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리뷰하다 1. 나란 글쟁이, 못난 글쟁이.
멋진 리뷰어 soha 님의 리뷰를 읽고 오시면 더 좋습니다. 링크는 여기.
이 글은 제가 soha 님께 보냈던 쪽지의 내용 일부를 포함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세상의 불합리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불합리함이야 말로 세상 그 자체 아닌가.”
이것이 아마도 제 글쟁이적 세계관의 주된 주제일 겁니다. 다만, 그것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까발려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작품은 독자와 창작자가 소통하는 창구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화는 모든 것이 명료해지는 지점입니다. 저는 제 주장이 이토록 명확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은연중에 은근하게 느껴졌으면 했습니다. 일종의 향기 같은 것이죠. 홍차의 향기는 은은하여 결코 무언가를 자극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홍차의 향기 만큼 오래 남는 것은 없죠(주관적 생각ㅎㅅㅎ). 저는 제 글의 주제가 그랬으면 싶었습니다.
마음의 양식에서 악마가 권하는 여섯 권의 책—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 존 톨킨의 ‘후린의 아이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은 제가 군대에서 읽은 책입니다. 이 작품이 군대에서 쓰였기에, 저는 제가 군대에서 읽은 책들 중 ‘운명’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상기한 여섯 권의 책을 선정하였습니다. 자세하게는 ‘운명 앞에 저항하지만, 결국에는 꺾이고 순응하게 되는 인간상’에 대한 작품을 골랐다고 해야겠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
초기에 플롯을 작업할 때 ‘마음의 양식’의 결말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책을 열심히 읽은 소년이 결국에는 잘 커서 소기의 목적인 복수를 달성하지 못하지만 대신 훨씬 더 위대한 사람이 된다는, 그런 결말이었습니다만 어딘가 내키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저는 주제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Null에서 카를 바르트의 명언 한 구절을 가져왔고, 마지막 문장으로서
소란스러운 바람이 숲 속을 몰아가는 가운데 소년은 낡아빠진 오두막에 홀로 남겨졌다. 그러나 남겨진 소년은 남겨지기 전의 소년과는 분명 달랐다. 달라졌다.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에 나뒹구는 잡동사니를 가방에 챙겼다.
를 골랐습니다. 소년이 달라진 것도 중요하지만, 바닥에 나뒹구는 것을 지칭하는 명사가 달라졌다는 점이 제게는 더 중요했습니다. 단편 중반에서는 이것들을 준비물이라 지칭하면서 (전부는 아니지만) 하나하나 묘사하고 열거합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는 이것이 ‘잡동사니’일 뿐이죠. 앞으로 악마를 소환할 일이 없음을 은연중에 나타내고자 했습니다만, 이것이 잘 드러났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군요ㅎㅅㅎ
저는 작품이 세상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트이타에서 140자를 낭비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방법이죠. 제 작품 속의 인물들은 세상의 부조리함에 순응하거나, 맞서 싸우려 들지만 결국에는 순응하게 됩니다. 전자의 경우 리뷰에 써주신 ‘낙수효과’에서 나타나고, 후자의 경우에는 리뷰에 나오지 않은 단편 ‘제자리 찾기’에서 두드러집니다.
이렇게 내글 홍보를 꼽사리
제자리 찾기는 ‘죽은 아내를 되살리고자 하는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죽은 아내는 세상의 부조리함의 표상입니다. 죽을 이유가 없었지만 죽었죠. 죽음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지만, 남편은 이러한 부조리에 맞서기 위해 죽은 아내를 되살리고자 합니다. 무엇을 잃더라도 아내를 되살리겠다, 그렇지만 단편의 말미에 남편은 결국 운명에 순응합니다. 운명에 순응하고 편해집니다. 운명에 순응하면 편해집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 글을 읽은 독자가 이에 분노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운명에 순응하지 말고 다시금 주먹을 쥐라고, 작품 속 인물에게 소리치면서도 문득 ‘나는 지금껏 현실에 순응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되도록. 만약 제가 독자들에게 그런 깨달음을 줄 수 있다면 아마도 저는 (좋은 글쟁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개인적 성공을 달성한 글쟁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세상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저 혼자라면 이 세상이 바뀔 일도 없겠지요. 저는 글로서 세상을 바꾸고자 합니다. 제 글을 읽은 독자들이 현실에 순응하지 않기 시작한다면, 고작 3만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는 알바생도 늘어날테고, 감자튀김 튀기는 데 쓴 기름을 왜 또 돈까쓰 튀기는 데 쓰냐고 따지는 이등병도 생길테죠. 그렇게 군의 권익도 신장될 테고요. 써놓고보니 거창하군요. 하지만 이왕 소설 쓰기 시작한 거 목표는 높아도 괜찮겠죠.
긴 리뷰 감사합니다. 확실히 소하 님의 리뷰 스타일은 좋군요. 다른 리뷰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