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게북클럽] 내가 남기길
저희 이모는 평소 글을 즐겨 쓰셨어요.
그런데도, 출판계에 의뢰하거나 책을 발간하려는 의지는 없으셨어요. 그저 쓰고, 쓰고, 쓰고, 또 쓰셨어요.
고치는 거? 별로 없으셨어요.
이모가 돌아가시기 전, 저한테 남기신 마지막 말이 하나 있었어요.
“절대로,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내지 마라.”
저는 유언대로 책을 내지 않았아요.
이모가 돌아가신지 5년이 지난 7월 15일, 부채질 때문에 더 더워지는 하루였어요. 거실에서 어머니랑 TV를 보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갑자기 책 얘기를 하셨어요.
“니네 이모가 쓴 글 있던데, 그거 뭐 책으로 낼 생각 없어?”
“엄마, 이모가 그거 책 내지 말라고 하셨어요.”
에어컨 온도를 24도까지 내렸지만, 어머니는 짜증이 나셨는지 툴툴 대셨어요.
“어우, 그 아까운 글. 하필 책으로 내지 말라는 걸 유언으로 남겨가지고. 기왕이면 뭐 어디 유명한 데다 책 내달라고 의뢰하라는 걸 유언으로 남기면 얼마나 좋아? 그렇게 밤 새면서 완전 딴 사람 된 것처럼 글 쓰는데 사활을 걸더니, 쯧.”
이모의 필력이 보통이 아니었다는 건 어머니도 인정하시는 부분이라서 아쉬움에 더 툴툴대셨던 걸까요. 저는 그렇다고 봤어요. 그때는.
어머니가 말씀해주신 덕분에 저는 이모가 남기신 원고지 더미를 담은 상자를 꺼냈어요. 5년 넘게 꺼내지 않아서 그런지, 상자 위에 먼지가 수북했고 종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보다 마른 풀이 꺾이는 바삭 소리가 더 컸죠.
<내가 남기길>
제목을 소리 내면서 읽었죠. 이모는 무슨 생각으로 이 제목을 지으셨을지 의문이라도 풀릴 것처럼.
그렇게 전 한 장 한 장 네모칸에 정갈하게 적힌 글자들을 차분히 읽어내려갔아요. 저도 모르게 매료되는 글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야 쓸 수 있을까. 저는 그런 이모의 필력이 부러웠어요.
그렇게 읽고 읽다 보니, 어느 순간 밤이 되었죠. 별이 안 보이는 하루라고 생각해서 올려다봤는데, 달이 떠 있더라고요. 새벽 1시였어요. 읽은 곳을 기록한 후 상자에 넣은 다음 원래 있단 자리에 돌려놨어요.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고 웹소설을 보다가 까무룩 잠들었어요. 불 다 끄고 잠들었는데, 문을 열고 이모가 들어오셨어요.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죠.
이모의 입에서 달음질하듯 말이 우수수 쏟아지는 게 들렸어요. 대꾸할 말도, 팔을 움직이기도 싫어서 가만히 듣고 있었죠.
내가 들은 말은 이거였어요.
“내가 남기길, 내가 남기길, 내가 남기길, 내가 남길, 내가 남긴, 내가 남긴 것, 내가 남길 것, 내게 남긴 것, 내가 남은 것, 나한테 남은 것, 내가 남긴 것, 내가 남긴 것, 남긴 건 내 꺼, 남은 건 내꺼, 남은 글 내꺼, 남은 글 내꺼야, 내꺼야, 내꺼, 내꺼, 내꺼, 내꺼, 내꺼라고.”
리뷰인데, 책 내용이 왜 없냐고요? 제가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보기만 했지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정확히는, 말할 수 없었으니까요.
죽기 전의 마지막 기억으로 떠올린 게 이것밖에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