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리뷰를 리뷰하다 2. 나란 글쟁이, 못난 글쟁이?

글쓴이: BornWriter, 17년 7월, 읽음: 71

포그리 님의 ‘내뱉어진 생’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뷰란 도대체 무엇일까. 자발적으로 여러분에게 신청을 받아 리뷰를 하겠다고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는 리뷰가 뭔지 도통 알지 못합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과연 리뷰란 무엇일까요.

최근 저는 새로 들어오신 리뷰어 ‘soha’ 님의 리뷰를 꼬박꼬박 읽고 있습니다. 자유게시판에서 최근 제 발언을 통해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거의 사랑에 빠진 기분입니다. 군대에서 김훈 작가의 흑산을 읽고 미친듯이 빠져들었던 것처럼, 저는 이 분의 리뷰에 미친듯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기분을 느낀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입대하기 전까지 교류를 이어갔던 ‘승’ 이라는 글쟁이에게서 리뷰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리뷰를 읽고 저는 지금과 동일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 리뷰는 대단했습니다. 제가 특별히 그렇게 쓰고자 한 게 아니었는데도, 주요한 여성 출연자들이 하나같이 맨발임을 지적하면서, 제가 맨발에 대한 패티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도출해내었습니다. 그 리뷰를 읽고나서야 저는 ‘아 나는 맨발 패티시가 있구나’ 라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실제로 그러한 패티시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리뷰에서 제시된 논리를 따라가면 저는 분명 맨발 패티시가 있어야 하는데요)

오늘 낮에 받은 soha 님의 리뷰 역시 그렇습니다. 저라는 글쟁이를 산산히 분해해서 재조립하셨죠. 그것도 단일 작품이 아니라 단편 몇 개에 흐르는 동일한 기조를 찾아내셨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리뷰 모든 것이 옳았느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뿅망치 게임’은 재미로 쓴 단편입니다. 가위바위보로 공수를 정하는 ‘뿅망치 게임’이 얼마나 박진감 넘치게 쓰여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일종의 작문 연습이랄까요. 그런데 제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고 ‘잘 모르겠다’고 말한 까닭은 이렇습니다.

저는 제 모든 작품을 직접 씁니다. 고스트 라이터 따위 존재하지 않기에, 모든 글은 제 머릿속에서 나온 글입니다. 그런데 제 머릿속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Ich∙Über-Ich∙Es 로 되어있습니다. 저는 제 머릿속 Ich로 글을 쓰지만, 동시에 제가 관할하지 못하는 Über-Ich와 Es에서도 글에 관여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제가 쓴 작품이라고 할 지라도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맨발 패티시를 소설에 녹여내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인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대한 주장이 리뷰에 들어있다고 해도 그것을 틀렸다고 말 할 수 없는 겁니다. 다만, 그러한 주장을 뒷밭침하는 논리가 모호하거나 모순적이면 그 부분은 지적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논리가 완벽하면 저는 잘 모르게 되어버리고 맙니다. 리뷰에서 제시된 논리를 따라가면 제게는 분명 맨발 패티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논리의 완성도와 실제 사실은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실제 사실인지 어떤지 역시 제가 알 수는 없습니다. 제 머릿속은 Ich∙Über-Ich∙Es 로 되어있으니까요.

 

자, 그렇다면 이렇게 작가도 모르는 작가의 무의식마저도 명쾌하게 짚어내는 리뷰가 좋은 리뷰인가! 네 그렇습니다. 이런 리뷰는 좋은 리뷰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리뷰만이 좋은 리뷰인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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