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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게북클럽] 요즘 가장 핫한 공포소설, ‘당신은 이미 읽었다’ 리뷰

분류: 책, 글쓴이: 영원한밤, 19시간 전, 댓글1, 읽음: 39

본 리뷰는 작품의 결말과 규칙에 관한 중요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요즘 워낙 유명해서 다들 아시는 작품에 대해서 저도 리뷰를 남겨볼까 합니다.  허무인(虛無人) 작가의 신작 《당신은 이미 읽었다》입니다.  작가는 전작《비명은 목격자를 찾는다》, 《대답 없는 독자》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독자들에게 메타적 공포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1.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적 공포

제4의 벽을 뚫는 시도를 하는 등장인물이 등장하거나, 실화임을 주장하는 메타적 요소를 담은 작품들은 여럿 있었지만,《당신은 이미 읽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를 취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정신적 미로에 가두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어 버립니다.

《당신은 이미 읽었다》는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반부에 해당하는 도입 부분은 주인공인 ‘그’가 시립도서관 구석에서 이 소설과 동명의 책인 ‘당신은 이미 읽었다’라는 책에 주목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당신은 이미 읽었다’라는 책을 집어들고 도서관에서 읽기 시작하는데, ‘그’가 읽고 있는 ‘당신은 이미 읽었다’에는, ‘그녀’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택배 상자 속의 다른 책들 사이에 주문한 적 없는 책인 ‘당신은 이미 읽었다’를 주워듭니다. 그리고 ‘그녀’가 펼친 ‘당신은 이미 읽었다’의 첫 장에는 또 다른 ‘그’가 강의실에서 바뀐 친구의 가방에서 ”당신은 이미 읽었다’라는 책을 꺼내들고 있습니다.

초반 소개만 해도 어지로운 액자식 구성인데, 간단히 정리하자면, ‘당신은 이미 읽었다’의 등장인물인 ‘그’와 ‘그녀’들이 ‘당신은 이미 읽었다’라는 책을 읽는 일상을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의 독자를 0단계, 도입부 초반의 ‘그’를 1단계, ‘그’가 읽는 ‘당신은 이미 읽었다’의 주인공 ‘그녀’를 2단계라고 한다면, 초판 기준 6단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데, 하필이면 등장인물도 죄다 ‘그’ 또는 ‘그녀’라서, 몇 단계의 ‘그’이고 ‘그녀’인지 헷갈립니다. 정신을 집중하고 보지 않으면, 내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와 ‘그녀’가 교차로 등장하기 때문에 홀수 단계가 ‘그’이고, 짝수 단계가 ‘그녀’라는 것을 통해 가늠할 수 있는 정도랄까요.

책 속 마지막 구절과 함께 전반부가 끝납니다.

-여기까지 읽었다는 건, 이미 늦었다

 

전반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각 단계의 등장인물과 ‘당신은 이미 읽었다’라는 책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와 ‘그녀’들이 ‘당신은 이미 읽었다’라는 책을 접하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지만, 이 소설의 핵심은 후반부에 있습니다.

 

2. ‘비독서’에 대한 비틀기

작년에《읽지 않은 책에 대해 얘기하는 법》이 출판사를 달리하여 재출간되고 크게 주목받으면서, 국내에서도 독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었죠. 위 책은 4가지 유형의 ‘비독서’라는 개념을 통해, 단순히 제목만 훑어보고 전혀 읽지 않거나, 책을 대충 읽었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정도거나, 책을 읽었지만 잊어버린 것은 ‘비독서’이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고 읽지않은 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조로도 읽힙니다.

‘당신은 이미 읽었다’는 그러한 ‘비독서’를 비틀어서 꼬집습니다.

후반부는 옴니버스식 구성인데, 부제를 달아보자면, ‘비참한 사람들’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반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읽다보면 각 에피소드들은 전반부의 ‘그’, 또는 ‘그녀’에 대한 얘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후반부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전반부에서 현실의 0단계로부터 9단계의 ‘그’로 추정되는 편집자 K는 서점에서 ‘당신은 이미 읽었다’를 목차를 훓었지만, 가치가 없는 책이라 생각하고 다시 매대에 돌려두었습니다. 출판사 주간 회의에서 신간 리스트 검토 중, 누군가 ‘당신은 이미 읽었다’를 언급하자, K는  “그런 책은 들어본 적 없다”며 웃어넘겨 버렸습니다. 그 순간 회의석상에는 정적이 흐릅니다. 이후 K가 맡던 주요 기획이 전부 다른 팀으로 넘어가고, 동료들은 더 이상 교정 시안을 공유하지 않다가, K는 조용히 업계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문학평론가 P는 어느 교양방송에서 “당신은 이미 읽었다”를 읽었다고 말했지만, 사회자가 특정 장면에 대한 감상을 묻자, 다른 책의 내용과 혼동하여 답을 합니다. P의 마이크가 꺼지는 방송사고가 납니다. P의 평론은 점차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 언론에서 P의 평론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학생 M은 자신이 읽은 “당신은 이미 읽었다”에 매료되어, 각 단계별 등장인물의 대사들도 줄줄이 외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미 읽었다”를 주제로 한 발표로 A+를 받고, 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하고, 취업에도 성공합니다. M은 이사가던 날 “당신은 이미 읽었다”책을 분실했고, 소설 거의 모든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만 불안한 기분을 떨치지 못 한 채 살아갑니다.

문화부 기자 H는 “당신은 이미 읽었다”가 유명하다는 걸 알았지만 읽어볼 생각도 안 했습니다. P의 사례를 알고 있었던 H는 “당신은 이미 읽었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자신이 다른 이로부터 주워들었던 내용을 토대로 자신만의 감상을 얘기합니다. H는 “당신은 이미 읽었다”를 구입하려 하지만, 서점에는 매번 품절이고 출판사는 개정판이 나올 때까지 추가 인쇄 계획은 없다고 밝혀서, H는 초조하게 개정판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이미 읽었다”라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작가는 이 소설을 어떠한 형태로든 읽고 접했으면 당당하게 말하라고 외칩니다.

 

3.계속 분량이 늘어나는 개정판

“당신은 이미 읽었다”가 계속해서 관심을 받는 이유는 지속적인 개정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판 기준으로 200p 남짓이던 짧은 소설이 개정 4판에서는 세 배 가까이 분량이 늘었죠. 전반부의 새로운 ‘그’와 ‘그녀’들이 추가되었고, 후반부 에피소드들도 덩달아 추가되었습니다.

 

전 사실 초판을 읽었었는데, 3판이 나왔을 때 다들 읽어보라고 해서 3판으로도 읽어봤습니다. 제가 지금 리뷰를 쓰는 이유이기도 한데, 3판에 처음 등장하여 위에서 소개한 편집자 K의 이야기가, 저랑 1년 가까이 연락이 되지않는 제 지인 김 모 편집자의 이야기와 상당히 비슷해서 등골이 서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4판이 나왔다고 해서 읽어봤는데, 다음 개정판에는 제 얘기가 실리질 않기를 바랄 정도로 깨름칙했습니다.

개정 4판에 추가된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건 이것이었습니다.


이미 다들 읽으셨을  “당신은 이미 읽었다”의 리뷰였습니다. 저 혼자 뒷북 리뷰는 아닌지 쑥쓰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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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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