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
당신은 마치 항상 늦게 일어나던 아가씨와 같소. 날이면 날마다 늦게 일어나던 아가씨는 옆 마을로 시집가서 난생 처음 일찍 일어나야 했다오.
아가씨는 문득 들판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것을 보고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소
‘우리 마을에는 저런 것이 없어요!’
바로 그 아가씨처럼 당신은 이 세상에 사랑이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랑을 볼 수 있을만큼 일찍 일어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사랑은 바로 그 자리에 있는데 말이오.
-하자르 사전
니네가 같은 쓰레기를 좋아한다고 걔가 네 영혼의 반쪽인 건 아니야.
Just because she likes the same bizzaro crap you do doesn’t mean she’s your soul mate.
500일의 써머에서 찌질거리던 오빠 토끼군에게 끌로에 모레츠가 했던 명대사죠.
우린 때로 서로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다거나 들여다 보고 있다거나 하는 착각을 하고
취향이란 그런 경우 참 손쉬운 바로미터죠.
우린 보통 바흐가 될 수 없으니 차라리 손쉽게 바흐를 좋아하고,
영혼의 모양을 볼 수 없으니, 손쉽게 취향의 닮음을 영혼의 닮음으로 여기는 겁니다.
라는 문장 이후로 뭔가 되게 길게 썼다가 다 지우고 노래 한 곡 링크합니다.
얼굴과 오체불만족과 가치 판단과 인류애와 우주의 소멸과 휴거, 사랑과 평화, 화해와 용서, 오독, 눈물의 상봉, 영혼과 물리주의, 영웅의 귀환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아니면 적어도 그 중 몇 가지이거나.
활자로 적힌, 스크린에 갇힌, 멜로디에 실린 어떤 사람들에 점점 더 쉽게 이입되어 갈수록 현실의 사람들과 괴리되어 가는 느낌이 듭니다.
예술적 감수성이라는 건 기실 어떤 게으름, 어떤 결핍의 양상을 띄어가는 거죠.
1인칭의 외연을 하고 있든, 3인칭의 외연을 하고 있든 결국 모든 예술 작품은 본질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이니까.
작품 속에서, 그러니까 – 그토록 친절하게 한 인물의 내부와 외부를 해설해주는 안내자의 보이지 않는 도움 속에서 세계를 인식하다보면,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어떤 식으로 무언가를 이해해야 좋을지 모르게 돼버리는 겁니다.
예술에 예민하게 천착할수록 현실에 대한 당혹감은 점차 현실적 대상에 대한 무관심, 어떤 권태의 양상을 띠게 되는 거죠.
결국 이 무신경함과 민감함은 내 안에서 전혀 모순이 아닌 거예요.
나중엔 길에서도 책을 읽으며 걷겠죠. 마치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처럼.
그렇게, 내가 사람을 얼마나 끔찍하게 싫어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절실하게 그들의 행복을 바라는지.
그 마음들이 내 안에서 일말의 모순점도 없이 얼마나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너 이거 알아야 돼
우린 꼭 한 몸처럼 닮았다는 거
어쩔 수가 없는 일이야, 이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우린 서로 별 말이 없지, 그래봤자 달라질 것도 없을 테니까
이러는 게 좋다는 건 아냐
그냥 이젠 싸우기도 지겨운 거지
내가 말을 해봤자
니가 날 공격할 빌미를 제공해줄 뿐일 텐데
내가 왜 말을 하겠어
어차피 불 보듯 뻔한 일인데
넌 날 알잖아
차라리 내 얼굴에 대고 그냥 말을 해버리지 그래
우리가 동류라는 거 알면서
고작 그 정도도 내가 못 견딜까 봐?
넌 말싸움에서 지는 거라면 질색을 하지
그건 우리가 고칠 수 없는 문제야
그냥 익숙해지는 것 뿐이지
처음부터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우리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거
이 모든 의심의 근원이 무언지 말야
내가 말한다면
넌 그걸 가지고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겠지
그러니 안 할래
어차피 그 끝은 항상 똑같아
날 알면서 그래
차라리 내 얼굴에 대놓고 말을 하지
우리가 동류라는 거 너도 알잖아
못 견딜 일이라면 그것말고도 널렸어
완벽한 한 쌍 / 비바두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