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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 공포 영화들 간략 리뷰

분류: 영화, 글쓴이: 랜돌프23, 8시간전, 댓글4, 읽음: 33

개구리도 깨어나면 얼어죽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여전히 매섭게 추운 2월,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이열치열이 있다면 이냉치냉이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부지런히 공포영화를 찾아 봤습니다 ㅎㅎ 마치 겨울에 아이스크림이나 빙수를 먹듯이, 여름이 아니라 겨울에 공포를 보는 건 그 나름대로 별미(?)입니다. 이로써 추위에 대해 만독불침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 목표… 아, 이상한 소리는 이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영화의 스포일러는 포함하지 않고 소개할 예정이니, 영화를 아직 보시지 않으신 분들도 편하게 읽어보신 후 구미가 당기는 영화만 골라 보시는데 활용해주셨으면 합니다 ㅎㅎ

 

1. 잠

잠 공식 포스터

개인적으로는 기대 이상의 놀라움을 안겨다 준 한국 영화였습니다. 특히, 초자연적 현상과 과학적인 현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호함을 사랑하는 제 취향에 딱 맞아떨어지는 구성을 가진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초중반부 분위기 연출은 상당히 세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후반부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듯 하던데, 저는 개인적으로 ‘호’였습니다. 그러나 설령 후반부가 ‘불호’가 되더라도, 초중반부의 전개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너무 많이 말하면 추후 감상에 지장이 있을 수 있으니, 이 정도로 말을 아끼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한국 영화에 앞으로도 이런 영화가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잠을 자는 동안의 나 자신을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못 한다는 것에서 오는 원초적인 공포를 탁월하게 표현한 영화.

 

2. 서브스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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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이번 분기를 활활 불태운 화제의 영화죠. 제 친구가 ‘이거 네가 좋아할 것 같아’라고 말하고는, 금요일에 제 몫까지 영화표를 예매해서는 저를 끌고가 같이 감상했던 영화입니다. 결론은? ‘한 번 보면 결코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영화’라는 표현이 딱 맞을 듯 합니다. 영화 ‘미스트’를 보면 다른 건 몰라도 결말만큼은 평생 못 잊을 거라는 말이 농담처럼 떠돌아다니는데 (사실은 농담이 아닌…), 이 영화는 영화 전체가 ‘미스트’ 결말 같은 인상을 줍니다.

저는 호러 영화 및 소설에서 꽤나 기괴하고 하드한 장면을 많이 봤던 터라, 이 영화에서 나온 표현법 자체가 엄청 충격적이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중요한 건, 이런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한 표현법을 사용하는 바디 호러 영화가 양지로 올라와 한국에서만 50 만 명 이상이 극장에서 관람했다는 것이겠죠. (저한테나 충격적이지 않았지, 같이 보러 갔던 친구는 옆자리에서 거의 눈을 가리고…) 대중성을 위해 표현 수위를 타협한 작품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제가 영화 전문 분석가가 아니기에 함부로 그 이유를 결론 낼 수는 없겠지만, 제 나름대로 생각하기로는, 이 영화가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한 표현을 쉬지 않고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집이 감각적이고 속도감 있으며,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초반에 직설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영화 내에 표현된 초현실적인 비유들을 난해하다는 인상이 아니라 흥미로운 치환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 어떤 안정된 구심점을 가지고 기괴하고 비현실적인 상황을 따라갈 수 있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까, 일단 그냥 보기에도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확 몰입이 될 수 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명확한 주제를 영화적 기법을 통해 체험해나갈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강점이 아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영화의 메시지가 직설적인 정도를 가지고 영화의 수준을 평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난해한 영화가 있으면 직설적인 영화도 있는 법이죠. 다만, 제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회 비판 메시지를 담은 호러 영화들이 그 비판 요소들을 굉장히 추상적으로 비유하여 내용 전체가 난해한 방향으로 가는 편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전혀 그런 식으로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신선하다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취향과 기준의 차이가 있는 법이니, 이러한 직설법은 누군가에겐 가점 요소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감점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ㅎㅎ

무튼, 호러 장르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담아내고 비판하기에 탁월한 장르라고 생각했던 저에게도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흥행 결과는 매니아를 위한 장르라는 호러 장르의 별칭을 생각하면 기념비적이네요.

시선이라는 지옥에 갇힌 여성의 본질(substance)에 대해 묻는 서글픈 잔혹 바디 호러 영화. 

 

3. 오멘: 저주의 시작

오멘: 저주의 시작 한국 메인...

전설의 공포 영화 ‘엑소시스트’의 후속작 ‘엑소시스트: 믿는 자’가 상상 이상으로 실망스러웠던 터라, ‘오멘’의 후속작(정확히는 프리퀄)인 이 영화는 기대 20 우려 80이었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까보니, 이 영화… 꽤 괜찮습니다?!

영화 자체가 속도감 있고 자극적이고 그렇지는 않습니다. 꽤 호흡이 느립니다. 하지만 그 느린 호흡 속에서 불길함을 더해가는 방식이 상당히 훌륭합니다. 마치 검은 물이 부글부글 끓다가 끝내 끓어넘치는 것처럼 말이죠. 영화의 호흡이 빠르지 않다는 것만 감안하고 영화를 봐보신다면, 꽤 괜찮은 호러 영화 감상을 경험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속편이라면 역시 환영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ㅎㅎ

제목대로 불길한 징조(omen)들이 곳곳에 쌓여 끝내 구체적인 형상으로 불타오르는 영화.

 

4.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복수의 날개

그렇게 안 보이겠지만, 이거 공포 영화 맞다니깐요?!

 

5. 부기맨

부기맨 국내 메인 포스터

어쩌다가 스티븐 킹 원작 작품이 또 흥행 실패한 영화로 연성된 것인가… 흑흑

영화는 원작을 꼭 따라갈 필요가 없고, 영화는 원작과의 비교가 아닌 영화만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일단 이 영화는 원작과 별개로 공포 영화 자체로 그리 성공적이지 못 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어떤 원작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은, 그 원작이 가지고 있던 최소한의 매력이나 강점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것 또한 실패하였습니다.

스티븐 킹 원작 단편 ‘부기맨’의 으스스한 포인트는, 한 아버지가 자식들이 전부 부기맨이라는 옷장 속/침대 밑 괴물한테 살해당했다고 정신과 의사한테 토로하는데, 진술을 듣다보니 정말 부기맨 때문에 아이들이 죽은 건지, 아니면 그 아버지의 학대로 인해 죽은 것인지 아리송해지면서 섬뜩하면서도 쎄한 분위기가 풍겨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일단 그런 모호성은 없애버리고 처음부터 부기맨이 실재하는 것으로 나오고(한국 영화 ‘물괴’가 저지른 실책이 이 영화에서도 반복된 셈입니다.), 심지어는 물리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되면서 극 중 긴장감마저 떨어뜨립니다.

기대를 많이 했던 만큼, 실망감이 큰 영화였습니다.

조금만 더 아이의 상상과 어른의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더라면!

 

6. 블랙 프라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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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인지 ‘ 땡스기빙’과 ‘해피 땡스기빙’, 그리고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세 개의 제목을 가지게 되어 버린 영화입니다만, 우선 감독을 말씀드리면 바로 ‘일라이 로스’의 작품입니다. 이 감독에 대해 아시는 분이라면 ‘아!’하실 텐데, 영화 ‘케빈 피버’, ‘호스텔’, ‘그린 인페르노’를 만든 감독으로, 호러 영화에서 잔혹한 묘사를 거침없이 해나가는 감독입니다. 따라서 이 감독의 이름을 보신다면, 어떤 걸 보게 될지 조금은 각오를 하시는 게…ㅎㅎ; (TMI: 저는 ‘케빈 피버’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 영화의 장르는 ‘스크림’이나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와 같은 가면 쓴 살인마의 슬래셔 영화이고, 그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는 표현이 눈에 띄곤 합니다. 그래서 신선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 기본을 잘 지켜나가는 영화입니다. 요즘엔 안 하느니만 못 한 변주를 많이 봐서;; 이렇게 기본을 충실히 지킨 영화를 보는 게 되게 반갑고 좋더라고요. 아는 맛도 맛있게 조리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 영화도 그 전의 동일 장르 영화와 마찬가지로 ‘대체 가면 쓴 살인마의 정체가 무엇일까’라는 추리 요소와 ‘또 어떤 끔찍한 죽음이 나올까’라는 호러 요소를 두 기둥으로 하여 전개됩니다.

여기에 일라이 로스 감독만의 거침없는 잔혹 묘사가 추가되어서, ‘스크림’이나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이하 생략)’과는 다른 이 영화만의 개성이 또 있습니다. 특히 초반의 블랙 프라이데이 대참사는… 이건 직접 보시길 바랍니다.

기본을 충실히 지키며 감독 자신의 개성을 잘 섞어낸 영화.

 

7. 마 (2019)

영화 줄거리 소개가 흥미로워 보여서 보기 시작했습니다만, 옥타비아 스펜서의 연기력만이 인상적이었던 영화였습니다. 이건 아는 맛을 맛있게 조리하는데 실패했다고나 할까요… 전형적인 ’10대 청소년들이 술 마시고 파티하려다가 벌어지는 비극’이라는 틀을 가진 영화이고, 여기에 ‘낯선 사람의 수상쩍은 호의’와 ‘과거에 있었던 추악한 진실’이라는 두 요소를 끼얹어, 소재 자체는 굉장히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전체적으로 삐그덕거리는 부분이 많고, 앞에 쌓아둔 장치가 허무하게 소모되는 경우가 많아, 옥타비아 스펜서가 연기력으로 영화 전체의 긴장감을 잠깐씩이라도 다시 끌어내더라도 그게 오래 가지 못 합니다.

잘 만들었으면 손에 땀을 쥘 정도로 쫄깃한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너무나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오랫동안 한을 품어온 치밀함과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된 우발적인 허술함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아쉬운 범죄극.

 

8.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아메바소녀들포스터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영화는 ‘정통 호러’가 아니라 ‘호러 코미디’입니다. 그리고 호러와 코미디 중에선 코미디에 더 비중을 둔 영화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에 이 영화를 넣은 이유는, 호러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이 영화도 취향에 맞지 않을까 싶어서 입니다. 이 영화 자체가 호러 장르에 대한 비틀기입니다. 이런 영화로 미국엔 ‘캐빈 인 더 우즈’가 있었죠. (TMI 2: 제 최애 영화 중 하나입니다.) 특히 ‘여고괴담’과 ‘곤지암’을 보셨다면 이 영화를 더 잘 즐기실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보지 않았어도 영화 내용 이해에 치명적이진 않습니다. 깨알 같은 언급이나 묘사들이 더 재미있어지는 정도?

오랜만에 웃으며 본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코미디의 개인 취향 차이는 워낙 커서, 보시고나서 ‘에잇, 뭐 이런 걸 추천해주고 그러나!’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ㅋㅋㅋ; 그래서 이 영화를 보실지 말지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 이 영화의 분위기를 살짝 말씀드리자면, ‘일부러 살짝 엉성하게 만든 듯 한 병맛 개그’ 영화입니다. 병맛이라는 코드가 개인적으로 안 맞으시는 분들에겐 이 영화를 추천드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엉성함과 조잡함에서 오는 B급 병맛을 사랑하는 터라, 이 영화가 예기치 못 하게 찾은 보물처럼 느껴졌습니다. 한국에서 ‘호러 코미디’가 흔치 않게 느껴지는 터라 더더욱 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앞으로도 이런 영화가 좀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엄청 강렬한 영화는 아니지만, 잔잔하고 아기자기하여 오랜만에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였습니다.

영화와 호러 장르를 좋아하는 만큼 유쾌하게 비틀었다고 생각되는 영화.

 

12. 데스티네이션 1, 2, 3

데스티네이션 포스터

오랜만에 고전 영화를 다시 봐봤습니다. 참고로 ‘데스티네이션3’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이라는 제목으로 유통되고 있으니, 3편을 찾으시려면 두 제목을 다 쳐보시길 바랍니다.

1편, 2편, 3편 모두 꽤 괜찮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완성도가 2편>1편>3편 이라고 생각됩니다. 죽음 그 자체가 죽었어야 할 생존자들을 쫓는다는 설정이 상당히 매력적인데, 중간에 산으로 가거나 길을 잃어버리는 일 없이 세 편 모두 그 매력을 충분히 잘 유지하면서 내용을 전개해 나갑니다. 묘사가 잔혹하여 잔인한 죽음이나 고통스러운 걸 보기 힘들어하시는 분들께는 추천 드리기 어렵지만, 킬링타임으로 볼 고전 호러 영화를 찾고 있는데 그런 장면을 보는 게 힘들지 않다는 분들께는 딱 권해드릴 만한 영화입니다.

흐름이 상당히 정형화되어 있긴 하지만, 그 정형성이 뻔함을 유발하지 않도록 부지런히 변주와 반전을 집어넣은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조만간 4편이랑 5편도 봐봐야겠습니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고전일지 모르나, 다른 호러 영화로는 대체가 안 되는 고유한 매력의 설정을 가진 영화 시리즈. 

 

여러분들이 최근에 본 호러 영화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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