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아이러니

분류: 수다, 글쓴이: 조딘, 3시간 전, 댓글2, 읽음: 37

당신은 마치 항상 늦게 일어나던 아가씨와 같소. 날이면 날마다 늦게 일어나던 아가씨는 옆 마을로 시집가서 난생 처음 일찍 일어나야 했다오.

아가씨는 문득 들판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것을 보고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소

‘우리 마을에는 저런 것이 없어요!’

바로 그 아가씨처럼 당신은 이 세상에 사랑이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랑을 볼 수 있을만큼 일찍 일어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사랑은 바로 그 자리에 있는데 말이오.

-하자르 사전

 

 

니네가 같은 쓰레기를 좋아한다고 걔가 네 영혼의 반쪽인 건 아니야.

Just because she likes the same bizzaro crap you do doesn’t mean she’s your soul mate.

 

500일의 써머에서 찌질거리던 오빠 토끼군에게 끌로에 모레츠가 했던 명대사죠.

우린 때로 서로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다거나 들여다 보고 있다거나 하는 착각을 하고

취향이란 그런 경우 참 손쉬운 바로미터죠.

 

우린 보통 바흐가 될 수 없으니 차라리 손쉽게 바흐를 좋아하고,

영혼의 모양을 볼 수 없으니, 손쉽게 취향의 닮음을 영혼의 닮음으로 여기는 겁니다.

 

라는 문장 이후로 뭔가 되게 길게 썼다가 다 지우고 노래 한 곡 링크합니다.

얼굴과 오체불만족과 가치 판단과 인류애와 우주의 소멸과 휴거, 사랑과 평화, 화해와 용서, 오독, 눈물의 상봉, 영혼과 물리주의, 영웅의 귀환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아니면 적어도 그 중 몇 가지이거나.

 

활자로 적힌, 스크린에 갇힌, 멜로디에 실린 어떤 사람들에 점점 더 쉽게 이입되어 갈수록 현실의 사람들과 괴리되어 가는 느낌이 듭니다.

예술적 감수성이라는 건 기실 어떤 게으름, 어떤 결핍의 양상을 띄어가는 거죠.

1인칭의 외연을 하고 있든, 3인칭의 외연을 하고 있든 결국 모든 예술 작품은 본질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이니까.

작품 속에서, 그러니까 – 그토록 친절하게 한 인물의 내부와 외부를 해설해주는 안내자의 보이지 않는 도움 속에서 세계를 인식하다보면,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어떤 식으로 무언가를 이해해야 좋을지 모르게 돼버리는 겁니다.

예술에 예민하게 천착할수록 현실에 대한 당혹감은 점차 현실적 대상에 대한 무관심, 어떤 권태의 양상을 띠게 되는 거죠.

결국 이 무신경함과 민감함은 내 안에서 전혀 모순이 아닌 거예요.

나중엔 길에서도 책을 읽으며 걷겠죠. 마치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처럼.

 

그렇게, 내가 사람을 얼마나 끔찍하게 싫어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절실하게 그들의 행복을 바라는지.

마음들이 안에서 일말의 모순점도 없이 얼마나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너 이거 알아야 돼

우린 꼭 한 몸처럼 닮았다는 거

어쩔 수가 없는 일이야, 이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우린 서로 별 말이 없지, 그래봤자 달라질 것도 없을 테니까

이러는 게 좋다는 건 아냐

그냥 이젠 싸우기도 지겨운 거지

 

내가 말을 해봤자

니가 날 공격할 빌미를 제공해줄 뿐일 텐데

내가 왜 말을 하겠어

어차피 불 보듯 뻔한 일인데

넌 날 알잖아

차라리 내 얼굴에 대고 그냥 말을 해버리지 그래

우리가 동류라는 거 알면서

고작 그 정도도 내가 못 견딜까 봐?

 

넌 말싸움에서 지는 거라면 질색을 하지

그건 우리가 고칠 수 없는 문제야

그냥 익숙해지는 것 뿐이지

처음부터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우리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거

이 모든 의심의 근원이 무언지 말야

 

내가 말한다면

넌 그걸 가지고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겠지

그러니 안 할래

어차피 그 끝은 항상 똑같아

날 알면서 그래

차라리 내 얼굴에 대놓고 말을 하지

우리가 동류라는 거 너도 알잖아

못 견딜 일이라면 그것말고도 널렸어

 

 

완벽한 / 비바두비

조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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