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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공포소설을 공포소설처럼 쓰기

분류: 수다, 글쓴이: 환상괴담, 20년 10월, 댓글15, 읽음: 289

출처 – 네이버 카페 유령의공포문학(공포소설) by 유령 님

장르잡지인 판타스틱, 이번 4월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제가 공포소설작법이란 의도로 쓴 글이니 참고하세요. 실은 평소 늘 하던 얘기들이에요.

 

<공포소설을 공포소설처럼 쓰기>

장르소설은 재미있게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장르가 가지는 독특한 코드를 소설에 어떻게 반영하는가도 중요하다. 여기서 코드란 장르의 관습 혹은 상투성이란 의미정도로 해석했으면 하고 독자가 장르소설에 기대하는 익숙한 재미정도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물론 상투성은 일반 대중소설의 통속성과는 다른 개념이다.

장르소설을 쓰는 작가는 언제나 상투성이란 양날의 검을 손에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작의 관점에서 상투성은 어떻게든 피해야 할 제약이지만 독자가 장르에 기대하는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외면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장르소설을 잘 쓰려면 이러한 상투성을 적절히 피해가거나 혹은 극대화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공포소설 역시 이런 상투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독자가 공포소설을 찾아 읽는다면 그는 당연히 공포와 마주하고 싶은 기대를 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포는 대단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편차를 지닌 감정이다. 원혼 같은 초자연적인 소재에서 추구하는 공포는 사이코나 범죄자와 같은 현실적인 소재에서 다루는 공포와 접근법도 다르고 독자층도 전혀 다르다.

 

1. 공포소설의 특징

당연한 말이지만 공포소설을 쓰려는 작가지망생이라면 공포장르에 대한 애정과 공부가 필요하다.

판타지나 무협, SF등 다른 장르소설과 달리 공포소설은 장르에 대한 이해 없이도 쉽게 쓸 수 있다는 오해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국공포영화의 몰락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충무로에서 공포영화는 장르에 대한 이해 없이도 연출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오해가 팽배해 있다. 덕분에 공포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의 상당수가 신인이고 공포영화는 신인감독들의 등용문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심지어 공포영화를 연출한 감독들 중 상당수는 각종 인터뷰를 통해 공포라는 장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좋아하지도 않았다는 무책임한 고백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지난 몇 년간 개봉된 한국공포영화는 관객의 외면을 받았고 2008년에는 제작중인 한국공포영화가 단 한편도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암담한 현실에 이르렀다. 이 모두가 공포의 장르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덤벼든 결과이다.

 

그렇다면 공포장르만의 고유한 특징이란 무엇일까.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공포와 스릴러를 혼동한다. 스릴러는 주로 범죄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건의 진행과정을 얼마나 속도감 있는 문체와 빠른 호흡으로 전개시키는가가 관건이다. 반면 공포소설은 밀도 있는 문체와 정적인 호흡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마지막에 가서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장르다.

 

공포소설이 다른 어떤 장르소설보다 후반부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뒤로 갈수록 서사의 힘이 증폭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공포소설의 결말은 미스터리 소설 이상으로 흥미롭고 극적이어야 한다. 공포소설에 반전이 많고 마지막에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작품이 유독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2. 왜 공포소설을 쓰려고 하는가.

공포작가지망생은 이 질문에 대해 분명한 답을 할 수 있어야한다. 왜 공포소설을 쓰려고 하는가. 단지 무서운 이야기가 좋아서라는 대답은 독자의 몫이지 작가의 답은 아니다.

 

흔히 공포소설이 장르문학 중에서도 순문학에 가까운 장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는 공포소설이 독자에게 던지는 사회적인 매시지가 분명하고 인간의 본성이나 심리를 파고드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포소설을 쓰려는 작가는 왜 공포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분명하게 있어야한다.

 

작가의 입장에서 공포소설의 매력은 사회적 금기에 도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 현실과 환상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어 이야기를 만들고 표현하는데 공포가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세상 어떤 이야기도 쉽게 공포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독자나 작가지망생들은 공포소설의 소재가 한정적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단언하건데 공포소설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이는 글을 쓰는 작가에게 대단한 축복이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그 무엇도 조금만 정도를 지나치거나 왜곡된 시선으로 보면 언제든 공포로 돌변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연인간의 사랑은 적당한 선에서 멈추면 아름답지만 도가 지나치면 부담스럽고 위험해진다. 불행하게도 인간의 내면에는 늘 그런 과도한 집착과 파괴본능이 도사리고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소통이 단절되자 개인은 고립되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심리적 불안은 개인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어 잔혹한 연쇄살인범이나 사이코를 양산하기도 하고 각종 정신병과 이상행동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건강염려증환자, 지나친 다이어트로 인한 거식증 혹은 폭식증 환자, 결벽증, 강박증, 관음증, 은둔형 외톨이 그리고 망상과 중독, 가정폭력, 왕따, 자살 같은 각종 정신병과 사회문제들은 이제 더 이상 몇몇 소수 구성원들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 같은 자연재앙까지 포함시킨다면 우리 주변에는 어둡고 불안한 심리를 자극하는 온갖 공포소설의 소재가 그야말로 흘러넘치고 있는 것이다.

 

3. 공포의 유형과 그것을 다루는 방법

공포소설이 다루는 공포의 유형이 몇 가지 있다.

외계인이나 원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다루는 영역, 사이코나 범죄, 자연재해 등을 다루는 현실적인 영역. 거기에 심리공포와 잔혹공포로 분류되는 표현방법이 있다. 공포소설을 잘 쓰기 위해서는 공포의 유형과 표현방법을 적절하게 잘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초자연적인 영역의 공포에서는 주로 원혼과 외계인 같은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다룬다. 이런 소재는 미스터리적인 구성을 취해 심리공포로 몰아가는 게 유리하다. 즉, 미지의 존재를 꼭꼭 숨겨가며 얼마나 호기심과 공포를 극대화시키는가에 소설의 재미가 결정되는 것이다.

 

흔히 원혼을 소재로 다루는 이야기에서 원혼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 소설은 끝을 맺어야한다는 말이 있는데 미지의 공포를 어떻게 다뤄야할지 함축적으로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원혼을 소재로 다룬 작품으로는 스즈키 코지의 [링]이 있고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를 다룬 작품으로는 스티븐 킹의 [미스트], H.P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 같은 작품이 있다.

현실적인 영역의 공포는 사이코나 스토킹 같은 각종 범죄와 사회문제들, 그리고 개인의 불안 심리를 다루는 이야기가 많다. 이런 유형의 이야기에서 관건은 기발한 설정의 새로운 이야기보다는 생생한 현실감을 동반한 작중 인물의 캐릭터와 심리묘사를 얼마나 잘 하느냐이다.

대표작으로 스티븐 킹의 [미저리], 기스유스케의 [검은집]등이 있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 사이코의 캐릭터는 단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우릴 긴장하게 만들고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4. 공포소설 쓰기

– 공포소설은 미스터리 소설처럼 글을 쓰기 전 설정과 구성을 구체적으로 잡아두는 게 좋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감정과 긴장감을 증폭시키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계산된 이야기가 필요하고 결말도 미리 정해놓는 게 안전하다. 스티븐 킹의 경우 이야기를 정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공포를 완벽하게 통제할 줄 아는 호러 킹이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어떤 유형의 공포에 속하는지 살피고 그 유형에 맞는 표현방법으로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초자연적 공포인지 현실적 공포인지, 심리공포로 몰아갈지 잔혹공포로 몰아갈지.

 

– 공포는 현장감이 있어야한다. 습작생들이 쓴 공포소설에는 악몽이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많다. 가능한 공포는 생생한 현재진행형으로 쓰는 게 좋다. 다음 순간 어떤 끔찍한 괴물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급박한 긴장과 두려움이야말로 공포의 원형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 흔히 공포의 영역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존재한다고 한다. 즉 공포이야기는 현실에서 환상으로 환상에서 현실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공포소설에선 혼자 공상을 하다가 눈을 떴는데 공상 속 누군가가 눈앞에서 당신을 노려보고 있을 수도 있다. 공포소설을 잘 쓰려면 그러한 현실과 환상의 틈을 잘 비집고 들어야한다. 견고하다고 믿고 있던 현실의 틈이 서서히 벌어지고 무너질 때 우린 무한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 가능한 사건으로 이야기하라. 공포소설은 심리묘사가 많아 자칫 소설이 설명적이고 관념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공포소설은 장르소설이다. 모든 상황은 사건을 통해 설명하고 작중인물의 심리는 가능한 사건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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