프는 다른 지역의 탄도미사일로 관심이 옮겨갔다. 마찬가지로 법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란’이라는 떡밥을 던진 것이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다르지 않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수도 없이 생각했다. ‘제발 누가 그 녀석을 좀 치워줬으면 좋겠군.’ 실제로는 이것보다 더 과격한 표현이었겠지만, 아무튼 트럼프의 직무 정지 및 파면을 강하게 소망하였다(갑작스러운 사망보다는 이편이 훨씬 예후가 좋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암 덩어리를 미국에서 적출한다고 해서 이 병든 코끼리의 체질이 개선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 같거나 더 심한 인물이 선출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왜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당신은 이 글을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석유-미사일-마약으로 설명한 미국의 내정 간섭, 그리고 트럼프가 당선되기까지의 흐름을 다시 되짚어보시라.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인의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이다. 국제제도international regime에 구속받는 것이 싫다는 마음도, 무역수지 적자가 불만인 것도, 동맹국의 이권에 휘둘리기 싫다는 심리도 모두 다수의 합의 속에 존재했던 담론이다. 그가 미국의 망념을 가장 분명하게 대표했다는 사실을 과연 누가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언제나 그런 상태였다. 공산‧반미 정권을 와해시키고자 비인도적 공작을 진행해 왔고, 국제법을 위반해가며 주권 국가를 타격했다. 중동에 대한 접근법이 달랐던 오바마 행정부조차도 참수 작전을 멈추지는 않았고, 그로 인해 생긴 통솔 공백은 극단주의 무장 세력의 난립을 유발했다.
네타냐후의 꼬드김에 넘어간 건? 딱히 트럼프가 특별한 게 아니다. 이라크 전쟁을 부추겼던 럼즈펠드와 월포위츠 등의 참모진은 JINSA 무리 ― 콜린 파월이 이런 식으로 불렀다 ― 다른 말로 ‘미국 유대인 국가안보연구소Jewish Institute for National Security of America’의 이해관계자였다. JINSA는 미국의 장성과 유력 정치인들을 이스라엘과 연결해 주는 매개이고, 지금도 이란과의 휴전을 반대하고 그들의 군사적 역량을 재건 불가한 수준으로 꺾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중동 개입에 있어 미국은 항상 유대계 정치 집단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트럼프는 그저 다른 대통령보다 조금 더 무모한 팔랑귀였을 뿐이다.
트럼프가 휘두른 폭거는 전임자의 치적을 답습한 것에 불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와인버거나 파월 같은 인사가 제대로 된 안보 전략을 제공했다. 그리고 조지 W. 부시도 어설프게나마 자신의 이름을 딴 독트린이 있었다. 그에 반해, 트럼프는 그 어떠한 대국적 전략이나 교전 수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으려 하지도 않고, 달성 가능한 이익이나 출구 전략에 대해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미국이 국제 여론의 눈치를 보는 데 넌더리가 났기 때문에 옹립된 독재자이다. 그의 무지와 무관심은 미 유권자들의 묵인 아래 발호한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정부 수반이 되더라도, 연방 정부는 “미국의 이익”으로 정의된 무언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양심을 버릴 것이다. 믿을 수 없다고? 그럼 돌아가라. 돌아가서 망자들의 얼굴을, 증언을, 비문epitaph을 다시 보아라. 역사는 그렇게 말한다. 당신이 믿지 않더라도.
7. 역사
언젠가 자원이 무기가 되는 시대가 올 거라는 사실은 세계인 모두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찾아올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 각자도생 유전자를 이식하고 국수주의와 배타주의를 외치는 분위기 속에, 자원 전쟁은 난데없이 우리 발치에 떨어졌다. 원인은 전통의 우방이라 여겨졌던 미국과 그를 부추기는 황금 소의 사도이다. 국가를 내전 상태로 몰고 가던 사상적 균열은 이제 조산대를 지나 세계의 분열로 확장되었다. 신뢰가 붕괴한 시대, 우리는 서로의 생명줄을 위태롭게 쥐고 있다.
냉정하게 말해, 미국 연방 정부의 문제를 놓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것은 주권을 넘어서는 일이고, 당연하게도 실현 가능성이 전무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배움이 일천한 필자는 물론이고, 답답한 심정으로 국제 정세를 보고 계신 여러분도, 한때 그들에게 “숨겨진 의도”가 있을 거라며 떠들어대던 소위 “현인”들도 현 상황을 놓고 시원한 해법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답은 오히려 뻔한 이야기뿐이다.
‘재생 에너지로의 이행을 지지하자.’ ‘비우호국과의 외교를 포기하지 말자.’ ‘국제법 위반에 조력하지 말고 옳은 목소리를 내자.’ ‘상생과 동반 상승의 길을 추구하자.’ ‘우리가 인간임을 잊지 말자.’ 식상할지언정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를 되풀이하며, 질서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 지구에 국제적 합의와 공준이 정착할 때까지 시민의 도리를 다하는 것만이 우리가 겨우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 외에 다른 극적인 변화로부터 효능감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지 말자. 야망 있는 개인이 불모지에 착륙하면 겨우 깃발을 꽂을 수 있을 뿐이나, 군중이 오늘을 살고자 개척한 땅에서는 문명이 태동한다. 여러 사람이 오늘을 충실히 사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그렇게 물었던 한강 작가의 질문은 이런 시기에 무게감을 더하는 것 같다. 시민사회의 유산을 기반으로 한 차례 위기를 극복해 낸 우리는 이제 이 질문의 답을 안다. 그럼 이번엔 말을 조금 비틀어보자. “역사가 내일을 말할 수 있는가?” 이번 질문은 전자보다 훨씬 논쟁적이다. 필자의 답은 이런 느낌이다. “돌아보니 역시 그 말이 맞았어.” 꿈보다 해몽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교훈은 좋은 내일을 꿈꾸게 한다.
미국의 오늘날을 역사가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오늘도 역사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자원 위기 속에 한국이 중동 국가들과의 파트너십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MD 체계에 일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일 쇼크 이후로 수많은 방문과 교감이, 낯선 시장에 뛰어들어 수자원 인프라와 플랜트를 건설한 기업들, 판데믹 시기의 인도적 지원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역사가 앞서 있었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지엽적이고 맹목적인 신앙 ― 세계 전체를 좀먹고 있는 미디어의 밈적 사고에 맞서려면 충분한 역사적 토양이 필요하다. 눈앞의 사람을 예의로 대하고, 그게 반복되어 한 사람씩 당신에게 물들어 갈 때, 그때야 비로소 희망의 알갱이는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모은 입자가 흙이 되고, 그 흙이 모여 땅을 이루어야 약속이 뿌리내릴 수 있다. 그런 가시적인 결과물이 있을 때, 우리는 드디어 말할 수 있다. “각자도생이라고? 아니, 네가 틀렸어. 서로 돕는 게 최고의 생존법이야.” 실체가 있는 믿음은 근거 없는 맹신보다 강하다. 역사는 그렇게 말해왔다. 그리고 당신의 양심과 도덕이 곧 역사의 내일이다.
“근시일 내로” 가져오겠다던 잡글을 무려 두 달이나 더 걸려 내놓다니. 보통 때라면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겠습니다만, 이번만큼은 기획의 원인 제공자를 탓하고 싶습니다. 이런 글을 쓰는 건 정말로 괴롭습니다. 보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기분 상하고 눈 아프고, 그저 손해뿐이지요. 하지만 쓰지 않는 것이 더 괴롭다면 글쟁이는 저항할 수 없습니다. 말하지 않는 게 더 괴롭다면 인간은 저항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읽지 않는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혼자 공부해서 스스로 터득하는 게 훨씬 나은 길이니까요. 남의 일기나 반성문 같은 건 몰래 보는 게 아니라면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그저 세 가지만 당부하고 싶습니다. 역사를 돌아보고, 희망을 버리지 않기를. 그리고 건강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