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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드 소설을 다른 공동 창작 프로그램의 보조 아카이빙 장치로 사용하는 방안에 대해서

글쓴이: 일월명, 21년 3월, 댓글3, 읽음: 87

안녕하세요. 스레드 소설 란에서 주로 놀고 있는 일월명입니다.

현재 스레드 소설 란의 낮은 참여율이 올라갔으면 하는 마음 반, 스레드 소설 란의 시스템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방안이 없을지 고찰하는 마음 반으로 고민하다가, 실험해보고 싶은 게 하나 생겨 이렇게 글을 씁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틀린 진단이 많을 겁니다.

 

스레드 소설란의 주요 취지는 공동 창작입니다. 호스트가 기발하기는 한데 자신이 혼자 쓰기에는 너무 덩치가 크거나 낯선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거기에 그 아이디어 소스를 잘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다른 창작자들이 조력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거죠.

실제로 스레드 소설 베타 테스트 때는 이 취지에 부합하게 창작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막상 서비스가 오픈된 이후로는 참여율이 오히려 베타 때보다 저조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일전에 제가 올린 짧은 푸념글에 이아시하누님께서 지적하셨던 부분도 원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베타 테스트 때에는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힌 테스트 참여자들이 한정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걸 시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기에는 동기가 부족합니다.

창작자가 작품을 만드는데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큰 감정은 애착과 재미일 겁니다. 브릿지의 창작자 분들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니, 여기서 애착과 재미는 곧 스토리에 대한 감정이 되겠지요.

여기서 스레드 소설의 가장 큰 문제가 생깁니다. 스레드 소설은 스토리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즉흥성이 큰 만큼 참여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제공하긴 합니다만, 거기에 어떠한 애착을 갖게끔 하기는 힘듭니다. 본인이 스레드를 달며 생각한 다음 스토리 진행 단계를 뒷사람이 따라주리라는 보장도 없고, 호스트가 컨트롤을 잘 하지 못하면 이야기가 저기 어디 에베레스트 산맥 어디께로 날아가버려 다음 스텝을 어떻게 이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이건 제가 로―메인 호텔 시리즈 스레를 이어가면서 느낀 저 자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스레드 호스트가 되어 글을 진행하는 건 창작자이기 이전에 기획자의 역량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더군요.) 무엇보다 결국 내 아이디어가 아니기 때문에, 호스트가 아니면 애지중지하며 이야기의 가지를 키워나갈 마음이 잘 들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컨트롤타워를 잃고 흐지부지하다가 결국 스레드가 이어지지 못하고 중단되는 게, 현재 업뎃이 중지된 스레드들의 패착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이 문제점을 파훼하기 위해 가장 최근 세워진 스레드들인 녹차백만잔님의 AB초즌 과 해민님의 뮌하우젠 은 정반대의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AB초즌은 즉흥성과 재미적 요소를 극한으로 끌고 간 케이스입니다. 거기서 스토리는 오로지 바톤을 이어받은 참여자의 재량으로 결정되고, 다만 이때 이전 참여자가 두 가지 선택지를 사전에 제시해 다음 사람이 그 중 보다 잇기 쉬운 쪽을 고를 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이어야 할 지 감도 안 잡히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뿐더러, 여럿이서 케이크를 나눠먹을 때 한 명이 케이크를 자르게 하고 다른 한 명이 먼저 원하는 조각을 고를 수 있게 할 때 처럼, 결과적으로는 참여자 전원이 이야기를 보다 말이 되는 쪽으로 진행하게끔 참여하는(그도 그럴 게, 일단 본인이 앞의 글을 이어야 하니까요.) 결과가 나옵니다.

반면 뮌하우젠은 아예 해민님이 스레드를 세우면서 등장인물과 글의 분위기, 세부적인 서사 장치 등을 이미 제시하고 시작했습니다. 즉 전체적인 스토리 얼개를 미리 완성하고, 참여자들은 그 속의 세부적인 요소들을 채우는 데 집중하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보다 완성도 있는 창작물이 나오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호스트가 명확한 틀을 제시해 서사를 훌륭하게 리드하고, 규칙에 맞춰 스토리를 구상하는 건 작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니까요.

저는 추후에라도 스레드 소설란이 활성화된다면 아마 이 두 방향의 창작물 위주로 완성본이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하고 있습니다. 두 방법 모두 여럿이서 이야기 하나를 완성하기에 훌륭하고 효과적입니다.

 

한편, 다른 방향으로 스레드 소설을 활용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이건 호스트에게 낯선 아이디어보다는 호스트가 혼자 다루기엔 큰 아이디어, 가령 하이판타지 세계관 등을 여럿과 공유하고자 할 때 사용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본인이 구상한 세계관에 대한 기본적인 요소들과 규칙을 정리한 글로 스레드를 세운 후, 그 정보들에 기반해 창작을 하고픈 이들이 해당 세계관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스토리를 본인의 작가 계정에 개시하는 겁니다. 그리고 해당 창작물의 링크와, 참여자가 창작한 스토리가 해당 스레드의 세계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간략한 요약글을 스레드로 등록하는 겁니다. 일종의, 그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하나의 연혁이 되게끔요. 이렇게 하면 참여자들은 본인들이 창작한 스토리에 대한 애착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며, 배이스가 되는 세계를 가지고 타 창작자가 만들어내는 또다른 이야기에서 개인 창작과는 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각 참여자들의 창작물들이 호스트가 창작한 세계에 즉시 영향을 미치는 데서 공동 창작만이 주는 재미도 챙길 수 있을테고요. 이렇게 쓰고 보니 어쩌면 SCP 재단의 창작 방식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다만 이런 방향의 스레드 소설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도 난감한 지점들이 있을 겁니다. 당장 제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1. 호스트가 뭐하러 본인의 세계관을 남들과 쓰자고 공유를 할 것이며, 2. 스레드 소설 등록비용만 50골드인데 기껏 세계관 스레드를 세워놓고 잘 안 되면 호스트는 본인 아이디어만 깐 게 될 것이고, 3. 참여자들도 본인이 이야기를 창작해 와 봤자 호스트가 스텝을 업뎃하는 데 누락시키거나 아예 다음 스텝을 진행하지 않아 버리면 참여하는 의의가 없어질 거라는 문제 등이 떠오르네요.

 

그래도 하게만 된다면 스레드 소설을 보다 즐겁게 효과적으로 쓸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이에 관해 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언제 한 번 다같이 토의해보면 어떨까요.

일월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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