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경성의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
매주 주말 신구 선생님의 “4주 후에 뵙겠습니다”로 결말을 지었으나 어떤 부부도 4주 후에 뵙지 않았던…제목에 ‘클리닉’이 들어가지만 치료는 없었던…온갖 이혼불륜막장패륜이 난무했던 드라마(…모든 에피소드가 실화기반이었다고 합니다…)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을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신다면 건강검진을 받으셔야…(<이혼숙려캠프>는 <부부클리닉>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랍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요즘 못지 않게 이혼소송이 난무했으니…법률혼이 도입되면서 이혼 ‘소송’도 가능해지고, 부부 사이의 갈등도 주재소에 달려가서 중재해 달라는 사람들이 있었고, 조혼과 자유연애가 충돌하고, 여성 인권이 그나마 높아지면서 여성도 참고 살지 않고 이혼을 고려해 보게 되고, 조혼한 어린 부인이 결혼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편을 죽이거나 집에 불을 지르는 사건도 발생하고, 결혼은 고향에서 하고 생활은 도시에서 하면서 도시에서 또 장가를 드는 남편들도 있고…그리고 이혼소송 전문 모던걸 변호사 ‘소요’와 그녀의 사무장인 사회주의자 ‘단주’가 있습니다.
조혼한 아내는 이혼할 수 있을까
주재소에 폭탄을 던진 독립투사를 변호하려고 했는데…증거 위조를 불사하며 이기는 데만 집중한 변호사의 말발에 의뢰인이 변호받기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변호사는 증언을 받으려 독립투사의 집에 갔다가 학대당하는 어린 부인을 보고 오지랖을 부려 경성으로 데려오는데, 조혼한 어린 부인은 모던하게 ‘이혼’을 원하고, 독립투사는 변호사에게 유죄를 받아내 달라고 하고, 방청석에서 웬 수상한 사내가 나타나서 변호사에게 “당신 피앙세를 사랑합니까”하고 묻는데…
신여성 ‘제2부인’의 법적 지위는?
‘모던보이’ ‘모던걸’들에게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린 나이에 부모에 의해 강제로 조혼하는 건 타파해야 할 구습이었습니다만…현실은 달랐습니다. 부모들은 여전히 ‘자기네들이 살던대로’ 자식을 조혼시켰고, 철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조혼한 부부끼리 사이가 좋기도 했으나…어린 신랑이 도회로 유학가서 ‘모던’에 젖어 들면서 조혼은 미개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느껴지고 덩달아 조혼한 구여성 아내도 진절머리나게 싫어졌습니다. 하지만 구여성 부인과 부모는 이혼을 거부했고, 모던보이들이 자유연애한 모던걸은 호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했으니 정식 부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시대의 첩과는 또 뭔가 조금 다르고…애매한 지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런 신여성 부인들을 (첩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니까) ‘제 2부인’으로 불렀습니다.
제2부인이 된 모던걸은 구여성 조강지처와 기생 출신 첩을 구여성이라고 무시하지만, 세파에 시달리며 경험치가 쌓인 구여성들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으니…영문과를 전공한 교양 있는 제2부인 vs 영문학 그런 거 모르지만 인생이 영문학인 구여성 본부인과 첩의 대결은?
여학생들의 동성연애 + 내선연애
일제강점기에 여학생들의 동성연애(이 때는 ‘동성애’를 ‘동성연애’라고 했습니다.)는 딱히 숨길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여학생이 남학생과 자유연애하다가 순결을 잃느니 여학생끼리 연애하는 게 낫다’는 묘하게 열린 듯 닫힌…사회적 시선이었습니다. 연애까지는 괜찮지만 여자끼리 결혼하겠다…는 용납이 안 되는 역시 열린 듯 닫힌…시대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내선융화’ 차원에서 조선인-일본인 국제 결혼도 장려되었는데요. 여학교에서 만난 조선인 여학생과 일본인 여학생의 연애는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일제강점기 조선의 백정들의 단체인 형평사와 일본 부락민들의 단체인 수평사는 수평사에서 형평사 행사에 와서 지지 연설을 하기도 하는 등 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
기생 말고 여급, 모던보이 말고 룸펜
경성에 여기저기 카페가 유행하면서 카페에서 일하는 여성인 ‘여급’이 등장합니다. 모던한 공간인 카페에서 일하는 모던한 직업여성이기도 하면서 손님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던 여급을 보고 손놈, 아니 손님들은 연애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여급과 손님으로 만나서 애인으로 발전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정사하는 커플이 신문에 나오기도 했고요. 여급들은 퇴근 후 룸펜을 기둥서방처럼 먹여 살리며 연애를 하기도 했습니다.(소설 <날개>에 나오는 그런 관계)
여급이 가진 것 없는 룸펜과 연애하기 위해 자신을 후원하던 남자에게 ‘정조유린 위자료 청구소송’을 걸게 됩니다. 위자료를 받아내기 위해 변호사는 ‘여급에게 유린당할 정조가 있는가?’를 먼저 주장해야 하는데…
이 아이가 내 아들이다, 왜 말을 못 해!
노비는 없어졌으나 집안일할 사람은 필요하고, 가진것 없이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여자들은 많았으니…예전에 노비가 했던 집안일을 이제 ‘안잠자기’ ‘행랑어멈’이라 불리는 ‘식모’가 하게 됩니다. 당시 식모의 처우는 가혹해서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고도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 하고 돈도 거의 못 받고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는’ 수준의 대우만 받았습니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 영감을 받은(?) ‘행랑손님과 어머니’에서는 (전)몰락한 양반가 며느리 (현) 식모와 (전) 노비의 아들 (현) 성공한 사채업자의 신분을 넘어선(신분제가 사라지긴 했습니다만) 사랑이야기입니다.(연상 누나를 좋아한 연하남의 순정이기도 하고요) 아이의 시선을 곁들인. 그리고 식모의 아들은 남편의 아들인지 사채업자의 아들인지 출생의 비밀이 있는데…유전자 검사가 없던 시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솔로몬의 재판을 할 수 있을까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를 구실로 조선인들을 학살했습니다. 조선인들은 ‘만주에서 중국인들이 조선인을 죽였다’는 오보를 보고 재조 중국인들을 학살했습니다. 타인에 대한 혐오에 불을 붙인 데에는 언론도 한 몫을 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손쉬운 혐오에 발을 담갔고요.
피해자이자 가해자,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평범한 사람들은 어쩌다 혐오와 폭력에 깊이 잠기게 된 걸까요?
진정한 하우스 호러는 집값
경성에 등장한 서양식 주택을 ‘문화주택’이라고 했는데, 모든 사람들의 꿈이었죠. 마치 라잌 현재의 ‘한강뷰 아파트’처럼…
가사소송의 꽃은 상속분쟁이라는 말이 있던데…미술품 수집가가 문화주택을 ‘호적에 올리지 않은 딸’에게 상속하고자 합니다. 그러자 사생아와 양자가 자신들에게도 상속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변호사와 사무장, 사생아, 양자는 상속녀의 초대로 문화주택에 가는데…이 집, 뭔가 이상하고 수상하고 무섭습니다.
해방은 왔으나 봄은 오지 않고…
해방이 되었지만 신탁과 반탁, 좌익과 우익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친일파는 자리를 지키고 있고, 미군정은 좌익척결에만 골몰하느라 민생에는 무능합니다. 이 시기 여성계는 ‘혼인에서 남녀동권’을 주장하기 위해 축첩제 폐지운동을 벌이면서 첩을 비난하고…좌익은 남쪽에서 점점 입지가 좁아집니다. 그리고 미군정이 편파판결한 ‘정판사 위폐 조작 사건’으로 남쪽에서 좌익은 몰락하다시피 합니다.
이 혼란의 시기, 변호사는 축첩제 페지 운동에 맞서 이혼을 거부하는 첩의 소송과 정판사 조작 사건의 변호를 동시에 맡게 되는데…
그래서, 모던걸 변호사와 사회주의자 사무장은 사내연애를 하냐고요?
두쫀쿠보다 더 달콤하고 쫄깃한 연애를 합니다!
그 동안 읽어주시고 단문응원과 리뷰를 남겨주신 분들께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